"나라 바꾸려면 공무원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서평]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진짜 혁신이다』

2025-02-19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AI 경쟁에 밀리는 한국

AI에 돌파구가 생긴 것은 2012년에 제프리 힌튼이 딥러닝을 성공시키면서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충격이 온 것은 2016년 알파고가 한국에 와서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하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후 정부의 대응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농단을 저지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느라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2017년 새로운 알파고가 중국에서 커제 9단을 꺾은 뒤 중국은 AI에 총력투자했다. 중국은 지금 세계 G2가 되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부는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 2019년에서야 대통령을 만난 손정의 회장이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를 외치고 난 뒤 다시 AI를 해야 한다며 요란했다. 그러나 정작 AI를 위한 제대로 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2020년 7월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열면서다. 늦게 시작한 디지털뉴딜마저 2025년까지 추진하기로 했던 계획이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모두 지워지고 말았다. 도대체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3년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인가?

정부가 실패하는 이유

정부가 실패하는 이유가 있다. 문용식의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진짜 혁신이다』는 정부가 왜 실패하는지를 낱낱이 파헤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지은이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전 정보화진흥원) 원장을 지내면서 국가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을 진두했다. 이 과정에서 겪은 정부와 공직사회의 문제점을 그 특유의 꼼꼼함과 성찰, 대안제시로 꽉꽉 채워 냈다. 그가 정부혁신을 위해 낡은 정부 시스템과 치열하게 싸운 이야기들은, 전략과 전투 방법을 세밀히 기록해 후세에 큰 교훈을 준 난중일기이자 정부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징비록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전자정부를 혁신할 ‘One Gov 프로젝트’를 준비했지만 새로 바뀐 청와대 수석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이후 소관이 아니라는 과기보좌관실과 관심이 없는 시민사회수석실을 건너 제도개혁비서관실과 수석, 비서들을 설득해 다시 ‘디지털 정부혁신 추진계획’을 만들었다. 계획 확정에서 대통령보고까지 1년 반이나 걸렸지만 이 프로젝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면서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정책실장 때문에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책을 읽다보면 디지털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무관심한 청와대 참모들에 분노가 치민다. 모든 것에 개입해 욕심만 부리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어공(정무직 공무원)들이 결국 정부 혁신 기회를 망쳤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산하기관에 파워포인트 작성을 맡기지 말라는 장관의 그 지시를 어기고 산하기관에 맡겨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게 한 과기정통부 공무원의 뻔뻔함 앞에서는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온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 집권 후 3년이 지나고 극심한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디지털 뉴딜 사업이 추진되었다. 2년 동안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마스크 대란, 백신 사전예약 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이 벌어졌다. 저자는 그 문제들을 해결해 가면서도 AI시대에 필수적인 데이터 확보를 위해 데이터댐을 구축하는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해 나간다. 요즘 다시 AI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데이터댐 사업의 성과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이번에는 또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하느라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진짜로 일하는 혁신

무엇이 혁신을 이렇게 어렵게 하는 것인가. 혁신은 미래를 내다보고 현재를 바꾸는 것이다. 누구나 하던 대로 하면 편안하다. 하지만 컴포트존(Comfort Zone)에 있으면 미래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하고, 배는 항구를 떠나 거친 바다로 나가야 한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북극곰이 수천 킬로미터 얼음 위를 헤매는 것은, 머물러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혁신! 그래서 이 아름다운 단어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막상 혁신을 하려고 나설 때는 총론찬성, 각론반대가 나타난다. 수많은 관행과 타성, 규범과 이해관계가 어지럽게 발목을 붙잡는다. 더구나 공공기관에서의 혁신이란 그야말로 전쟁이나 다름없다. “공공은 비효율적이다”가 마치 공리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공공은 비효율적이다는 말을 뒤집어 놓은 것이 바로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디지털은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일과 결합하면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투명성, 효율성, 혁신성을 창발시킨다. 전자정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국민들은 수많은 관공서를 들락거렸고 해마다 수많은 영수증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전자정부에서 내려받는 문서조차도 이제는 필요없는 시대가 왔다. 정보화는 아날로그 시대를 전산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데이터 시대이고, 이제 곧 AI시대로 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40년이 넘게 ‘정보화’에 머물러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줄곧 주장하는 것은 ‘진짜’ 혁신하라는 것이다. 일하는 척하지 말고, 진짜로 일하라는 것이다. 진짜 혁신하고, 진짜 일하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생산물(Output)을 관리하지 말고 성과(Outcome)를 달성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준다. 또한 행정 중심의 관료주의가 갖는 기술 리더십의 취약점과 공공부문 정보화 사업의 사업관리 방식, 고객지향적 UX, 서비스 모델이 아닌 플랫폼 운영의 중요성 강조는 현장을 겪어 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속이 후련한 이야기들이다.

