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부정한 대통령…국민의 '헤어질 결심'
아래 표는 G20을 포함한 주요국의 지난해 5월 10일 이후 주식 수익률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내내 장식했던 고물가와 국민소득 감소의 지속, 최악의 무역적자, 가계와 기업의 부실 심화, 신용위기의 지속 등 총체적 위기에 놓여 있는 거시경제금융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이 받은 꼴찌 성적표는 당연한 결과다.
첫째,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의 기준으로 삼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월(전년 동월 대비)에 4.8%를 기록한 이후 11, 12월에도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 대비 12월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 0.16% 중 0.13% 포인트가 서비스료(특히 0.11% 포인트가 증가한 개인서비스료) 상승에 의한 것이지, 그동안 물가상승의 주범 중 하나였던 석유는 –0.19% 포인트로 오히려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거기다 최소한 올해 상반기는 전기와 가스료 인상, 유류세 정상화 등도 기다리고 있다. 서비스료 중심의 고물가 지속은 극심한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 한 당분간 물가안정을 달성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물가안정 위주의 통화정책 지속을 말한 한은 총재의 신년사가 공허한 이유다.
〈주요국의 주식 수익률, 5월 10일~12월 30일〉
둘째, 한국민 실질소득(GNI)이 2019년 1824조 원에서 2021년 1892조 원으로 증가했다가 지난해 3분기까지 1878조 원으로 14조 원이나 감소하였다. 고물가와 소득 감소, 즉 지난해 한국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 가계 실질소득은 전 계층에서 후퇴하고 있다.
셋째, 무역적자는 외환위기 때의 2.3배로 최악의 상태다. 지난해 수출액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지만,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6월부터 수출액 증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지더니 10월부터는 마이너스(-)가 지속하고 있다.
넷째, 서민이나 중소기업 등은 자금 접근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신용 한파는 윗목부터 덮치고 있다.
고인 물 사회
이처럼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낙제점이다. 그렇지만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성적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와 노조, 야당의 탓으로 돌리며 5년을 보낼 심산이다. 친일, 노동 혐오, 반북 등은 ‘한국형 극우’의 상징 언어들이다. ‘한국형 극우’에게 사실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정직함도 관심이 없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을 뿐이다. 친일 청산 실패와 분단구조의 지속, 그리고 그에 따른 취약한 민주주의의 결과물이다.
이 구조는 지난 70년 한국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고착화되었다. ‘사실상 3차 대전’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가 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런데 정전 70주년이 되는 올해 이 구조에 본격적인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2010~21년 사이에 시중 통화량은 1956조 원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2010~11년에는 통화량의 73% 이상이 실물경제로 흘러갔으나 코로나 팬데믹 2년(2019~21년) 사이에는 21%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결과 2011~12년 사이에 한국 국민의 순자산 증가분은 순소득 증가분의 9배에 불과했으나 지난 2년 사이에는 32배로 벌어졌다. 자산 증가를 주도한 것은 부동산 자산이었다. 가계로 국한하더라도 가처분소득은 96조 원이 증가했으나, 주택 가치는 14배가 넘는 1485조 원이나 증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땀을 흘려 일하고 싶을까? 부가 부를 낳고, 부가 세습되는 ‘자산가 공화국’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돈과 사람은 생산활동과 혁신보다 부동산 투자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위축, 생산성 둔화와 (경제력 격차가 교육 격차를 만드는) 강남 8학군식 교육 파행의 지속과 미래 기반의 약화 등을 특성으로 한 ‘고인물 사회’가 된 이유이다. 출산 파업과 지방 소멸과 청년의 좀비화는 ‘고인물 사회’의 현상들이다.
무너지는 부채 모래성
그런데 고인물에 커다란 돌멩이가 떨어졌다. 인플레와 그에 따른 고금리 기조는 원자재 가격 상승, 차주의 부채 상환 부담 증가, 전세가 하락 → 건축비 상승과 주택 구입 부담 증가, 다주택 소유 부담 증가 → 주택 수요 감소와 주택 매물 증가, PF 대출 사업 어려움 증가 → 주택가격 하락과 주택 수요 감소, 미분양 증가와 PF 대출 부실화 → 가계와 건설회사와 금융사 부실 증가 → 부채 축소와 가계소비 위축 → 기업투자 위축과 구조조정 → 내수 위축, 임금 정체와 고용 악화, 가계소득 악화 → 주택 시장 침체와 내수 위축의 악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다. 부동산 생태계 붕괴가 자영업 등 내수 관련 산업 생태계 약화 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배경이다.
