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상 회복 종이는 없다’ 전문가 증언, 겹겹이 왜곡됐다
헌재 재판정에서 반복된 ‘형상기억 종이’ 논란
‘세상에 원상 회복 기능이 있는 종이는 없다’?
민경욱의 ‘빳빳한 투표지’, 감정 결과 ‘접힌 자국’
‘그런 종이 세상에 없다’ 증언, 실제 증언과 달라
당시 민경욱 측 도태우, 헌재에서 고의 증언 왜곡
안이한 선관위 대응도 음모론 확산 일조
지난 3회에 걸쳐 ‘빳빳한 투표지’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진실을 찾아서 관외사전 투표지의 경우, 그리고 투표함에 넣을 때 접지 않고 구부려서 넣는 경우를 살펴봤다.
관외사전 투표지의 경우 회송용 봉투에 넣어 투표하게 되어 있고, 그 경우 짧은 투표지는 접지 않고 넣는 것이 당연하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또 이어서 투표일에 언론사 카메라에 잡힌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투표자들이 투표함에 넣을 때 접지 않고 넣는 경우가 절반 혹은 그 이상이라는 점도 확인했다. 접지 않은 투표지가 부정선거의 증거가 될 수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 [1회] '신권처럼 빳빳한 투표지' 부정선거 음모론의 실체
☞ [2회] '부정선거 증거' 빳빳한 투표지 사진들, 거의 다 엉터리
☞ [3회] 관외투표 아니어도 투표지 안 접는데 다 부정선거?
이번 회에서는 음모론자들 사이에 부정선거의 증거로 널리 회자되고 윤석열 탄핵심판 재판정에서까지 반복된 소위 ‘형상기억 종이’ 논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형상기억 종이’ 주장은 민경욱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에서 감정인으로 나섰던 전문가의 증언을 근거로 한 것인데, 이 증언은 그 명제 자체로서도, 또 실제 발언 내용에서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원상 회복 기능이 있는 종이는 없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윤석열 측 대리인은 중앙선관위의 주장을 반박한다는 취지로, ‘충북대학교 목재종이과학과 신수정 교수’의 법정 증언이라며 “세상에 원상으로 회복되는 기능이 있는 종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PPT 화면을 띄웠다.
일단, 이 증언 발언 자체의 진위에 대해서는 뒤에서 따로 따질 것이다. 일단은 이 증언의 전후 경위부터 살펴보자.
여기서 거론된 신수정 교수는 2020년 민경욱이 총선 결과에 불복해 제기한 선거무효소송에서 감정인을 맡았던 종이 기술 전문가다.
선거소송의 절차는 행정소송법과 민사소송법을 준용하기 때문에 감정은 민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이 선정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해당 선거무효소송에서는 대법원이 원고인 민경욱의 요청을 받아들여 충북대 신수정 교수를 감정인으로 지정했다.
소송에서 전문 기술이나 지식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감정인을 누구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그 승패 향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한 업계에 속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닌데다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대법원은 원칙대로 양측의 추천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전문가를 선임할 수도 있었고, 투표지 용지를 제조, 납품한 두 제지업체(한솔제지, 무림페이퍼)의 기술연구소 연구원을 감정인으로 선임할 수도 있었다. 그랬더라면 애초부터 승산이 없었던 민경욱에게는 아예 다퉈볼 여지조차 사라졌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민경욱이 추천한 전문가를 감정인으로 지정한 것은 큰 특혜인 셈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몇 마디 증언만 들으면 될 사안을 위해 감정인으로까지 선임할 리는 없다. 윤석열 측은 신 교수가 감정인으로 선임되어 했던 활동들 중 윤석열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증언 하나만 골라서 내세웠지만, 진짜 진실은 그 뒤에 있는 것이다. 감정인이 법정에 제출한 감정 결과다.
민경욱 주장 ‘빳빳한 투표지’, 감정 결과 ‘접힌 자국’
대법원이 감정인 신수정 교수에게 맡겼던 것은 민경욱이 가짜라고 주장했던 투표지들에 대한 기술적 감정이었다. 그래서 민경욱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한 투표지들 중에 122장을 샘플로 선별해 신 교수에게 감정을 맡겼다.
물론 이 감정 대상 122장에는 민경욱이 접힌 흔적이 없어 가짜라고 주장한 투표지들도 포함됐다. 민경욱의 주장대로라면 이들 투표지에서 접은 흔적이 나타나지 않아야 했다.
이 감정에 대한 결과가 나온 것은 신 교수의 문제의 증언 이후 몇 달이 지난 2022년 2월이었다. (이후 4월에도 추가 보고가 제출됐다.)
감정인 신수정 교수가 현미경으로 살펴 감정한 결과, 뜻밖에도 ‘가짜 투표지’들 중 상당수에서 접혔던 흔적이 발견됐다. 민경욱이 빳빳한 투표지라고 골라낸 투표지들 중 상당수가 겉으로만 접힌 자국이 보이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접혔던 투표지였던 것이다.
