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네타냐후 영장 '곤혹'…'좌표 잃은' 홀로코스트 속죄
이스라엘의 '또 다른 홀로코스트'엔 눈감아
유대인은 물론 인류 차원에서도 조명해야
인류에 속죄 길은 홀로코스트 재발 저지
ICC 당사국이자 이스라엘과 특수 관계
독일 "이스라엘에 무기 제공 변함 없다"
독 외교, 영장 집행 여부에 "가정적 질문"
독일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옹색한 처지에 빠졌다.
유엔 산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1일 가자 지구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자행한 혐의로 네타냐후와 범행 당시 국방장관인 요아브 갈란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영장 집행 놓고 '엉거주춤'
결단해야 할 순간에 꽁무니 빼는 독일
문제는 독일이 '로마 규정'에 기초해 2002년 출범한 ICC의 124개 당사국 중 하나로서 영장 집행 의무가 있지만,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상대로 저지른 홀로코스트란 역사적 범죄를 속죄한다면서 이스라엘을 '특수 관계'로 여기고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대 관심거리인 체포 영장 집행 여부에 대해 가부간에 '공식 입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물론 주요 유럽국이 당일 바로 "ICC 결정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란 논평을 내놓은 것과는 달리 독일의 올라프 숄츠 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난 22일에야 슈테펜 헤베슈트라이트 정부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독일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로이터와 독일 DW 등에 따르면, 먼저 헤베슈트라이트 정부 대변인은 독일이 처한 '딜레마'를 거론했다. 그는 "한편으론 우리가 강력히 지지하는 ICC의 중요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론 역사적 책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역사적 책무'란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이스라엘에 대한 특수한 역사적 책무'를 뜻한다.
이 역사적 책무는 전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맨 먼저 거론했다. 그러면서 메르켈은 이스라엘의 안보는 현대 독일의 존재 이유에서 핵심 부분을 차지한다고 선언했다. 뒤이은 숄츠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나치 과거에 대한 독일의 특수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팔레스타인의 고난은 외면한 채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두둔해왔다.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적 책무 있다"
독일, 영장 집행 여부에 "가정적 질문"
헤베슈트라이트는 "독일 정부는 ICC 규정 초안 작업에 관여했고 ICC의 최대 지원국 중 하나"라면서도 "독일 역사의 결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독특한 관계와 막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네타냐후 등의 독일 입국 때 체포영장을 집행할지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독일 정부가 밝힌 내용을 보면, △ 원칙적으로 ICC 결정을 존중한다 △ 독일은 이스라엘에 특별한 역사적 책무가 있다 △ ICC 결정에 법적 문제가 없는지 면밀하게 검토하겠다 △ 영장 집행 여부엔 '가정적'이라서 답변하지 않겠다 △ 이스라엘에 무기 제공 입장은 변함이 없다 등이다. ICC의 주요 당사국인 만큼 '원칙적으론'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ICC의 결정을 거부하고 싶은 독일의 속내가 들통났다.
ICC에는 체포영장을 집행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124개 당사국은 전범이 자국에 들어올 때 체포해 구금할 의무를 진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도 같은 답변을 내놨다.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COP29)에 참가차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를 방문 중인 베어보크는 22일 독일 방송들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ICC의 작업을 존중하며 독일과 유럽, 그리고 국제 차원에서 법을 준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선 "이스라엘 총리가 EU에 입국할지는 가정적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정확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네타냐후가 독일을 방문한 것은 작년 3월이며, 당장은 어떤 방문 계획도 없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네타냐후와 갈란트를 전범으로, 무자비한 가자 대학살과 초토화를 강행한 이스라엘군의 군사 작전을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로 규정한 ICC의 역사적 결정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제공을 계속하겠다는 독일 정부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앞서 독일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지난 10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제공을 재개함으로써 가자 학살에 이은 레바논 학살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독일 "이스라엘에 무기 제공 변함 없다"
정치권에선 즉각 무기 제공 중단 요구
좌파 BSW 대표인 사흐라 바겐크네히트는 SNS를 통해 "이 체포영장은 숄츠 총리와 베어보크 외교장관의 얼굴을 후려친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연방 정부가 가자에서 자행되는 네타냐후 정부의 전쟁범죄 지원을 끝내는 추가적 조치는 뭘까? 당장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라고 적었다.
집권 연정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사민당(SPD)의 이자벨 카데라르토리 의원도 'X를' 통해 "독일 정부는 즉시 전범인 네타냐후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 그는 국제 체포영장을 받고 수배 중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20일 ICC의 카림 칸 수석 검사장이 네타냐후 등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을 당시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을 비판한 뒤 "독일은 이스라엘이 민주주의 시스템, 법치, 강력한 독립적 사법부를 갖췄다는 점들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때 고려돼야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현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은 민주주의와 법치, 사법부 독립이 무너진 '유대 신정 독재정권'으로 빠르게 퇴행하고 있는 사실을 독일 정부는 애써 외면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작년 10·7 사태 이후 13개월여 동안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에서만 4만4000명이 죽고 10만3000명이 다쳤지만, 독일은 시종일관 하마스의 테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란 궤변을 구사해왔다.
홀로코스트는 유대인과 인류 향한 범죄
인류에 속죄 길은 홀로코스트 재발 저지
과거 유대인을 상대로 나치 정권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속죄'에 과도하게 매몰된 나머지 지금 이스라엘 극우 유대 정권이 가자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벌이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엔 눈 감는 게 현 독일 정부의 실체다.
문제는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책임과 속죄는 직접적 피해 당사자인 유대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도 적용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유대인을 포함한 인류를 향한 범죄라는 점에서 유대인은 물론 인류의 차원에서도 접근하는 게 마땅하다.
당연히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피해자인 유대인에게 '특별히' 속죄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독일의 역사적 죄가 면책되는 게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본질'인 인류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도 속죄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유대인에게 특별히 속죄하되, 그것과 동시에, 다시는 누구든 인류를 상대로 나치의 홀로코스트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독일이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독일이 진정으로 인류에 속죄하는 길이어서다.
현재 독일은 나치 홀로코스트가 '인류를 향한 범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고 '유대인 피해'에만 매몰된 나머지 지금 이순간에도 가자에서 반인류적 학살극을 벌이는 이스라엘 극우 정권에 일방적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 한쪽 면만 절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속죄의 방향이 잘못 설정된 셈이다.
지금은 팔레스타인인을 포함해 '인류'를 상대로 저지르는 네타냐후 극우 정권의 또 다른 홀로코스트를 저지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게 독일이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일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 극우 세력도 자신들의 만행을 비판할 때마다 홀로코스트를 소환해 '반유대주의'로 매도하며 만행을 덮는 행각을 멈추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