여기에 수출 환경 악화로 투자 위축은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는 부채 조정(deleveraging) 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이유로 부동산 자산이 다른 자산에 비해 많은 부채를 포함하고 있고, 시장 침체기에 현금화가 어렵다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기준 한국의 민간(=가계+기업)부채는 4721조 원으로 GDP 대비 222.1%에 달한다. 일본의 90년대 초 거품 붕괴 당시 GDP 대비 민간부채가 198.9%였다. 게다가 일본은 가계부채가 68.3%에 불과했다. 자산은 오랜 시간 축적된 저량(stock) 개념이기에 자산의 일부인 부채 조정 역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부채 축소는 소득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소비 축소로 해결하기 어렵다. 투자와 소득 위축이 소비의 공격적 축소를 어렵게 하고, 심지어 주택매각 압력의 증가와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부채 축소의 악순환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sheet recession)’ 개념이 그것이다.
좋은 일자리(와 소득)가 창출되는 산업 생태계가 재구성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을 막기는 어렵다. 수명이 다한 ‘한강의 기적’ 위에 건설한 ‘부채 모래성’의 예고된 운명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진 배경이다. 일부 전문가는 금리가 인하로 전환하면 부동산가격도 회복할 것을 예상한다. 그런데 금융 완화는 (부채 축소가 만들어내는) ‘대차대조표 장기불황’에 효과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거품 붕괴 당시 6%에 있던 일본의 공정금리(기준금리)는 93년 말까지 2% 밑으로 내렸고, 95년 말에는 0.5%, 그리고 99년에는 제로금리까지 내렸으나 부동산가격 하락은 막지 못하였다. 미국 연준도 당시 10% 근처까지 있었던 금리를 93년 말에는 3%까지 내렸다. 부채 축소 압력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졌다고 다시 부채를 동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토목건설 중심의 SOC 사업(삽질 프로젝트)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효과가 없다. 토목건설 중심의 일본의 재정정책이 반짝 효과 후 재침체에 빠지며 정부부채 증가로 이어졌던 이유다.
민주주의는 마지막 희망
이처럼 부채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대차대조표 장기불황’은 전쟁 이후 70년을 사용한 낡은 집의 붕괴와 교체를 의미한다. 임기 말까지 대략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했음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가격 폭등은 정권 재창출에 치명타로 작용하였다. 윤석열 ‘복수 정치’는 이 ‘부동산 분노’에 기댔다. 오랫동안 고용-소득-노후의 ‘3불(안) 시대’를 살아오다 보니 부동산은 많은 사람에게 희로애락 그 자체였다. 따라서 부채 모래성이 무너지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역사(하늘)는 개개인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개인은 사회적 동물이자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고로 군자는 무너지는 집에 들어가 살지 않는다(“危邦不入 亂邦不居”, 論語)고 한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공적 자원의 사유화를 권력 장악의 목표로 삼는 정권은 특권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보통 사람을 제물로 삼는다. ‘분노 투표’의 부메랑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폐허 위에 새로운 집을 지을 과제에 맞닥뜨릴 것이다.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한국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자 일본과의 차이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라고 부르는 민주주의 유산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분야는 문화와 스포츠 정도다. 의식의 식민지성에서 벗어난 민주화 이후 세대가 이를 주도하는 배경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집을 절대 지을 수가 없는 이유이다. 세계에서 상위 10% 국가군에 속할 정도로 한국 민주주의는 매우 공고하다(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한국 민주주의의 불가역성을 만든 사건이 바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이었다. 그런데 연말 특별사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버렸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국기문란과 반헌법적 행위라며 중대범죄자로 자신들이 규정한 탄핵 세력을 사면하고 복권시켰다. 국민과 촛불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버린 이상, 국민은 대통령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 특히 우리의 자녀들은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사유화한 정권이 새해 첫날부터 기득권 타파를 외치는 궤변을 언제까지 들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