“③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로 분류된 투표지를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그 중 일부에서 접힌 흔적을 확인한 반면, 접힌 흔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투표지도 있었다” – 신수정 교수 감정 결과,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수30 판결
“더군다나 위 검증기일에 확인한 투표지는 개표 완료 후 유 · 무효별, 후보자별로 각 분류되고 100매 단위로 묶여 상당기간 증거보전이 되어 있었으므로 외관상으로는 투표지에 접힌 흔적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원고가 '접힌 흔적이 없다'고 선별한 투표지 중 상당수에서 실제로는 접힌 흔적이 확인되었던 사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 접힌 흔적 없는 투표지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수30 판결
☞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수30 판결문 전문
이는 접힌 자국 없는 투표지는 곧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민경욱의 주장이 완전히 뒤집힌 결과다.
또 결과적으로 전문가의 과학적 검증에서 투표지 용지에 복원 기능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민경욱조차 접은 흔적이 없다고 판단해서 감정까지 했던 투표지에 접은 흔적이 나왔으니, 적어도 원상복원 기능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확인된 것이다.
한편, 이런 감정 결과로 인해 감정인인 신 교수가 법정에서 내놓았던 ‘세상에 원상 회복되는 종이는 없다’는 증언을 신 교수 본인의 감정 결과가 뒤집은 것처럼 보이게 됐다. 하지만 신 교수가 했다고 알려진 해당 증언 내용이, 사실은 실제 법정 증언을 민경욱 측이 왜곡해서 알린 것이었다.
‘그런 종이 세상에 없다’ 증언, 실제 증언과 달라
이제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측이 “충북대 신수정 교수가 ‘세상에 원상으로 회복되는 기능이 있는 종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고 증언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 과연 그대로 사실인지 따져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주장은 해당 증언의 실제 내용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이 증언은 2021년 11월 19일 대법원에서 있었던 감정인 신문 과정에서 나왔다. 이날 민경욱 측 대리인이 감정인 신 교수에게 던진 질문은, “시간이 흐를수록 접힌 자국이 없어지고 다림질한 것처럼 빳빳하게 펴지는 형상기억 종이가 실재하느냐”였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신 교수의 대답은 “그런 종이는 세상에 없습니다”였다.
여기서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신 교수가 “그런” 종이가 세상에 없다고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그런”이란 지칭은 민경욱 측 대리인이 질문에서 지칭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하므로, 질문 내용과 답변을 종합하면 신 교수 증언의 정확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접힌 자국이 없어지고 다림질한 것처럼 빳빳하게 펴지는 형상기억 종이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 실제 증언을,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측이 신 교수의 증언이라고 주장한 내용과 비교해보자. 비슷해 보이겠지만 많이 다르다.
“세상에 원상으로 회복되는 기능이 있는 종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2020년 선거무효소송에서 민경욱 측은 질문에 구체적인 특수 조건들을 끼워 넣어 신 교수에게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로 답하도록 유도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일인데 그 도를 넘어버린 것이다.
먼저 민경욱 측이 던진 질문은 마치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자연적으로’ 펴지는 종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들린다. 다른 조건 없이 ‘단지 시간만 지나면 펴지는 종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상기억합금’도 그렇게는 안된다. 즉 세상에 그런 종이만 없는 게 아니라 그런 물질이 아예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질문에 ‘다림질한 것처럼 빳빳하게 펴지는’이라는 표현까지 넣었는데, 어느 정도 펴지는 것도 아니고 ‘다림질’, ‘빳빳’ 수준이라면 이건 기술이 아니라 마법의 수준이다. 이쯤 되면 기술 전문가는 그런 종이가 없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형상기억 종이’도 의도적인 왜곡이다. ‘형상기억 종이’라는 말은 원래 선관위가 했던 말이 아니다. 당시 민경욱 측이 이 과장된 질문을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다. 이보다 앞서 민경욱 등 부정선거론자들이 ‘빳빳한 투표지’들을 찾아내 그걸 가짜 투표지라며 문제 삼자 선관위는 “원상복원기능이 있는 특수 재질”이라고 과장되게 설명했는데, 여기서 꼬투리를 잡은 민경욱 측이 그걸 ‘형상기억 종이’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보다시피 민경욱 측 대리인은 여러 과장을 더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들을 끼워넣어 질문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신 교수로부터 ‘그런 종이는 없다’는 답을 받아낸 것이다. 질문의 구체적 내용이 달라지면 답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민경욱과 그 대리인 변호사들은 이후 이 질문에 끼워넣었던 특수 조건들을 빼버리고는 일반화해서 신 교수가 마치 “세상에 원상으로 회복되는 기능이 있는 종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증언했다고 주장해왔다. 법정 증언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다.
