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주주 친화…주주 참여 방해하는 주총 제도

20년 전 그대로…주주 친화성 아시아국 꼴찌

개최 임박해 소집통지…될수록 의안 모르게

사업·감사보고서 검토시간 일주일밖에 안 줘

표결 결과도 공시 안 해도 그만, 투명성 저해

2024-11-18     장박원 에디터

한국 상장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요식 행사일 뿐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이름은 주주총회지만 실제로는 주주 참여가 저조하고 의결권을 행사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 이유는 주주를 홀대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에 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는 지난 2006년 아시아 10개국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시스템을 평가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당시 한국은 8위로 최하위권이었다. 1~2위였던 홍콩과 싱가포르는 물론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보다도 주주총회 시스템이 후진적인 것으로 혹평을 받았다.

 

지난 3월 29일 남양유업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1964빌딩에 주주총회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4.3.29. 연합뉴스

한국 상장사 후진성 20년 전과 똑같아

ACGA는 최근 한국 기업들의 주주총회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내놨다. 10개국 평가 보고서 발표 후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으나 한국은 바뀐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ACGA는 아시아에서 활동하거나 투자하는 기관 투자자와 상장사, 회계법인 등 101개 기관이 참여하는 단체다. 국민연금도 회원 중 하나다.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주식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ACGA의 제안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경제개혁연구소는 18일 한국의 주주총회의 문제점과 제안을 담은 ACGA 보고서를 집중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연구소는 △주주총회 소집과 사전 정보 제공 △주주총회 참석과 의결권 행사 △주주총회 진행과 표결, 사후 공시 등 3개 분야로 나눠 현황과 개선안, 개정해야 할 관련 법규를 정리했다.

 

 자료 : 경제개혁연구소. 아시아 국가들의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시스템 평가.

주주총회 14일 전 통지…의안 분석할 시간 없어

ACGA는 우선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에 필요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은 주주총회 날짜가 두 주 전에야 통지된다.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21일 전에 통지한다. ACGA가 권장하는 기간은 28일이다. 대만은 상장회사의 86%가 30일 전에 주주총회 일자를 통지하고 호주는 28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홍콩 등은 21일이며 중국도 20일이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한국과 같은 14일이지만 싱가포르는 특별결의 의안이 있으면 21일 전에 통지한다.

한국은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에서 28일 전 통지를 권장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법정 요건(14일)만 충족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상장 기업의 72.8%와 코스닥 상장회사 90.9%가 주주총회 소집 통지를 2주 전에 공시했다. 주주총회를 촉박하게 알리면 결과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게 된다. 의안을 분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ACGA는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총회 소집 통지 기한을 28일로 늘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3월 말에 몰려 있는 주주총회…주주 참여권 제한

주주총회가 3월 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주주 참여권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여러 종목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는 주주총회 개최가 한 기간에 집중되면 참석이 더 힘들어진다. 한국과 달리 대만은 2015년부터 상장사의 주주총회 개최를 하루 100회로 제한했고 싱가포르는 대형 상장사의 주주총회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공시가 늦어 사실상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 올해도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의 90% 이상은 최소 1주 전 요건을 간신히 맞춰 보고서를 공시했다. ACGA는 주주총회 3주 전까지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하도록 상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지배구조보고서와 지속가능성보고서에 대해서도 기간 투자자가 수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주총회에 맞춰 공시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수 기준 산정 방법 설명 없어…효과적 평가 봉쇄

한국의 주주총회에서는 이사회가 정하는 이사 보수 총액 한도만 결정하고 개별 이사보수에 관한 세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보수 기준과 산정 방법에 대한 설명도 없다. 주주들이 이사보수에 대한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평가를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개별 이사보수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게 ACGA의 제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주주총회의 의결권 행사 절차가 복잡하고 공시가 영어로 제공되지 않아 정보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주주총회 참석에 필요한 서류 요건이 엄격한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주총회를 진행할 때 질의와 응답 시간이 부족하다. 이는 모두 주주 참여와 의결권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주주총회를 이사회 의장이 아닌 대표이사가 진행하고 사외이사가 불참하는 관행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혔다.

 

 자료 : 경제개혁연구소. ACGA의 한국 주주총회 운영 현황과 제도 개선 제안 내용.

집중투표제 정관서 배제…소수주주 권한 축소

일반 주주의 권한을 확대하는 제도 중 하나가 집중투표제다.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이사 수만큼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도가 집중투표제다. 예컨대 선임하는 이사가 4명일 때는 주주당 표가 4개로 늘어난다. 원하는 이사에 집중 투표하는 방식으로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수(소액) 주주의 뜻을 관철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지배주주의 권한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는 꼭 시행해야 할 제도다. 한국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했으나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다. 대다수 한국 상장 기업은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집중투표제를 시행하려고 해도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ACGA는 이렇게 권고했다.

“집중투표의 광범위한 활용은 기업지배구조에서 소수 주주의 역할을 강화하여 소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고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어야 한다. 주주들은 상법 제532조의7을 이용할 수도 있다. 기업이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 또는 채택하고자 하는 경우 해당 안건은 별도로 표결해야 하며 주주들의 의결권은 3%까지로 제한된다. 한국의 의결권 행사 서비스 회사들도 집중투표를 구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주주총회 표결 결과 명확한 규정도 없어

주주총회에서 표결한 결과를 곧바로 공시하지 않는 관행도 기업의 투명성을 저해하고 있다. 한국은 주주총회가 끝난 뒤 즉시 공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금융회사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에 따라 찬성과 반대 비율을 공시한다. 그러나 금융회사도 공시 방식이 제각각이다. 거래소 공시 규정 손봐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표결 결과를 명확하게 공시하도록 의무화한다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증시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기업 경영에서 일반 주주의 요구와 이익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주주 친화적인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국회와 정부는 증시 활성화와 주주권 보호를 취지로 상법 개정 등을 논의하고 있는데, 주주총회 제도는 주주권 보호 수준을 드러내는 척도”라며 “이런 점에서 한국 주주총회 개선 방안을 조목조목 제안한 ACGA 보고서는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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