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의장 선출 9차례 무산…"미국 공화당은 끝났다"

공화당 하원의장 선거 100년만에 재투표

당내 강경보수파 반란으로 사흘째 무산돼

장기화할 경우 공화당뿐 아니라 미국에 위기

트럼프대 공화당 몰락 연원은 '문화 보수주의'

라이시 전 장관 "공화당 존재 이유 없다" 단언

2023-01-06     한승동 에디터 에디터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가 의회 개회 이틀째인 4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실시된 4차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도 당선에 실패하자 좌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6차 투표까지 마친 뒤 정회에 들어간 하원은 이날 오후 8시에 7차 투표를 이어갈 예정이다. 2023.01.05 로이터 연합뉴스

사흘간 9차례 투표에도 무산

미국 하원의장 선출이 다수당인 공화당 내의 분열에 따른 강경보수파 의원들의 반란표로 사흘째 무산되면서 공화당이 난조에 빠졌다. 하원의장의 유력 후보인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 공화당 원내총무가 반란표를 던진 20명의 강경보수파 의원들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빌 클린턴 정권 때 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공화당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공화당뿐만 아니라 미국 정치와 사회 전반이 장기간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원의장을 선출하지 못하면 예산 등의 법안심의를 비롯한 하원 의사일정이 모두 중단돼 하원 기능이 정지된다. 하원이 기능정지(셧다운) 상태가 되면 예산 심의와 정부 부채 상한 올리기도 불가능해, 최악의 경우 미국이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지고 세계경제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의회 개회 이틀째인 4일(현지시각) 하원의원과 서기들이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실시된 6차 하원의장 선출 투표 결과를 집계하고 있다. 이날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자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가 아닌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지면서 어느 의장 후보도 과반(218표) 득표를 하지 못했다. 공화당 강경파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고강도 견제를 위해 의사규칙 변경 등을 요구하며 매카시 원내대표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2023.01.05. EPA 연합뉴스

222석의 공화당표 과반인 218표 미달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정원 435석의 하원에서 222석을 획득해 다수당이 된 공화당과 212석을 얻은 민주당은 지난 3일 하원의장 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1차 투표에서 당선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보도된 공화당 원내총무 캐빈 매카시 의원이 당선에 필요한 하원 정원의 과반수(218석)에 15석이 모자라는 203석밖에 얻지 못해 재투표에 들어갔다. 미국 하원의장 선거에서 재투표를 실시한 것은 1923년 이래 10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흘 뒤인 6일까지 하루 3차례씩 5일(현지시각)까지 모두 9차례 실시됐으나 공화당 반란표는 처음 19석에서 20석으로 오히려  늘어났고, 모두 유사한 결과로 계속 무산됐다. 현행 규정상 하원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하원 의장선거가 이처럼 난관에 부닥치게 된 것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선전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당시 하원에서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선거 결과 공화당이 다수파 의석을 차지하긴 했으나 민주당과의 의석차는 10석(민주 212석)밖에 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화당 내에서 4석 이상의 반란표만 나와도 하원의장을 뽑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민주당은 9차례의 투표에서 모두 이탈표 없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공화당은 후보를 당내 다른 후보로 교체하는 방안을 놓고 반대의원들과 협상을 벌였으나 판세를 바꿀 수 없었고, 민주당 온건세력 일부와 연합하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모두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강경보수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 반란

이번에 반란표를 던진 20명의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당내 단체 ‘프리덤 코커스’ 소속으로, 이들은 원래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인 보수 강경파 의원들이다. 이들은 지금 공화당 지도부를 ‘기득권층’(establishment)이라 비판하면서, 하원의장 등 간부들에게 집중된 권한을 의원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들이 ‘좌파’라고 비판해 온 민주당과는 비타협적으로 더 강경하게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하원의장은 계속 공석이 될 수밖에 없다. 트펌프 전 대통령이 SNS를 통해 “이젠 케빈에게 투표할 때”라고 호소했으나 이들은 그의 말도 듣지 않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가 의회 개회 이틀째인 4일(현지시각)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실시된 4차 하원의장 선출 투표에서도 당선에 실패하자 좌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6차 투표까지 마친 뒤 정회에 들어간 하원은 이날 오후 8시에 7차 투표를 이어갈 예정이다. 2023.01.05. 로이터  연합뉴스

