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0% 룰'과 트럼프 2.0 시대
자신의 패권 넘보지 못하게 하는 기준선
소련과 일본 이어 중국에 대해 집중견제
트럼프가 대중 봉쇄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트럼프는 먼저 러시아부터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9일 푸틴과의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종전협상 개시에 합의했습니다. 자세한 통화내용은 밝히지 않았으나 아마도 푸틴의 요구사항 대부분을 들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유럽을 방문중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의 국경선 회복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힌 대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푸틴을 끌어들이면서 젤렌스키를 안았습니다. 종전협상을 매개로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원조 등을 제시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 새로 발견된 우크라이나 희토류 채굴 및 사업권의 절반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업가다운 면모입니다.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이 어렵다면 대신 미군 주둔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종전 후 자신의 대통령 재선을 노리고 트럼프와 협상하고 있습니다.
푸틴과의 통화에 이어 트럼프는 14일 인도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을 겨냥한 미-인도 방위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F-35 판매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F-35 스텔스기는 핵심 동맹국에게만 판매가 허용되는 기종이며 인도가 강력하게 원하는 무기입니다. 인도의 경우 중국과 오랜 기간 앙숙 관계였습니다. 1970년대까지 중국은 인도에 비해 훨씬 뒤처진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자신들을 추월하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위기감에 빠졌습니다. 개방경제로 전환하고 자유주의 시장경제로 편입하며 대서방 관계회복에 나섰습니다. 1998년에는 핵무장에 성공하고 안보를 강화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중-대미 세력균형을 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봉쇄전략으로 패권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자신들의 GDP 대비 40%를 넘는 국가가 등장하면 가차없이 대응해 자신들의 패권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미국 패권전략의 ‘40% 룰’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소련과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미국은 1960년대말 소련이 자신들의 GDP 대비 40%를 넘기 시작하자 그동안의 봉쇄전략을 전면수정해 중국을 끌어들입니다. 중국과 대소련 포위망을 넓게 펼치며 소련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닉슨 전략’입니다. 당시 중국 입장에서 북베트남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친소국가로 넘어갈 경우 러시아-북한-베트남으로 이어지는 대중 포위망이 구축될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미-중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72년 역사적인 닉슨의 방중이 성사되고 동아시아 지정학적 합의 내용을 ‘상하이 커뮤니케’로 발표합니다. 중국은 UN에서 대만을 내쫓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어 소련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후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하고 이듬해 미국과 수교합니다. 한편, 미국은 레이건 시절 군비경쟁을 가속화해 소련으로 하여금 이를 견디지 못하게 함으로써 붕괴를 유도했습니다. 소련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채택하며 버텼으나 몰락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1970~80년대에 아시아를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가 엄청나게 진행됐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절상을 강제하며 추격을 봉쇄했습니다. 일본 경제는 플라자 합의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30년 넘게 장기침체를 겪고 있습니다. 일본은 2차 대전 후 사실상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미국의 보호 아래 전후 복구에 전념하고 경제재건에 집중한 결과 1960년대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그후 빠르게 미국 경제를 추격하며 1985년 무렵에는 미국 GDP 대비 32%에 이르고 1995년 70%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플라자 합의에 따른 일본 대외경쟁력 약세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되는 중국의 부상, 부동산 거품 붕괴 등으로 30년에 걸친 장기불황을 겪으며 2017년 25%로 주저앉았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10년 넘게 연평균 9%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끝에 2010년 미국 GDP의 40%를 넘기며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그 이후 성장을 이어가 2017년에는 62.1%, 2021년에는 75.2%까지 올라서며 2030년 무렵에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국은 경제성장에 자신감을 얻어 2012년 시진핑 집권과 함께 위대한 중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몽(中國夢)’을 선언합니다. 구체적인 세계전략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놓았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반영하듯 러위청 중국 외무성 상무부장은 2022 전인대 정세포럼에서 “경제규모로 미국을 추월하느냐 여부보다 사상과 관념, 거버넌스 능력, 세계 공헌 등에서 미국을 넘어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했습니다. 미국은 경악했습니다. 러위청의 보고는 미국 사회 전역에 퍼져 있는 ‘중국위협론’에 기름을 붓는 내용이자 세계적인 반중정서를 더욱 부추긴 발언입니다.
미국은 우선 군사적으로 중국을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 오바마 정부에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천명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했습니다. 이무렵부터 미국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 국방안보전략보고서(NDS) 등을 통해 중국을 최대 안보위협국으로 지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대중 군사 포위전략은 한-미, 미-일, 미-필리핀 등 전통적인 부챗살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오커스(AUKUS), 파이브아이즈 등 대중 포위망을 펼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의 해군력 강화를 크게 의식하며 대륙국가 중국이 해양대국인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여기며 중국을 남중국해에서 더이상 빠져 나올 수 없도록 묶어두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걸림돌이 러시아였습니다. 러시아는 1989년 고르바초프의 방중으로 중국과 화해하고 군사 경제교류 등 30년 넘게 러-중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인도와의 밀착으로 미국의 대중 포위망 구상에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도 중국, 인도와의 무역확대로 돌파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러시아와 협력해 미국의 군사포위망을 뚫으려고 하는 한편, 베이징 컨센서스와 브릭스(BRICS) 회원국 확대 등으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파열음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 집권 후 러시아와의 앙숙 관계를 뒤바꿨습니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역닉슨 전략(Riverse Nixon)'입니다. 그러면서 환율조작국 예비지정, 고관세 부과 등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자 노력했습니다. 뒤이어 바이든 정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4개 국과 대중 공급경제망 ‘인-태 경제프레임(IPEF)’을 구성하며 촘촘한 대중 경제봉쇄를 설계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세계 경제는 침체일로에 있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은 ‘나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 중국은 부동산 경제 침체 등으로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대미 GDP규모는 2023년 65%로 내려앉았습니다. 미국의 경제 봉쇄 효과 탓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으나 트럼프 2.0 시대에 미국의 대중 봉쇄는 군사-경제 모든 분야에 걸쳐 강화될 것입니다. 철강 등 보편 관세 부과 등으로 미국내 현지 공장 증설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자국으로의 경제집중을 유도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 이면에는 자신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준 노동자 계급이 있습니다. 미국 노동자들이 트럼프에 열광하고 민주당이 속수무책인 이유입니다.
문제는 미-중 전략경쟁으로 우리가 유탄을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트럼프가 4월부터 자동차 분야에 대한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한-미 FTA로 무관세 혜택을 누려온 자동차 수출이 타격을 입고 우리 경제에는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증권가에서는 자동차 관세가 부과될 경우 현대-기아 영업수익률이 19% 정도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원(KDI)은 자동차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1.6%)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자동차 수출은 대미 수출 1위 품목이고 전체 수출액의 49.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미 반도체에 대한 중국 수출 규제 등으로 반도체 산업이 휘청이는 와중에 자동차 산업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트럼프 2.0 시대에 달라지는 세계질서는 아직 시작도 안 됐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으로만으로도 우리에게 커다란 위기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핵을 둘러싼 북-미 협상이 본격화되면 우리가 겪게 될 안보상황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루빨리 윤석열 내란을 종식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미-중 전략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경제위기와 새로운 차원의 안보위기에 대처해야 합니다. 다가올 조기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는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