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팀버 시커모어’ — 미국의 시리아 무너뜨리기
CIA, 반란군 앞세운 아사드 정부 전복 계획
미국, 이스라엘, 튀르키예가 합작한 반란군 공격
전쟁과 제재 더해 유전과 농업지대 빼앗기며 붕괴
‘따르지 않는 자는 제거’ 미 대외정책 불문율 1호
남의 나라 무너뜨리기 — 무서운 위선자 미국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비상계엄은 사실상 미국과 합작한 것이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의 비상계엄도 마찬가지다. 이번 윤의 계엄에 대해서는 알면서 일단 두고 본 듯하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 윤의 계엄 내란이 성공했더라면, 미국은 이전에 그랬듯, 민주주의는 뒤로하고 정국 안정, 한반도 안보위기 등을 내세워 윤을 적극적으로 방어·지원했을 지도 모른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파병까지 요구했을 것이고, 윤은 순순히 응했을 것이다. 윤의 계엄 내란을 막은 건 미국이 아니라 단합된 정치역량을 보여준 대한민국 시민의 깨어난 힘, 그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킨다고 한 하원의원이 말했지만, 그건 무지 또는 위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윤의 내란을 일단 막아내는 사이, 아시아 저 끝쪽 시리아는 반란군의 공격 11일 만에 정부가 무너지고 예전의 시리아라는 국가도 사라졌다. 본래 시리아는 아랍권의 종교 국가들과 달리 포용적 분위기의 다문화·다종교, 즉 세속 국가다. 비록 일당독재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였지만, 대통령 아사드에 대한 시리아 인민의 신뢰나 호감도는 높았다. 공공의료와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무상으로 제공됐다. 연간 방문 관광객 규모, 여행지 선호도, 지도자에 대한 국제 여론 등의 지표는 주변의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높았다. 2011년 아랍의 봄도 시리아에는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시위대에 무장반군이 섞이면서 상황은 폭동과 반란으로 달라졌다. 지금까지 14년여 간 이어지는 장기 전쟁과 국가 몰락의 시작이었다.
바이든은 시리아 정부가 무너진 날, “지난 4년, 우리 정부는 명확한 원칙에 입각한 시리아 정책을 펴왔다. 그것이 오늘의 결과를 낳은 핵심이다”라고 자랑했다. 명확한 원칙에 입각한 미국의 정책? 시리아를 도모한 미국의 역사를 둘러볼 때 그건 무섭고 잔인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시리아를 도모한다!
지난 2003년 10월, W. 클라크 장군은 나토 사령관을 끝으로 퇴임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책을 펴낸다. 책에서 그는 부시 정부가 9/11 사태 직후, 이라크를 시작으로 향후 5년 이내에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이란, 소말리아, 수단 등 7개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격을 기획했다고 폭로했다.(관련 기사 사진 참조).
부시 정부는 2002년부터 시리아를 리비아와 함께 두 번째 악의 축 국가로 불렀고, 2004년엔 테러조직을 지원한다며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테러범을 잡는다거나, 핵시설을 세우고 있다며 2003년부터 시리아를 공습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헤즈볼라 무기 지원을 이유로 더 강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미국 행태의 핵심에는 시리아가 이란, 헤즈볼라, 러시아 같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적과 동맹 관계라는 사실이 놓여있다.
사진 왼쪽은 H. 클린턴 전 국무장관 보관 이메일 자료, 오른쪽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미국 대사관의 비밀전문이다.(관련 자료 일부 화면 캡처). 클린턴 메일은 2000년 12월 31일 자, 대사관 전문은 2006년 12월 13일 자. 메일은 발신-수신자가 지워져 있고, 전문은 백악관, 국무부, 국가안보회의 등을 수신자로 명시했다. 전문 제목의 SARG는 Syrian Arab Republic(시리아의 영문 공식 국가명칭) Government의 약자다.
‘새로운 이란 시리아 정책 문건(New Iran and Syria Doc)’이라는 제목의 메일은, 날짜로 보아 클린턴 정부 시절의 자료로, 그때부터 미국은 이미 “아사드 정부를 전복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직면한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노란색으로 강조한 첫 문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두 번째, ‘시리아 흔들기(influencing SARG)’라는 제목의 전문은, “(아사드의) 경제개혁이 일으킬 기득권 부패계층의 반발, (자치·독립 국가 건설을 요구하는) 쿠르드족 문제, 그리고 시리아 내부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위협” 등을 아사드 정부의 약점으로 들고 있다.(밑줄 친 부분). 이 약점들이 아사드 정부를 흔들 기회이며 구체적 실행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랍의 봄’이 발동시킨 작전명 ‘팀버 시커모어’
2011년 ‘아랍의 봄’은 미국에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 개입하는 절호의 명분과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리비아 가다피 정권은 미국이 주도한 대대적 공습과 반군의 공격으로 결국 무너진다. 다음은 시리아였다. 다만 리비아 방식이 아니라 반란군을 내세운 대리전을 확대, 아사드 정부를 소모전으로 끌어내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작전명 ‘팀버 시커모어(Timber Sycamore. 플라타나스 벌목 정도의 의미)’. 목표는 시리아 정부 전복. 당시 작전에 간여한 인물들은 오바마를 비롯한 바이든 당시 부통령, 지금 국가안보보좌관인 J. 설리번(당시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지금 국무장관인 A. 블링컨(당시 바이든의 국가안보보좌관) 등. 앞서 언급한 바이든의 ‘명확한 시리아 정책’이 바로 이 작전이고, 그 작전이 그때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라는 뜻이다.