프리덤 코커스의 인질이 된 공화당

공화당은 이제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하원의장 등 간부직을 맡을 수 없거나 자리에서 쫓겨나야 할 판이 됐다. 이에 따라 하원 요직이 그들 강경보수파 의원들의 ‘인질’이 되고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자리만이 아니라 그들의 이해가 걸린 주요 법안들도 그들의 인질이 될 수 있으며, 미국사회 전체가 그들에게 휘둘릴 수 있는 기묘한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공화당 하원 주류파인 매카시 의원은 오랫동안 원내총무를 맡아 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재빨리 그의 편에 서는 등 친트럼프 행보를 보여 왔으나, 같은 트럼프 지지자들인 기득권층 타파를 내세우고 있는 비주류 강경보수파 의원들은 매카시도 기득권층의 일원이라고 비판하면서 하원의 위원회 요직을 협상안으로 제시하는 등 권력 배분을 요구하고 있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 중에도 매카시에게 투표하는 등 그들 자체도 분열돼 있으나, 그들 중에는 부채 상한 올리기나 사회보장, 의료보험 프로그램 예산 삭감, 올해 재협상하기로 돼 있는 농업법과 관련한 농민 보조금, 빈곤층 복지 프로그램 대폭 삭감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매년 4000만 명이 이용하는 푸드 스탬프(무료급식표) 프로그램의 대폭 축소를 요구하는 그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법안에 반대할 경우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하원의장 재투표는 예전에도 1923년까지 14번 치러졌다. 남북전쟁 전인 1855~56년에는 과반수를 얻을 때까지 약 2개월간 133차례나 투표를 했다.

트럼프보다 더 심각한 문제, 한국과도 닮은 점

미국 역사가이자 팟캐스트 ‘아메리카 익스플레인드’ 진행자인 앤드류 고소프는 지난 4일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트 바이든 변호사에 대한 트럼프 진영의 음모론적 비리 주장을 근거로 한 조사나 지난해 1월 6일의 의사당 기습사건 뒤의 ‘반란자’들 대우 등과 관련한 정치적 요구들을 앞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그는 매카시가 폭언 때문에 징계를 받은 그들 중 일부에게 이미 위원회 자리를 약속했다면서, 공화당 내 극단주의 세력 문제가 트럼프 개인 차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설사 정치를 내일 그만둔다 하더라도 이들 의원들은 향후 2년의 임기 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가장 강경하고 우스꽝스런 맴버들과 함께 고질적인 이데올로기 싸움과 더불어 요란한 당파적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그는 또 공화당에 대해서는 2024년 하원 임기 말까지 극단주의에다 무능하다는 평판만 커질 것이라며 “미국인들은 그 동안 나라가 너무 큰 타격만 받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는 한국 정치 상황과도 닮은 점이 많다.

“공화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끝났다”

지금은 버클리의 공공정책대학 교수로 있는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장관의 진단은 더 암울하다. 그는 이번 하원의장 선거과정을 지켜본 뒤 “공화당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의 이런 암울한 전망은 공화당에 대한 것이어서 미국 사회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그의 글은 자체 모순 때문에 무너지고 있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정치적 신보수우의가 미국 공화당을 지배하게 된 뒤 황폐해진 미국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뉴트 깅그리치 전 공화당 하원의장과 우파 미디어 <폭스 뉴스>가 ‘문화 보수주의’를 도입한 뒤 공화당과 미국의 퇴락이 현저해졌다고 그는 주장한다.

 

지난해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학력, 경력 등 이력 대부분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 검찰 수사까지 받을 처지에 놓인 조지 산토스(34·공화당) 하원의원 당선인이 사퇴 없이 118회 새 의회가 출범하는 3일(현지시각) 의회에 입성할 예정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새 하원의장 선출이 유력했던 케빈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의 당내 표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의원 개인의 도덕성 시비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1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공화당유대인연합 연례 지도부 회의에서 산토스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 [자료사진] 2023.01.03 AP 연합뉴스

<로버트 라이시 기고문 전문>

지난 3일 <가디언>에 실린 로버트 라이시의 기고문 '공화당원들이 하원의장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지만, 누가 이기든 공화당은 진다'(Republicans fight over speaker of the House – but whoever wins, the party loses)의 전문을 소개한다.