당시 민경욱 측 도태우, 헌재에서 고의 증언 왜곡
이렇게 보다시피, 2021년의 ‘형상기억 종이’ 증언은 실제 전문가 증언을 그대로 전한 것이 아니라 ‘선거불복’과 ‘정치선동’의 목적으로 과장, 왜곡되어 퍼뜨려졌다. 그리고 이 왜곡된 ‘전문가 증언’을 2025년의 윤석열 측 탄핵심판 대리인이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측 대리인이 민경욱 측에 의해 왜곡된 ‘전문가 증언’을 그대로 헌재 재판정에서 반복한 것이 2021년 증언 당시의 상황을 잘 모르고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아니었다.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PPT 화면을 통해 장시간에 걸쳐 ‘빳빳한 투표지’ 사진들을 늘어놓고 또 신수정 교수의 증언을 허위로 주장한 사람은, 윤석열 대리인단의 여러 변호사들 중 ‘도태우’ 변호사였다.
유명한 ‘그 도태우’ 맞다. 2024년 22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 대구 중남구 후보로 공천받았다가 과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허위의 북한 개입설을 주장했던 사실이 드러나자, 국힘이 처음엔 버티다가 다시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천 취소를 했던 바로 그 도태우다. 도태우는 박근혜가 탄핵심판을 받을 당시 유영하 변호사와 함께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이 도태우는 2020년 민경욱이 제기한 문제의 선거무효소송에도 참여했던 변호사다. 당일 법정에 출석한 민경욱 대리인단에는 도태우 외에 현재 윤석열 변호인단 일원인 석동현, 그리고 앞서도 거론한 박주현 등도 있었다.
즉 도태우는 2020년에 민경욱이 ‘빳빳한 투표지’를 문제 삼아 선거무효소송을 벌일 때 법정에서 ‘빳빳한 투표지’ 주장을 함께 펼쳤던 장본인인 것이다. 게다가 도태우는 신 교수의 문제 증언이 나왔던 11월 19일 감정인 신문기일에도 법정에 있었다. 어쩌면 신 교수에게 문제의 질문을 던진 바로 그 장본인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도 법정에서 동료 변호사가 그 질문을 하고 신 교수가 답한 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사람인 것이다.
즉 도태우가 해당 전문가 증언의 실제 의미를 몰라서 헌법재판소에서 왜곡된 증언을 사실인 것처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증언의 실제 내용을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고의로 왜곡한 것이다.
안이한 선관위 대응도 음모론 확산 일조
2021년 11월 신수정 교수에 대한 감정인 신문에서, 만약 ‘일반적인 종이보다 복원력이 강한 특수재질 종이가 있느냐’라는 질문이 나왔다면 신 교수는 아마도 ‘그런 종이도 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또 추가로 ‘그 복원력이란 것이 어떤 정도냐’, 또 ‘투표지도 그런 종이냐’라고 물었다면 신 교수는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적 지식에 기초해 구체적인 답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법정에서 그런 상식적인 반대신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해당 기일에 민경욱 측은 4명의 변호사가 참석했던 반면, 그에 맞서는 선관위 측 대리인 변호사는 이 소송 내내 단 한 명이었다.
해당 판결문에 따르면, 판결 시점에 민경욱 측 대리인들은 위 감정인 신문 당시 함께했던 4명 중 3명(도태우, 석동현, 박주현)이 빠지고도 강용석, 김소연을 비롯해 12명이나 됐다. 선관위 측 대리인은 여전히 1명이었다.
법정은 물론 진실과 잘잘못을 가리는 곳이지만, 원고와 피고 측의 대리인단의 규모와 그 능력, 의지 등에 따라서 결과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물론 선관위는 법적으로는 이 선거무효소송에서 모든 쟁점에서 완승하기는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민경욱과 그 대리인 변호사들을 필두로 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이 소송 과정에서 나온 단편적인 사진들과 왜곡된 증언을 이용해 법정 바깥에서 억지 주장들을 늘어놓음으로써 소송 패소와 별개로 음모론을 크게 부풀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들이 소송이 완패에 이르게 된 여러 결정적인 불리한 증거들은 전혀 보여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선관위는 안이한 대응으로 소송 완승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지금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부정선거 음모론 확산을 가라앉히기는 커녕 결과적으로 더 키운 셈이 됐다.
민경욱 등의 주장에 반박하느라 다급하게 제작한 영상에서 ‘원상복원기능’을 언급한 부분은 어이없도록 어설퍼서 장외 선전전에서 되치기를 당했고, 법정에서 민경욱 측이 내세운 여러 변호사들에 맞선 선관위 측 변호사의 대응 역시 부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개인의 역량을 떠나 4:1, 12:1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법원에서 민경욱 등의 음모론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다는 낙관론으로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부실한 대응들의 결과가 12.3 내란의 한 핑계거리가 되어 국가 전체를 흔들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사실관계와 별개로, 민경욱이 접힌 흔적이 없다며 가짜 투표지라며 전문가 감정까지 맡긴 투표지에서 현미경 조사 결과 접힌 흔적이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이미 이 연재에서 살펴본 사례들, 즉 관외사전 투표지여서 접히지 않았거나, 현장 투표임에도 투표자가 접지 않고 투입한 경우들과는 분명히 다른 제3의 사례다.
다음 5회에서는 이렇게 검사 결과 접었던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접힌 흔적이 보이지 않아 결과적으로 민경욱의 뒤통수를 친 셈이 된 투표지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나올 수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