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닌 '제왕'이었다

국힘과 조선일보, 대통령제 개헌으로 탄핵 국면 돌리려

개헌 주장 이전에 헌법의 준수부터 제대로 해야

'보수' 정권 위기일 때 여지 없이 나오는 주장의 불순성

2024-12-19     이명재 에디터

‘탄핵보다 개헌부터 하자’는 주장을 ‘보수’ 정치권과 언론이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이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 중심제가 우리 현실에 맞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자 조선일보가 이를 받아 19일 아침 1면 머릿기사 <수명 다한 제왕적 대통령, 개헌론 확산>으로 발빠르게 화답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간에 장단을 맞추는 이 같은 움직임에서는 탄핵 국면을 개헌 국면으로 전환해 보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보인다.

조선일보는 권성동 대행의 "대통령 중심제 국가가 과연 우리 국가 현실과 맞는지 이 시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말과 함께 평소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의 “조기 대선보다 중요한 것은 조기 개헌이다. 선(先) 개헌 후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발언도 개헌론을 펴는 데 뒷받침하는 말로 삼았다.

물론 현행 헌법 개정의 필요성은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다. 개정된 지 37년이나 된 87년 헌법의 낡은 내용을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요구에 맞춰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탄핵 국면에서도 ‘7공화국’의 개막을 위한 헌법 개정의 본격적인 논의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국힘이 주장하고 조선일보가 퍼뜨리는 개헌 주장은 그 같은 시대변화나 7공화국 개막을 대비하는 개헌 요구의 맥락에서 평가하긴 힘들다.

 

무엇보다 국힘에게 지금 먼저 필요한 것은 개헌 이전에 '헌법의 준수'다. 윤석열 내란 사태로 헌법을 유린하고 파괴하려는 시도가 벌어진 상황에서 헌법질서의 회복이 긴급하게 요청되는 상황에서 주어진 현행 헌법에의 위배가 아닌 엄수가 먼저 필요하다. 게다가 개헌 주장을 누가 펴는가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내란에 동조 옹호하고 탄핵 표결 참여 거부와 반대로써 헌법 질서 회복을 방해한 국힘이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닌 것이다.

‘조중동’의 한 일원인 동아일보조차 19일자 논설위원 칼럼 <계엄을 주저앉힌 헌법의 무게>에서 헌법 준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 칼럼은 “현장의 군인들은 헌법에 부합하는 행동을 했고, 그 덕분에 헌법 규정에 따른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 자연스럽게 헌법이 작동한 결과가 됐다”면서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긴 세월에 걸쳐 헌법의 가치가 개개인의 의식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한다. 현장의 사병들조차 헌법을 지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이 칼럼처럼 지금 국민의힘이나 조선일보에 먼저 요구되는 것은 헌법 개정을 주장하기 이전에 현행 헌법에 충실한 것이다.

국힘의 권성동 대행이나 조선일보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대통령으로 내란 수괴 피의자가 된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 사태와 국정운영의 폭주는 그 원인이 대통령제의 문제에 있지 않다. 물론 대통령 권한이 제왕적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주장들이 있고 이를 약화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많이 벌어졌다. 그러나 최소한 윤석열의 경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권력 행사가 제왕적이었던 데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가 아니라 제왕 노릇 하려 한 대통령이 문제였던 것이다. 윤석열의 제왕 노릇을 비판하기보다는 방관하고 부추긴 '보수' 언론의 비호와 응원에 있었다.  

윤석열 사태를 해결하려 하는 지금, 그러나 국민의힘이나 조선일보는 집요하게 방향을 돌리려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6일 “우리 사회에 화(火)가 너무 많다”면서 국민들에게 분노를 다스리는 수양을 하라고 당부하더니 이제는 탄핵의 결정을 통한 내란 사태의 종결에서 개헌으로 방향을 돌리려 하고 있다. 수양을 얘기함으로써 내란 사태 해결 과정의 중단을 얘기하더니 이제는 그 방향을 딴 데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전환이라기보다는 사실상 거꾸로 후퇴시켜려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들고 나온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주로 어느 시기에 등장하는지도 이 주장의 뒤에 숨은 배경을 짐작케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언론에 의해 얘기되는 것은 이른바 ‘진보’ 정권이 집권하는 시기일 때다. 국민의힘 등 ‘보수’ 계열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거의 나오지 않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2년 7개월의 임기 동안 25번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합한 횟수(21건)보다도 더 많은 윤석열의 거부권 남발에 대해 조선일보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한 적은 없었다.

제왕적 대통령제 주장은 ‘보수’ 계열의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에도 나왔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도 당시 새누리당에서 개헌론이 흘러나왔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는 논리도 똑 같았다. 권력자와 집권 세력의 문제를 대통령제라는 제도 일반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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