지난 화요일(3일)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그들이 다수당이 된 하원의 의장을 뽑는 일로,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 핵심 비방자들을 따돌리려는 케빈 매카시와 격돌했다. 그러나 그것은 별다른 내전도, 정확하게는 전쟁도 아니다. 그것은 합당한 존재이유를 완전히 상실한 정당의 무분별한 적대행위다. 사실상 공화당은 끝났다.

반세기 전에 공화당은 작은 정부(정부 역할 축소)를 옹호했다. 그 입장은 늘 분명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어떤 일관성은 있었다. 공화당은 언제나 감세를 추구하고 연방정부 권한을 확대하려는 민주당에 반대했다. 그것은 두 명의 조지 부시, 부유한 자유지상주의 후원자들, 다보스 회의에 날아가는 기업 임원 기부자들로 구성된 기득권층(establishment) 공화당의 입장이었고 또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실제 공화당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1990년대에 뉴트 깅그리치와 <폭스 뉴스>의 로저 에일스는 공화당을 문화 보수주의(cultural conservatism)로 이끌었다. 그것은 낙태와 피임, 이민, 선거권, 게이 결혼, LBGTQ+(레즈비언, 양성애자, 게이, 트랜스젠더, 성소수자)에 반대하고, 그리고 결국 트랜스젠더의 권리,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에 대한 교육,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마스크 쓰는 것조차 반대했다.

동시에 문화 보수주의는 범죄단속(특히 흑인들의 범죄에 대한)을 하는 경찰, 공금으로 하는 종교 교육, LBGTQ+ 사람들을 차별하는 소매업자들, 미등록 거주자들을 사냥하고 추방하는 이민 당국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깅그리치와 에일스는 문화 보수주의가 연상시키는 가능성을 간파했고, 복음주의자들의 힘과 지역 백인들의 분노를 감지했으며, “전통적 가치” 그리고 당연히 인종차별을 신봉하는 공화당 기지(base) 내의 표들을 알아챘다.

그러나 이 문화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와 합치하지 않았다. 그것은 실제로는 사생활의 가장 친밀한 면들에 정부가 개입하도록 요구했다.

당의 노선이 혼란스러워졌고, 그 메시지는 왜곡됐으며, 목표는 불분명해졌다. 그 때문에 그것은 분노와 권위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제3의, 그리고 훨씬 더 큰 분노의 단계로 가는 문을 열어제쳤다.

이 제3의 단계는 지난 수십년 동안 대학 졸업장이 없고, 대부분 시간제로 임금을 받는, 소득과 안전이 계속 줄어드는 것을 경험한 백인 미국인들을 만들어낸 토대가 됐다. 상향 이동이 차단됐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식들의 약 절반은 자신들보다 못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었다. 중산층은 줄어들고 있었다. 보수가 좋은 노조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의 자만심(ego)을 위해 분노를 이용하는 가공할 재능을 지닌 사기꾼 도널드 트럼프를 보라. 트럼프는 공화당을 고통과 외국인 혐오증, 인종주의, 반지성주의, 반과학적 편집증에 사로잡힌 백인 노동계급의 도가니로 만들었고, 미국 민주주의를 비롯해서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려고 작정한 사이비 종교 지도자 같은 존재가 됐다.

정당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모금 기관, 주와 지역 기구, 선출된 관리들이며, 자원봉사자들과 활동가들이 헌신하는 기지(base)다. 그 기지는 당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연료를 공급한다. 오늘날 공화당 기지는 증오에 기름을 붓고 있다. 그것은 대두하고 있는 반민주주의 운동의 진원지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하원 의장 경선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에는 가망없고 불행한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이 모든 단계들-작은 정부, 문화 전사들과 증오로 가득찬 권위주의자들의 잔재들-이 다 들어 있다.

그들은 그들 외의 미국의 포부 및 이상과도 맞서 싸우고 있다. 공화당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과 같은 승자독식 체제에서 당을 파괴하는 데에는 허무주의적 무지보다 더한 무엇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자치 시스템에서 공화당이 수행할 합당한 역할이 이제 더는 없다.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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