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마디에 되살아난 보조금 회계감사 확대
“전면 재정비” 지시…기재부, 보류된 법 개정안 재논의
의무화 기준 10억→3억으로 낮춰 사업자 2천여곳 추가
부정수급 막는다지만 영세 법인 업무 비용 증가 불보듯
정부는 비영리법인 중 회계감사가 의무화되는 연간 보조금 기준을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고보조금 관리 체계 전면 재정비'를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2000개 이상의 비영리법인들의 비용 및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9일 이런 방향으로 보조금관리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이를 위해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2020년 대표 발의한 보조금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송 의원은 기재부 차관을 지냈다.
보조금법 개정안은 2020년 11월과 2021년 11월에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영세 사업자의 비용 및 업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보류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보조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송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사업자가 감사보고서 제출 의무를 지는 연간 보조금 총액을 10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보조사업 경비 정산보고서의 적정성을 감사인에게 검증받아야 하는 사업별 보조금 기준액을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각각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재부는 개정안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별도로 정부안을 제출하지 않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 기준에서는 (검증·감사 대상에서) 빠지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강도를 높이려는 것"이라며 "일단 법 개정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법안 심사자료를 보면 2019년 순사업비 기준 민간보조사업자는 6만 47개이고, 이 중 2.3%인 1394개 사업자(이중 595곳이 비영리법인)가 1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아 회계감사 보고서 제출 의무를 지고 있다.
보조금을 연간 3억원 이상 받은 민간 사업자는 비영리법인 2007개, 영리법인 1871개 등 3878개(6.5%)였다. 10억원 이상 사업자의 2.8배다.
개별 사업 보조금이 3억원 이상이어서 정산보고서 검증 대상이 된 민간보조사업은 2019년 6376건으로 전체의 6.2%였다.
기준을 '1억원 이상'으로 바꾸면 대상이 약 2.3배인 1만4560건(14.0%)으로 늘어난다.
국고보조금 규모와 보조사업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임을 고려하면 올해는 회계 감사 및 정산보고서 검증 대상이 2019년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국고보조금은 2019년 77조 9000억 원에서 올해 102조 3000억 원으로 늘었다. 올해 총지출 예산 638조 7000억 원의 16.0%를 차지한다.
회계감사와 정산보고서 검증이 의무화되면 영세 법인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보고서 작성과 검증 업무를 외부 감사인에게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해당 비용을 보조금에서 지출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보조금이 줄어들게 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안 개정이 보류됐던 주 원인이다.
회계감사에 드는 비용이 평균 2000만 원 정도이므로 이는 거의 부정수급(과실 포함) 발생과 비슷한 액수다.
2019년 기준 연간 보조금 총액이 3억원 이상인 3878개 민간 사업자가 각 2000만 원씩 들여 회계감사를 받는다고 하면 약 775억 6000만 원이 소요된다. 국고보조금 부정수급(과실 포함)이 확인돼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2018년 349억 원, 2019년 862억 6000만 원, 2020년 302억 4000만 원 등이다. 연도별로 차이가 나지만 대체로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부정수급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회계감사를 확대하더라도 실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더구나 인건비 부풀리기 등의 부정수급은 정산보고서나 감사보고서로는 적발하기 어렵고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