HWP 프로그램에 대한 공무원들의 타성에 대한 지적은 필자의 감회를 새롭게 했다. 필자는 경기도에서 어공 시절에 문서 표준화와 클라우드 집중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아래한글 프로그램 독점 사용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난 뒤, 머리띠를 두른 공공노조 간부들의 항의성 방문을 받은 적 있다. 데스크탑 시절에 쓰던 문서프로그램이 인터넷 시대 협업을 막고, 문서 자산의 공유와 축적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데이터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은 누구보다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한글과 컴퓨터사는 이후 HWP의 기본 포맷을 XML방식의 hwpx로 바꾸었는데 이 과정도 책에 소개되어 있다.

또 필자를 격하게 공감하게 만든 다른 하나는 판결문, 정치자금, 국세청 데이터 등에 대한 데이터 개방이다. 데이터는 개방될수록 투명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 사회적 권력이 강한 곳일수록 데이터 개방에 소극적이다. 부정부패는 사후처벌이 아니라, 사전예방으로 가야 한다. 그러자면 데이터 개방이 필수다. 또한 이 책에서는 기업의 사업자등록번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극 공감한다. 기업체 사업자등록번호는 건설 입찰용 페이퍼 컴퍼니 등을 적발하는데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전화, 수도요금 등과 연계해서 분석하면 가짜 회사들은 얼마든지 쉽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기도에서 근무할 때 경기도와 거래하는 기업체들의 사업자등록번호를 모두 공공데이터로 개방해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있다.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지털 거버넌스를 말하다

저자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디지털 거버넌스다. 저자는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정부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까발린다. 또한 일하는 척하는 관료사회와 기술리더십에 무지한 정권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근본적으로 국가전략으로서 AI전환 전략이 왜 필요한지, 이를 통해 국가 디지털 전환과 혁신산업을 어떻게 새로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을 모르고는 미래를 말할 수 없고 거버넌스를 모르고는 실행을 말할 수 없다. 디지털 거버넌스는 미래를 향한 실행 의지를 담는 것이다.

저자가 왜 이렇게 국가 디지털 전환을 전략 차원에서 강조하는지 필자는 이해한다. 오랫동안 행정관료들은 ‘정보화’ 또는 ‘전산화’를, 국가행정 요구를 처리하는 시스템 구축이라고 이해해 왔다. 즉, 국가 운영에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고 이를 관리하는 지원업무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 국가전략으로서 디지털 전환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디지털 전환이야말로 국가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시켜 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부를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가 ‘디지털 선도국가의 부활’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국가정보화를 책임지는 정부 부처를 명확하게 해서, 예를 들면 ‘디지털전환부’를 설치하라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행안부와 과기정통부가 따로국밥이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수없이 현장에서 반복되는 주장이지만, 관료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디지털에 대한 이해와 맥락없이 정치적으로 주장되는 ‘데이터청’ 같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집행업무를 하는 청(廳)은 전 부처를 통해 데이터를 조정하고 흐르게 하는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데이터는 업무조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의 이해관계를 떠나 새로운 디지털 거버넌스를 위해서는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어내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나라를 바꾸려면 정부가 바뀌어야 하고, 정부가 바뀌려면 국정책임자와 공무원이 바뀌어야 한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바로 일하는 방식이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 이 책은 국가를 경영할 지도자를 꿈꾼다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 국가시스템을 만드는데 참여하는 공무원과 기업인들이라면 사명감을 갖고 열독해야 한다. 그래서 단순히 개인적인 독서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거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낡은 레거시 시스템과 사고방식, 일하는 방식을 깨트렸으면 한다. 국가 디지털 전환에 대한 전 국민적인 토론을 일으키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 진짜 혁신 운동으로 번져 나가기를 기대한다.

※서평을 쓴 임문영 대표는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사회 전환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미래전환 모임의 대표다. 민주당 디지털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경기도 미래성장정책관, 경기경제과학진흥원 상임이사를 지냈다. 『디지털 세상이 진화하는 방식』, 『디지털 시민의 진화』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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