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외투표 아니어도 투표지 안 접는데 다 부정선거?
투표자 절반이 투표지 접지 않은 채 투표함에 투입
현실도 규정도 ‘보이지 않으면 접을 필요는 없다’
박근혜·권성동·김기현·정진석도 '부정선거 공범'?
지난 2회에 걸쳐 관외사전 투표의 경우 회송용 봉투에 넣어 투표하게 되어 있고, 그 경우 짧은 투표지는 접지 않고 넣는 것이 당연하다고 조목조목 설명했다.
☞ '부정선거 증거' 빳빳한 투표지 사진들, 거의 다 엉터리
중앙선관위의 관외사전 투표 안내에도 접으라는 지시나 권고가 전혀 없는데다, 넉넉하게 큰 봉투에 작은 종이를 넣을 때 접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회송용 봉투에 넣는 투표지를 접어서 넣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증거라며 제시하는 ‘신권처럼 빳빳한 투표지’ 사진들 중 다수가 이런 관외사전 투표지였다. ‘관외사전’ 표시된 집계전이 함께 찍힌 경우도 많았고, 최초 의혹 제기를 한 당사자가 스스로 ‘관외사전 투표에서 나온 부정선거 표’라며 사실상 모순된 주장을 한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런 관외사전 투표지가 ‘빳빳한 투표지’ 사례의 전부는 아니다. 음모론 차원에서 제기된 투표지 사진들 중에는 관외사전이 아닌 당일 투표나 관내사전 투표지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들에 나온 투표지들을 잘 보면 관외사전 투표지만큼 빳빳하지는 않다. 관외선거 투표지가 음모론자들의 표현대로 ‘신권 다발처럼 빳빳’하다면, 그 외의 투표지들은 빳빳하다고 주장을 해도 관외선거 투표지처럼 ‘신권 다발’ 같은 수준은 아니다. 단지 관외선거 투표지가 특별히 빳빳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음모론자들이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단지 접은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빳빳한 투표지’라며 주장된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관외사전 투표지가 아니면서도 접은 자국이 보이지 않는, ‘덜 빳빳한’ 투표지들은 어떻게 된 연유일까? 여기에는 가장 단순한 이유가 있다.
절반의 투표자들, 투표지 ‘접지 않고 투입’
지난 회에서 살펴봤던, 민경욱이 2020년 총선에 불복해서 제기했던 선거무효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이 관외사전 투표지의 경우보다 앞서 먼저 판시했던 대목이 있다.
“선거인이 투표지를 접지 않은 채로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고”
쉽게 말해 봉투에 넣어 투표하는 관외사전 투표 외에 투표지 자체만 투표함에 넣는 경우에도 접지 않고 넣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확고한 직접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닌 한 단정적으로 쓰는 것을 피하기 때문에 이렇게 돌려 쓴 것일 뿐, 그런 경우는 흔한 정도를 넘어 아예 일반적이다.
이제 아래의 투표 장면 사진들을 살펴보자. (풍부한 사례 제시를 위해 여러 사진을 첨부했다.)
보다시피 투표함에 넣을 때 아예 접지 않고 둥글게 휘어서 넣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사진들 모두는 연출된 것도 아니고 선거 투표일에 실제 투표하는 장면을 언론사들이 취재 목적으로 촬영한 것이다. 투표함 앞에 참관인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접지 않고 구부리기만 해서 투표함에 넣는 사례들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물론 투표 현장을 찍는 카메라 기자들 역시 일부러 접지 않는 투표자들만 주목해서 찍었을 리는 당연히 없다. 필자가 찾아본 투표함 투입 장면들 중 투표지를 접어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당연히 적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접지 않고 구부리기만 해서 투입하는 장면들이 놀랍게도 연합뉴스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 투표 장면들 중 절반이 넘는다. 언론사 전체로 범위를 늘려 이미지 검색을 해봐도 별 차이가 없다.
이 비율을 일반 투표자들의 비율로 간주하면, 전체 투표자들 중 절반 이상이 투표지를 완전히 접지 않고 구부려서 넣는 것이다.
