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압박하는 트럼프…꿈쩍도 않는 시장

트럼프, 파월 연준 의장에 '금리인하' 강하게 요구

트럼프 인하 압박에도 채권수익률 움직이지 않아

시장금리는 윽박지른다고 내려가기 어려운 구조

10년 국채수익률 5.5%를 터치할 것이란 전망도

2025-01-25     이태경 편집위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촉구했다. 하지만 채권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파월 연준 의장이 트럼프의 주문을 따를 가능성이 낮은데다, 설사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다 해도 재정적자 등을 감안할 때 시장금리가 내려갈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전 세계 채권수익률의 랜드마크라 할 미 국채 10년물이 5.5%를 터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고금리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에 큰 악재다.

파월에게 기준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강하게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유가를 내리라고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또 "유가가 떨어지면서 나는 금리를 즉시 내리라고 요구하겠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금리가 내려야 한다. 우리를 따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연준)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는 많은 사례에서 내가 연준 사람들이나 의장보다 더 나은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때도 독립성을 흔드는 발언을 해왔다. 2017년 자신이 파월 의장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했으면서도, 재임 기간 내내 그가 정책 결정 시점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팬데믹 이후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섰을 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준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글을 자주 게시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취임식 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2021년 1월 6일의 의사당 난입사건 피고인들을 사면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2025.1.20.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가 파월 강하게 압박해도 꿈쩍 않는 채권수익률

트럼프가 기준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했지만 정작 시장금리를 결정짓는 국채수익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글로벌 채권의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23일 뉴욕증시 마감 무렵 4.65%로, 하루 전 같은 시간 대비 4bp(1bp=0.01%포인트)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금리 선물시장 반응도 무덤덤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오는 29일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99.5%로 반영했다. 이는 전날보다 오히려 0.6%포인트 오른 수치다. 올해 금리 인하 횟수 기대도 큰 변동은 없었다. 연준이 올해 말까지 기준금리를 1회 인하할 확률은 33%로 반영해, 하루 전(35%)보다 소폭 낮아지는 데 그쳤다.

트럼프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파월 의장의 연준 독립성 유지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데다 트럼프가 연준을 달리 강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해 11월 FOMC 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사퇴를 요구할 경우 그만둘 것이냐는 기자 질의에 "안 하겠다"라고 짧게 답했다. 대통령이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이사진을 해임하거나 강등시킬 법적 권한이 있느냐는 질의에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며 독립성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까지다.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런 압박성 발언이 금리를 낮추는 데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전망"이라며 "대통령이 연준 인사들을 압박하거나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뒤 연 기자회견 도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지난해 7월까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온 연준은 같은 해 9월 이후 이번까지 7회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했다. 2024.06.13. AFP 연합뉴스

미국 시장금리 당분간 구조적으로 내려가기 힘들어 

인플레이션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는 마당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무척 어렵다. 더구나 트럼프가 공약한대로 관세전쟁을 수행하고 이민자들을 대거 추방한다면, 인플레이션의 불길은 다시 활활 타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래저래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곤란한 처지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부자감세를 실행한다면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미 재무부가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미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3.1%를 이자비용으로 지불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향후 10년 이내에 두 배로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이쯤되면 국채이자를 갚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채수익률이 치솟을 수 밖에 없고, 국채수익률이 상승하면 다른 채권의 수익률도 함께 상승할 수 밖에 없다. 시장금리가 내려올래야 내려올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백보를 양보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다 해도 그 효과는 단기국채 수익률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칠 뿐 시장금리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기 어렵다.

 

미 연준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 5.5% 전망도 나오고 있어

심지어 시장에선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5%를 돌파하고 5.5%를 터치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CNBC방송에 따르면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인터뷰에서 “나는 조심스러운 낙관론 입장인데, 내가 보는 시나리오 중에는 상당히 나쁜 것도 있다”고 우려했다.  ‘월가의 제왕’으로 불리는 래리 핑크 CEO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수장이다.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투자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올트먼 CEO와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백악관으로 불러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이 이끄는 오픈 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 3개 기업이 AI 합작사 스타게이트를 공동 설립해 향후 미국 AI 인프라에 최소 5000억 달러(약 718조5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핑크 CEO는 “만약 모든 민간 자본을 풀어준다면 성장에는 매우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동시에 이 중 일부는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 같은 위험은 아마도 아직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채권시장은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핑크 회장은 “향후 전개 상황에 따라 인플레이션 탓에 금리가 매우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주식시장에 큰 부정적 충격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아울러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이 5% 상향 돌파를 시도하고 5.5%까지 도달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핑크 회장의 경고가 현실화 될 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시장금리가 당분간 내려가기 퍽 힘들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시장금리를 내려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 너무 많고 강력하다. 고금리의 장기화는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에는 크나큰 악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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