작전은 크게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준비단계로, 2012년 리비아의 가다피 정부를 궤멸시킨 다음 몰수한 수천 톤의 무기를 시리아 반란군에 전달하는 것. 둘째는 확장·실행단계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반란군에게 무기 지원은 물론, 자금제공, 신병모집 및 훈련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이다. 작전명 ‘팀버 시커모어’는 두 번째 단계에 붙인 이름이다.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소송으로 드러난 국방부 기밀문서는, 2012년 5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리비아 무기가 벵가지에서 시리아로 이송됐음을 말해준다.(왼쪽 사진 밑줄 친 부분 참조). 폭스뉴스는 10월 25일 알안티사르 호가 9월 6일 리비아를 출항, 튀르키예의 이스켄데룬 항구에 도착, 무기를 포함한 각종 화물을 하역했다고 보도했다. 요약하면, 미국은 리비아에서 외교 물품을 가장해 무기를 실어 냈고, 튀르키예는 그것을 받아 시리아 반란군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후 2013년 4월, CIA는 오바마의 승인을 받아 두 번째 단계에 돌입한다. 애초 오바마는 주저했으나, 요르단 국왕과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의 설득과 로비가 주효하면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팀버 시커모어’는 무기 지원에서 나아가 자금제공, 그리고 반란군 모집과 훈련까지 확장한 프로그램이었다. 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 작전 비용과 무기 지원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도 적극 참여했다. 수니파 종교국가 입장에서 시아파인 아사드 제거에 동참했던 것. 훈련캠프는 요르단에 설치했고, 무기는 주로 동유럽과 발칸반도 밀매시장에서 들여왔다. 모집훈련을 통해 수천 명의 반시리아 전투원을 길러냈고, 무기는 50여 개가 넘는, 주로 알카에다 계열의 반란군 조직에 전달됐다.
2015년 11월 T. 개버드 의원(민주당,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차기 트럼프 정부 국가정보국장 지명자)은 ‘시리아 반군(이슬람 극단주의자 포함, 모든 무장단체) 지원금지법’을 발의했다. 2016년 알자지라와 뉴욕타임스의 보도로 비밀작전이 널리 알려졌다. 따져본 즉, 비용 대비 성과는 빈약했고, 무기와 자금의 행방은 사실상 통제할 수 없었다. 급기야는 CIA 지원 반군과 펜타곤 지원 반군, 사우디 지원 반군과 카타르 지원 반군이 서로 싸우는 웃픈(?) 사태까지 벌어졌다. 시리아 상황이 악화하면서 러시아가 개입했고 반란군의 위세는 꺾였다. 80년 아프간 무자헤딘 지원 이래 최대 규모인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들인 비밀작전은 거대한 낭비로 비판받았다. 그해 말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됐다. 트럼프 집권 첫해인 2017년 7월, ‘팀버 시커모어’ 작전은 결국 종료됐다.
정치적 붕괴 전 외세 점령으로 이미 경제적 주권 상실 상태
사실 ‘팀버 시커모어’는 시리아를 몰락으로 이끈 빙산의 일각이다. 작전 종료 2년 전인 2015년, 미 지상군은 ISIS를 때려잡는다며 이미 시리아 동부와 남부에 진출했다. 2016년부터 튀르키예는 북부를 사실상 점령했다. 서남부의 골란고원은 일찍이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빼앗겼다.
미군과 쿠르드족이 점령한 동부는 시리아의 유전지대(원유+가스)이자 곡창지대(밀+면화)다. 서북부 알레포 부근은 산업 지역이다. 그즈음부터 시리아는 정치적 주권뿐 아니라, 국가의 물적 토대를 빼앗기면서 경제적으로도 주권을 상실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2010년부터 계속된 미국 등 서방의 전방위적 경제제재, 미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의 지원을 받는 반란군과 14년 여에 걸친 전투는 정부와 군, 인민들을 모두 소진시켰다. 전쟁과 점령, 탈취와 제재로—가뭄과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포함해—시리아에서는 지금까지 무려 50만이 넘는 사람이 죽었고, 600만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번 12월, HTS(시리아 해방의회라는 뜻. 알카에다 계열의 반군조직)를 중심으로 몰아닥친 반란군의 공세를 시리아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12월 16일 몰락 이후 시리아 상황을 표시한 지도(출처: 알자지라)에는 이 같은 저간의 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쪽 푸른색은 튀르키예 점령지역. 동쪽 노란색은 쿠르드족과 미군 점령지역. 중간 카키색은 HTS 관할 지역. 왼쪽 맨 아래 하늘색은 이스라엘 점령지역(골란고원과 그 주변)이다. 친 아사드 세력의 근거지로 표기된 지도 맨 왼쪽 중간의 붉은색 점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따르지 않는 자는 제거한다’ 미국 대외정책의 불문율 1호
바이든은 시리아의 몰락이 정의가 실현된 것이라며 국가 재건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저지른 범죄 수준의 시리아 개입을 되짚어 볼 때 그건 철면피하고 잔혹한 왜곡이다. 몰락 이후 시리아에서는 미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간의 전리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밖에서는 이들과 이란, 러시아, 중국까지 모두 얽히는 지정학적 변동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분명한 것 하나를 짚는다면, 따르지 않는 자—적대국은 물론, 경쟁국, 심지어는 동맹국이라도(단, 이스라엘은 예외)—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거 또는 격리한다는 미국 대외정책의 불문율 1호,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