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반말과 영어 남발…'공감 능력 부재'의 단면

영어 섞기, 실은 '콤플렉스'…국정 무능 포장 심리도

국민을 '을' 취급, 툭하면 말 놓는 '갑질 화법' 구사

근본엔 '공감 능력 결여'…"자기중심적 말하기 전형"

2023-01-01     김호경의 안티테제

김호경 에디터‧편집이사

2021년에 이어 2022년에도 여러 물의를 일으켰던 윤석열 대통령의 언어 습관이 새해엔 좀 바뀔까. 윤 대통령은 '막말' '아무말대잔치' 외에 두 가지 독특한 말버릇이 있는데, 하나는 영어를 남발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공개된 자리에서 반말도 잘 내뱉는다는 것. 둘 다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언어 습관은 어떤 심리에서 비롯됐으며 어떤 문제가 있을까.

영어 섞기, 실은 '콤플렉스'…국정 무능 포장 심리도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 발언에서 "거번먼트 인게이지먼트(government engagement)가 바로 레귤레이션(regulation)"이라며 "마켓(market)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레귤레이션 할 거냐…"라고 말했다,

시장경제에서 정부 역할에 대한 상식적인 설명을 전문가들을 앉혀놓고 장황하게 훈시하는 가운데 '정부의 관여가 바로 규제'라는 동어반복적인 뻔한 말을 굳이 영어로 표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계속 불필요한 영어 단어를 뒤섞어 발언하다 "(2023년에는) 더 아주 어그레시브(aggressive) 하게 뛰어보자"는 말로 마무리했다.

윤 대통령의 남다른 영어 사랑 또는 집착은 자주 목격돼왔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선 "우리 사회는 아직 인파 관리 또는 군중 관리라고 하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개발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적극 활용해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 기술을 개발하고 필요한 제도적 보완도 해야 한다"고 수차례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를 언급했다.

한국 사회는 이전까지 대규모 촛불집회와 월드컵 거리 응원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군중 집결 및 관리가 가장 안전하게 이뤄진다고 정평이 나 있었었다. 윤 대통령은 참사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는 것은 물론, 수많은 국민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엄중한 상황에서조차 때와 장소에 안 맞는 영어 구사에 집착한 것이다.

 

YTN 유튜브 화면 캡처

"모든 국가 정책을 팔리시 믹스(policy mix)를 해가지고 일자리 창출에 전부 맞출 생각이고…."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한다."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national memorial park)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같은 영단어 남용에 대해 '영어 사대주의' 또는 '영어 콤플렉스'로 인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을 변방으로 간주하고 미국 또는 서구를 세계의 중심으로 동경하는 구시대적 의식‧무의식이 만들어 낸 언어 습관이라는 것이다. 나라의 수장으로서 국민과 공공기관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설혹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해도 공개석상에서 자국민들을 상대로 자꾸 과시한다는 건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두드러진 외국어 섞어 쓰기 욕망은 시도 때도 없이 표출되지만 실제 회화 실력은 변변치 않아 내세울 수준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 후 3년 만에 대면 형식으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했을 때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장 등 다자회의 무대에서 다른 정상들과 환담하며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아예 어울리지를 못하고 외톨이처럼 자리에만 앉아 있었던 것이다. 유튜브 등에서 관련 영상을 아무리 찾아봐도 윤 대통령이 외국인을 만나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영어 섞어 쓰기가 사실은 열등감의 발로이며, 한편으로는 국정 운영의 무지와 무능을 포장하려는 얄팍한 심리가 작동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국민을 '을' 취급, 툭하면 말 놓는 '갑질 화법' 구사

단순히 유치한 영어 과시를 넘어, 윤 대통령이 평소 주변인들과 국민을 상대로 반말을 자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그의 언어 습관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이 툭하면 말을 놓는 상식 이하의 말버릇을 가진 건 주지의 사실인데, 이미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10월 22일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그의 답변 태도를 보다 못해 이렇게 질책한 적이 있다.

"의원 질문에 답변하실 때마다 계속 '응?' '아니' 이런 말을 꼭 추임새로 넣고 계세요. 누구한테나 그냥 일상적으로 반말하시는 건가요?"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뛰던 2021년 12월 15일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과 관련한 기자 질문을 받자 "뭐라고? 아니 그럼 내가 하나 물어볼게. 그 여러분들 가까운 사람 중에 대학 관계자 있으면 한 번 물어봐. 시간강사를 어떻게 채용하는지"라고 흥분하며 잇단 반말에 삿대질까지 곁들였다.

