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긴 식당·마트…추경 급한데 발목 잡는 국힘
“이재명 업적 만들기” 억지로 추경 반대
내란 사태 한 달…소비 절벽도 장기화
기재부 추경 가능성 열어놨지만 소극적
예산 조기 집행만으론 내수 진작 역부족
마중물 추경으로 소비 늘면 세수도 증가
“추경 적기 놓치면 기회 비용 더 커질 것”
12.3 내란 사태 이후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 윤석열 관저에 우르르 몰려가 극우 지지자들을 선동하는가 하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다. 이러니 ‘내란 옹호당’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내란 사태에 이어 제주항공 참사까지 일어나며 소비 절벽이 장기화하는데도 예산 조기 집행 같은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이다. 소비 진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과 집행이 시급하다. 야당뿐 아니라 경제단체와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신속한 추경만이 소비 절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일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필요시 추가 보강”이라는 말로 추경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참여연대와 리서치뷰가 지난해 말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도 추경 편성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58%에 달했다. 오직 국민의힘만 온갖 핑계를 대며 추경을 막아서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재정 악화 핑계로 추경 발목 잡기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에 추경 편성을 요구한 데 대해 “무차별 현금 뿌리기식 낭비성 추경은 절대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무엇이 민주당 진의인가. (추경 목적이) 민생경제 활성화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재명 업적 만들기에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소비 진작에 필요한 추경 문제마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잡고 늘어지며 정치화한 것이다.
김 의장은 추경을 반대하는 이유로 재정 건전성 악화와 국가신용등급 하락을 거론했다. “결국 민주당 요구는 또다시 지역화폐 예산 확보다. 잘못된 추경은 자칫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져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는 지금 급한 건 추경이 아니라 민생법안의 조속한 처리라고 했다. 하지만 김 의장이 시급하다고 말한 민생법안은 대부분 세수 감소를 초래해 논란이 있는 감세 법안들이다. 당장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도 없다.
추경 반대론자들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데다 국채가 대량으로 시장에 나오면 채권 금리를 밀어 올려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급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규모 국채 발행으로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경기에 부정적일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추경 편성에 밍기적거리는 이유도 이런 부작용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더 급한 건 꽉 막힌 소비를 뚫는 일이다. 추경은 혼수상태에 빠진 소비에 산소호흡기를 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가부채 증가와 시중금리 상승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올해 소매시장 성장률 코로나19 이후 최저
내란 사태 이후 골목상권은 그야말로 폭탄을 맞았다. 식당과 매장을 찾는 발길이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는 곳도 수두룩하다. 이는 공식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 7일부터 13일까지 전국 신용카드 이용 금액은 전년 대비 3.1% 줄었다. 비상계엄 전주에는 신용카드 이용 금액이 7.3% 늘었다. 윤석열이 대통령 관저에서 버티고 국민의힘이 탄핵 심판을 방해하며 내란 사태가 길어지자 소비 절벽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소가 소매유통업체 300개 사를 대상으로 시행한 ‘2025년 유통산업 전망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이 0.4%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친 2020년 -1.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소매유통시장 성장률은 지난 2021년 7.5%를 정점으로 2023년 3.1%. 2024년 0.8%로 하락했는데 올해 낙폭이 더 커진 것이다. 오죽하면 대한상의가 7일 발간한 ‘2025 유통산업 백서’에서 올해 소비시장 5대 키워드 중 가장 먼저 ‘생존(Survival)’이 꼽혔겠나.
“추경을 통한 세출 확대가 성장률 높여”
추경의 소비 진작 효과는 이미 실증됐다. 한화투자증권이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0.6% 안팎(약 15조 원)의 세금을 지출하면 0.2%포인트가량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추경을 통해 마련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효과를 분석한 결과도 이를 증명한다. 신용·체크카드 매출액이 투입된 재원 대비 최대 36.1%인 약 4조 원 증가한 것이다. 재난지원금 효과로 그해 2분기 실질 총생산이 전기보다 3.2% 감소했으나 민간 소비는 1.5% 늘었다.
더욱이 지금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나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를 근거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추경 편성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하며 “본예산의 조기 집행은 너무나 한가하고 잘못된 처방”이라며 “30조 원 이상의 슈퍼추경을 통해 취약계층에 대한 투자와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신속·과감하게 하는 게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추경으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할 것이라고 하지만 소비 침체를 방치하면 세수가 더 줄어들면서 재정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신속한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단 소비의 불씨를 살려 놓아야 향후 세수도 늘어날 수 있다. 추경의 적기를 놓치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