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예산 증액' 요구…한동훈·최상목의 파렴치
최상목, 국회의장 찾아와 처리 촉구
한동훈, 예산 감액을 '협박 수단' 운운
감액한 예산안 예정대로 처리한 뒤
내년에 소비 진작·취약층 지원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하는 게 바람직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면담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어쩔 수 없이 중단했던 내년도 예산안 협상을 빨리 처리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최 장관은 우 의장을 만난 직후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연합뉴스가 이날 전했다. “대외신인도 유지와 경제안정을 위해 여야 합의에 의한 예산안의 조속한 확정이 필요하다. 의장님께 여야 협상의 물꼬를 큰 리더십으로 터 달라고 요청드렸다.”
전날인 8일 그는 관계부처 합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년 초부터 예산이 정상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예산안을 확정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부도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하지만 최 장관이 말하는 내년도 예산안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상정한 예산안이 아니다.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은 정부 예비비를 정부안대로 증액한 예산안을 말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예비비에 다양한 민생 예산이 반영돼 있다며 감액한 것을 되돌려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8일 민주당이 예산안을 협박 수단으로 쓴다고 비난했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민주당이 감액 예산으로 국민을 협박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날 박정 예결특위 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예결위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없이 예산안 협의는 없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든, 탄핵하든 반헌법적 요소가 해결된 후 예산을 합의하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 탄핵에 동조하지 않으면 우원식 국회의장이 정한 10일에 감액 예산안을 그래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한 대표의 글은 이에 대해 반발하는 내용이었다. “감액 예산안을 그대로 확정하는 걸 ‘협박 수단’으로 쓴다는 건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안이 잘못이라고 자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 장관이나 한동훈 대표나 내년 예산안을 증액해 달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탄핵 정국으로 정신없이 돌아가는 국회를 찾아와 느닷없이 감액하지 않은 상태의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요구한 최 장관을 우 의장은 강하게 질책했다. 다음은 박태서 국회 공보수석이 기자들에게 전한 우 의장의 발언이다.
“비상계엄 사태가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는 기도였고 결국 그로 인해 국회에서 예산안 논의가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그런데도 예산안 처리가 안 되고 있는 것이 마치 국회의 책임인 것처럼 기획재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대통령 직무 정지를 위한 여야 회담’을 통해 예산안 문제를 풀어가겠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윤석열 탄핵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 합으로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민주당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없이 예산안 협의는 없다는 기존 원칙을 고수하며 총 4조 1000억 원을 삭감한 기존 감액안에서 7000억 원을 추가로 깎은 수정 감액안을 상정·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데다 윤석열 탄핵을 감안한 추가 감액안이다.
민주당이 감액한 예산을 보면 이유와 근거가 있다. 민주당 주장에 따르면 예비비만 해도 역대 정부에서 1조 5000억 원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예비비를 4조 8000억 원이나 편성했다. 사용처가 분명하지 않은 예비비를 감액한 것은 국회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다. 더욱이 윤석열 정부에서 순방 비용 등으로 대통령실의 예비비 전용 사례가 많았다. 대통령실이 쓴 것은 보안이라는 이유로 지출 증빙도 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정부가 제출한 677조 원에서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예산을 중심으로 정부 예비비 2조 4000억 원을 비롯해 총 4조 1000억 원을 감액한 바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업무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추가로 7000억 원 감액하기로 했다. 대통령실 여론조사 사업비, 대통령 퇴임 뒤 전직 대통령 경호 관련 예산 등을 줄인 것이다. 윤석열 탄핵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퇴임 후 관저 예산 등을 내년도 예산안에 배정할 필요가 없다. 현재로서는 야당의 감액 예산안을 처리한 뒤에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게 합리적이다. 내수 불황이 심각한 상황에서 내년에는 추경이 불가피할 것이다. 소비 진작 등 민생에 필요한 예산은 추경을 통해 확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