 

YTN 유튜브 화면 캡처

서울의 한 마트를 방문한 자리에서나, 경남 창원의 방위산업 기업을 방문했을 때 현장 관계자들에게 쏟아냈던 발언들에서 윤 대통령의 평소 말투가 고스란히 나타난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도 주로 반말로 하대하다가 간간이 경어체를 뒤섞는 식이다.

"이거는 뭐야?" "당도가 좀 떨어지는 건가? 이게 빨개지는 건가?" "수출 단가가 대당 얼마야? 이게 미사일의 일종인가?" "탱크와 포를 결합한 무기가 그동안 없었나요? 탱크와 포를 결합한 거잖아." "포신 낮추면 탱크 같은 기능도 하는 거 아닌가?" "이거는 뭘로 쏴?" "요거는 뭔가?"

이렇게 말이 짧은 장면은 부지기수다. 심지어 참사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 3명이 숨진 현장을 찾았을 땐 "근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라고 했고,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을 방문했을 땐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 "아 그럼 여기에 인원이 얼마나 있었던 거야?" "저쪽 앞에?" "압사? 뇌진탕, 이런 게 있었겠지."

국민을 하찮게 보거나 '을' 대하듯 하는 윤 대통령의 이런 말버릇은 오만방자한 평소 성격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 시민들이 계속 이용해야 할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심지어 그 옆에 사람이 앉아있었는데도) 사진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기초적인 공중도덕 실종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데서 기인한다.

채널A 사건 당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다리를 책상에 얹어놓고 "보고서 저리 두고 가"라고 했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는 전화로 "네가 눈에 뵈는 게 없냐"고 소리쳤다는 증언들이 있다. 당사자들이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음은 물론이다.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윤 대통령을 겨냥해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깨알지식을 자랑한다. 다른 사람 조언은 듣지 않는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냐'며 화부터 낸다"고 전했다.

근본엔 '공감 능력 결여'…"자기중심적 말하기 전형"

이런 윤 대통령의 언어 습관은 과시욕이 남달리 강하고 안하무인인 내면의 품성이 겉으로 발화한 것인데 결국 '공감 능력'의 심각한 결여가 근본적 배경으로 보인다. 그래서 카메라가 돌고 있든 말든, 다수 국민이 불쾌감을 느끼는데도, 대통령으로서 공개석상에서의 말투가 교정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 '소탈함'과는 거리가 먼, 아예 상반된 차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인 심리학자 김태형은 저서 <이재명의 스피치 – 윤석열의 말과 심리>에서 윤석열의 '갑질 화법'에 대해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갑'의 위치에 놓고 상대방을 마치 '을'을 대하듯 말하는 윤석열의 화법에는 그의 권위주의적 성격, 엘리트 의식, 분노와 공격성, 관료주의 성향 등 여러 가지가 영향을 미친다"며 "공감 능력의 부족 역시 그 중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독백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하기는 항상 듣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말하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기를 잘하려면 반드시 듣는 사람, 청중의 존재를 고려해 그에 맞게 말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기중심적으로 말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공감 능력이 취약해 상대방 감정을 이해하거나 고려하지 못하고 갑질 화법을 구사하는데, 이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말하기'라는 게 김 소장 설명이다.

 

YTN 유튜브 화면 캡처

윤 대통령에 대한 심리분석 결과는 이미 여러 유튜브 매체를 통해 발표됐는데 이를 요약하면 권력 지향성과 '강약약강'의 심리가 특징인 권위주의적 성격, 마음속에 화가 많고 타인에게 몰인정하다는 점, 급격한 일탈이나 타락에 취약하고 융통성 없는 '가짜 모범생', 제 식구 감싸기와 내로남불·이중기준으로 표현되는 패밀리 의식, 스스로를 대중 위에 군림하는 존재처럼 여기는 엘리트 의식 등이다.

김 소장은 "무력감이 심한 사람은 강자 앞에선 약하고 약자 앞에선 강한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심리를 갖게 되는데, 이를 권위주의적 성향(성격)이라고 한다"며 "흥미롭게도 윤석열이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는 잔인하게 물어뜯는 권위주의적 성격자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지적한 이들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들"이었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성인이 된 이래 주변 인맥들로 '패밀리'를 구축해 대장 노릇을 해오고, 매일 온갖 피의자들을 다루는 검사 생활만 하다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대통령으로 수직 상승하며 권위주의적 습성이 갈수록 강화되고 고착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언어 습관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됐든,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중경상을 입은 미증유의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행정안전부' 장관 한 사람조차 문책하지 않는 기이한 태도 역시 공감 능력 부재와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이런 습속이 새해 들어 달라질 거라는 조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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