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된 ‘추가경정예산’ 공방

야당은 촉구하고 정부·여당이 딴지 거는 촌극

민주당 '민생 회복·경제 성장' 35조 추경 제안

국민의힘, 민주당 비난하기 바빠 협상은 뒷전

최상목 대행 “예산 조기 집행이 우선”만 반복

민생 경제 침몰 중인데 추경 공방에 허송세월

2025-02-14     장박원 에디터

“저녁에 손님이 반 토막 났다는 식당이 있는데 이것도 배부른 소리입니다. 그 정도만 돼도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저녁에 한두 팀 받은 적도 허다합니다.”

13일 저녁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만난 한 주점 사장의 하소연에서 내수 경기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 소매 판매지수는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소매 판매지수는 3년 연속 뒷걸음질했다. 내수의 불씨가 꺼져가는데도 정부가 건전재정만 내세우며 방치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12·3 내란 사태로 내수 불황은 이제 임계치를 넘어섰다.

정부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4일 발표한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 2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소비·건설 투자 등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취약부문 중심 고용 애로가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수 회복 지연’이라는 표현을 새롭게 추가하고 두 달 연속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명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과 경제단체는 물론 외국 투자은행(IB)들도 내수 진작용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14. 연합뉴스

국정 책임진 정부·여당이 서둘러야 할 추경인데…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정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여당이 추경 편성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추경 규모도 더 늘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쪽은 정부와 여당이다.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야당은 추경을 서두르고 정부와 여당은 발목을 잡는 기이한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어떻게든 야당이 돋보이는 것을 막으려는 여당의 치졸함이 생사 고비에 처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3일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을 위해 35조 원 규모의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제시한 30조 원보다도 5조 원을 증액했다. 추경을 편성하다 보니 써야 할 데가 많아진 것이다.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 부문에 각각 24조 원, 11조 원을 배정했다. 민생 회복 부문은 소비 쿠폰 13조 원 등 불씨가 꺼져가는 내수를 살리는 데 주로 할당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예산도 포함됐다. 국민의힘과 재계가 요구한 내용도 반영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지원, 연구개발(R&D) 확대 등의 투자에 5조 원을 배정한 것이다.

 

민주당 추경안. 연합뉴스

민주당 추경안에 딴지만 거는 국민의힘

민주당은 12·3 내란 사태로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며 소비 위축과 수출 둔화 등 우리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내수 불황과 고환율, 트럼프 발 무역전쟁이 겹치며 스크루플레이션(물가가 오르는데도 경기가 침체해 가계가 어려워지는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신속하게 추경 편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추경안에 딴지만 걸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추경 편성이 정부의 고유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야당이 마치 정부를 압박하듯 자체 추경안을 편성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오만한 발상”이라고 했다. 내수 촉진을 위한 소비 쿠폰에 대해서도 ‘현금 살포’라는 굴레를 씌워 비난했다. 박수민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악성 포퓰리즘 추경이다. 현시점에서 추경 편성은 세금으로 표를 사겠다는 심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송언석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무분별한 추경은 민생과 경제를 죽이는 독이 될 우려가 크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매표 행위”라고 썼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운데)가 14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2.14. 연합뉴스

최상목 대행 “기존 예산 집행이 우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런 국민의힘에 사실상 맞장구를 쳤다.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신속한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필요하지만, 기존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예산 조기 집행”이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그는 또 “추경에 대한 원칙부터 논의하자. 논의에는 추경의 필요성과 시기, 규모, 사업 등 모든 쟁점이 들어가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들은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갈 판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하나 따져보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한가한 태도에 야당은 거듭 추경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정부와 국민의힘은 꽁꽁 얼어붙은 민생의 막막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추경에 적극 협조하라”며 “국민이 겪는 어려움 앞에 정치적 유불리나 이런저런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님을 명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추경안에 민생회복지원금이 사실상 포함됐다고 비난했는데,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내수 진작 대책은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민주당 추경안에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도 “여당은 추경을 합의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라 살림보다는 어떻게 야당을 괴롭힐까 고민하는 모습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며 추경 편성을 위한 협상을 거듭 요구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