현실도 규정도 ‘보이지 않으면 충분, 접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추정적 결론을 내어볼 수 있다. 적어도 일반 투표자들 중 절반 내외가 투표할 때 접지 않고 구부려서 투입하는 만큼 이런 사람들은 ‘접지 않은 투표지가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음모론에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접지 않은 투표지가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은, 그 스스로 투표할 때 항상 접어서 투입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면서, 다른 투표자들도 당연히 접어서 투표할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대전제로서 상정하고 있는 ‘투표지는 반드시 접어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는 믿음에서부터 심각한 오류가 있다. 위 사진들에서 보다시피 실제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규정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직선거법 제157조에서 “기표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넣으라고 규정되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법의 취지가 투표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표 내용을 보이지 않게 할 목적이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중앙선관위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만 않는다면 꼭 접을 필요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혹시 접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여기서 처음 들었고 그대로 믿기에 미심쩍다면,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지금 바로 직접 인터넷 검색을 해서 확인해보시라.
당장 필자도 투표지를 접지 않는다. 철 들고 나서 모든 선거에서 필자는 투표지를 완전히 접지 않고 구부리기만 해서 투표함에 넣어왔다. 당연히 투표함 지켜보는 선거사무원이 접지 않았다고 제지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필자가 이렇게 투표지를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는 데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혹시라도,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혹시라도, 투표지에 기표하는 도장의 인주가 접힌 투표지의 맞은편에 묻어 무효표가 될까 하는 ‘쓸데없는 기우’ 때문이다.
사실은 필자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투표에 사용하는 인주와 투표지 모두 번짐과 묻어남이 최소화되도록 특수제작된 것들이고, 나아가서 설사 접히면서 반대편에 인주 자국이 묻는다고 해도 원래 어디에 찍었던 것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필자는 혹시라도 피로에 찌들어 있을 개표 사무원들이 순간 잘못 보지는 않을까 싶어 접지 않고 구부려서 투표함에 넣는다. 접지 않고 투입하는 다른 대부분의 투표자들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박근혜·권성동·김기현·정진석도, 홍준표·나경원 가족도 부정선거 공범?
앞서 지겹도록 투표 사진들을 보셨지만, 마지막으로 몇 컷만 더 보여드리겠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포함한 정치인들도 접지 않고 구부려서 투표한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당장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보면 박근혜를 비롯해 국민의힘 의원들도 완전히 눌러 접지 않거나 아예 접지 않은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사진들이 즐비하다. 또 본인은 접어서 넣는데 함께 투표하는 가족은 접지 않고 구부려 넣는 경우들도 많았다.
보다시피 박근혜, 권성동, 김기현, 박덕흠, 정진석 등도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으면서 접지 않고 구부려 넣었으며, 홍준표와 나경원은 본인은 접어서 넣었지만 배우자들이 접지 않고 구부려서 넣었다.
여기서 유의미한 현상으로 특기할 점은, 일반인들 중 접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보다 오히려 국힘 정치인들 중에서 접지 않은 경우의 비율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투표하는 자신이 후보인 경우가 많아 한 표가 더 소중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접지 않고 넣었으니 이들이 투표한 투표지는 개표 시점에도 접은 자국이 없을 것이 당연하다. '접힌 자국 없는 투표지는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비춰보자면 이들 국힘 정치인들도 부정선거 범죄의 공범이 되는 셈이다.
한편, 공교롭게도 이렇게 국힘 정치인들 중에서 접지 않고 투표한 사람들은 스스로 ‘접히지 않은 투표지’ 문제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부정선거론에 흠뻑 빠진 윤석열은 과거 검찰총장 당시 포착된 모습부터 매번 투표지를 접어서 넣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항상 투표지를 접어서 넣어왔으니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접을 것이라고 믿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윤석열은 대통령 당선 후 두 차례 관외사전 투표를 하면서 투표지를 회송용봉투에 넣어 투표한 바 있는데, 확신하건대 투표지를 그대로 투표함에 넣을 때는 접어서 넣어온 윤석열조차도 회송용봉투에 넣을 때는 접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봤다시피 회송용봉투에 넣을 때는 접으라는 지침 자체가 없는데다가, 아무리 윤석열이라 해도 축의금, 조의금 봉투에 지폐를 일부러 반으로 접어 넣을 정도의 이상 성격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번회에서는 투표자들의 절반 가량, 혹은 그 이상이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을 때 접지 않고 넣는다는 증거들을 살펴봤다. 이전에 두 차례에 걸쳐 관외사전 투표지는 원래 접힐 리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접지 않은 투표지가 부정선거의 증거라는 주장은 이걸로도 충분히 타파되는 것이다.
하지만 ‘접힌 자국 없는 투표지’ 문제에는 아직 마지막 하나의 퍼즐이 더 남아 있다. 그 마지막 단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