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 안정되니 공산품 물가 들썩
환율 급등하며 수입 물가 오른 탓
생산자물가 넉 달 만에 상승 전환
고환율 지속 땐 다시 고물가 시대
환율 방어와 내수 부양 묘책 절실
환율 상승이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2.3 내란 사태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는데도 생산자물가지수 등 공급 쪽에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물가 상승의 국내 요인이었던 농산물 물가는 추세적인 하락으로 전환했으나 환율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에너지와 공산품 가격이 빠른 속도로 상승 중이다.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어 내년에 다시 고통스러운 고물가를 겪어야 할 수도 있다.
환율 급등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한국 경제
환율 급등을 방어하려면 금리를 동결하고 국채 발행을 자제해야 한다. 하지만 내수 경기 침체가 극심한 상황이라 금리를 내리고 긴급하게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필요성도 크다. 세수가 부족한 실정이라 추경은 적자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단기적으로는 환율 안정에 집중하며 중장기적으로 내수를 부양할 수 있는 묘책이 절실하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와 국내 공급물가지수, 총산출물가지수를 20일 발표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농림수산물 가격은 하락했으나 에너지와 공산품 물가는 상승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지난달 수출입물가지수 통계가 공개된 13일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11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39.03으로 전달보다 1.1% 올랐다. 10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상승한 것이다.
공급자물가지수 7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
이런 흐름은 수입 물가와 생산자물가를 결합해 산출하는 국내 공급자물가지수에 그대로 반영됐다. 11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124.15(2020년 수준 100)로 10월보다 0.6%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1.8% 상승했다. 지난 4월 1.0% 오른 이후 7개월 만에 상승 폭이 가장 컸다.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물가 변동의 파급과정 등을 파악하기 위해 국내 출하되는 상품과 수입품,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원재료, 중간재, 최종재의 생산단계별로 구분해 측정한 지수다. 지난달 원재료는 1.8%, 중간재는 0.6%, 최종재는 0.1%가 모두 올랐다. 원재료는 국내 출하는 2.6%가 내렸으나 수입이 3.1% 올랐다. 중간재는 국내 출하(0.3%)와 수입(1.9%)이 모두 상승해다. 최종재는 소비재는 0.1% 내렸으나 자본재가 0.6% 올랐다.
생산자물가도 넉 달만에 상승세 전환
11월 생산자물가도 넉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10월 119.01에서 0.1% 오른 119.11로 집계됐다. 생산자물가지수는 7월 119.56을 기록한 뒤 8월 119.38, 9월 119.16, 10월 119.01로 하락 추세였으나 지난달 반등했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5% 올라 16개월째 상승세를 유지했다.
생산자물가지수에서도 환율 상승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요인인 농림수산물 물가는 안정세를 보였고, 환율 요인이 결정적인 전력과 공산품 물가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월 대비 등락률을 품목별로 보면 농산물(-5.1%), 축산물(-2.8%) 등이 내려 농림수산물은 3.6% 하락했다. 서비스업도 0.1% 떨어졌다. 반면 전력·가스·수도와 폐기물은 산업용 전력(7.5%) 등이 오른 영향으로 2.3% 상승했다. 공산품도 0.1% 올랐다. 국내 출하에 수출품 가격을 반영한 총산출물가지수은 공산품 가격 상승으로 0.6% 상승했다.
수입 물가 상승의 소비자물가 전이 최소화 시급
걱정스러운 점은 공급 쪽 물가 상승세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행이 11월 수입물가지수를 발표할 때 원/달러 환율 기준은 평균 1393.38원이었다. 12.3 내란 사태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속도 조절 소식 등으로 현재 환율은 급상승 중이다. 이런 추세라면 달러당 1500원을 넘어설 수도 있다. 수입 물가가 폭등해 내달 발표되는 국내 공급자물가지수의 상승 폭도 커질 게 분명하다. 국제유가가 안정세라 다행이지만 유가마저 상승 전환하면 우리나라 경제는 이중 타격을 받는다.
공급자물가지수는 몇 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지표다. 수입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인 환율을 방어하는 게 현재로서는 급선무다. 금융당국은 달러를 시중에 방출하는 등 여러 수단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내란 사태로 실추한 한국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빨리 회복해야 한다. 고환율로 인한 고물가 시대가 다시 온다면 국민 고통은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취약계층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다. 공급 쪽 물가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되지 않도록 어떻게든 방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