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높이려 무리한 뺑뺑이…예고된 제주항공 참사
월평균 항공기 가동률 국내서 가장 높아
사고 항공기도 48시간 동안 13차례 운항
코로나19 시기 감원으로 정비 인력 과로
2020년 이후 항공안전법 위반 횟수 최다
원가 절감과 여행 수요 급증에 최대 실적
돈만 벌면 된다는 경영진 인식에 사고 잦아
“올해 내내 우려했던 상황이었다.”
항공업계의 한 지인이 무안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소견을 묻자 돌아온 말이다. 이번 참사는 국내 항공업계의 안전 불감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국내 저가 항공사(LCC)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안전에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항공업계에서는 참사 이후 제주항공의 무리한 항공기 가동률과 열악한 정비 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30일에도 제주항공의 사고 기종과 같은 B737-800이 기체 문제로 정상적으로 운항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 많은 국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오전 6시 37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제주행 제주항공 7C101 편은 이륙 직후 비행기 바퀴 등 이착륙에 필요한 장치인 랜딩기어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제주항공은 즉각 회항해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빡빡한 항공기 뺑뺑이로 사고 위험 높여
이번 참사의 원인이 기체 결함이었는지는 더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제주항공이 더 많은 매출과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승객의 안전과 편의를 뒷전으로 밀어놓았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제주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에 항공기당 운항 시간이 가장 많다. 30일 연합뉴스가 항공업계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제주항공의 월평균 운항 시간은 418시간에 달했다. 티웨이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등 다른 LCC보다 10%가량 항공기 운항 시간이 많다. 이들 항공사는 모두 400시간이 넘지 않는다. 한 달에 400시간 넘게 항공기를 가동하는 곳은 국내 항공사 중 제주항공이 유일하다.
항공기 가동률을 높이면 수익성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빡빡한 운항 일정은 이착륙 준비와 정비 등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부작용을 낳는다. 제주항공 측은 항공기 안전을 위한 정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베테랑 정비사라 할지라도 시간이 촉박하다 보면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번에 사고가 난 항공기도 최근 48시간 동안 무안과 제주, 인천, 태국 방콕, 일본 나가사키 등을 오가며 모두 13차례 운항했다고 한다. 무리한 운항과 이번 사고와의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할 것이다.
정비 외주에 항공 인력도 부족…참사 예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내 정비 비중을 줄인 것도 항공기 안전과 관련이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 업체에 정비를 맡겼다. 이는 제주항공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항공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항공기 정비를 외국 업체에 맡기면 정비 품질도 문제지만 긴급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국토교통부의 2024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내 항공사의 항공기 국내 정비 비중은 2019년 54.5%에서 2023년 41%로 줄었다. 특히 LCC는 2023년 기준 국내 정비 비중이 28.9%에 불과했다. 이에 따른 항공기 지연 건수도 2019년 1755건에서 2023년 3584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항공 수요는 급증했으나 인력을 확충하지 못한 점도 사고 빈도를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제주항공은 올해 3분기 기준 항공운송 인력이 3188명으로 2019년보다 3.6%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줄였던 인력을 채우지 못한 셈이다. 항공기 가동률은 높여놓고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만성 피로를 호소하는 직원들도 늘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참사 직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등에 올라온 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항공은 다른 곳보다 1.5배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야 한다. 언제 큰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비사들은 야간에 13~14시간을 일하며 밥 먹는 시간 20분 남짓을 제외하고 쉬지 않고 일한다.” “요즘 툭하면 엔진 결함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정비도 운항도 재무도 회사가 개판 됐다.” “정비비용 아끼느라 1년에 공중에서 엔진 4번 꺼졌다.”
항공 안전법 위반 최다, 과징금도 최대
제주항공은 항공 안전법 위반으로 행정 처분을 가장 많이 받은 항공사로 꼽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운항과 정비규정 등 항공 안전법 위반으로 총 9회 행정 처분을 받았다. 규모가 훨씬 큰 대한항공의 8회보다 많은 횟수다. 7회 행정 처분을 받은 티웨이항공을 제외한 다른 LCC들은 같은 기간 1~2회 행정 처분받는 데 그쳤다. 제주항공은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많은 과징금을 납부하기도 했다.
소비자 안전과 편의, 직원들의 근로 환경은 뒷전이고 수익성에 목을 맨 경영을 펼친 결과 제주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인 2023년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은 전년보다 145.4% 증가한 1조 7240억 원, 영업이익은 195.7% 늘어난 1698억 원을 달성했다.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올해 1월 창립 19주년 기념행사에서 ‘원가 경쟁력 강화’를 외쳤다. 그는 핵심 과제로 △차세대 구매 항공기 도입을 통한 기단 현대화 및 획기적 원가 경쟁력 강화 △항공산업 재편에 대한 대응 전략 구체화 및 전사적 역량 집중 △정보기술(IT) 고도화 등 경영 효율화 위한 투자 효과 가시화 △건강한 조직 생태계 구축 등을 꼽았다. 소비자 안전과 편의는 빠졌다. 수익성 위주 경영은 곧바로 소비자 불편으로 이어졌다. 적은 인력에 항공기 가동률을 높이다 보니 결항과 지연이 빈번했던 탓이다.
제주항공은 2005년 출범한 이후 국내 LCC 업계를 주도했다. 올해 3분기 기준 국내선 시장점유율이 15%를 넘었다. 대한항공에 이어 2위다. 국제선 점유율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3위다. 하지만 빠른 성장에도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2021년에는 국내 항공사 중에 안전도 점수가 가장 낮았다. 위험천만했던 사고도 적지 않았다. 근본 원인은 소비자 안전보다 수익을 중시한 경영 방식에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