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시간’은 우크라에 어떤 식으로 올 것인가
대통령 되면 24시간 내 전쟁 끝내겠다던 트럼프
누가 이기느냐보다 자기 이익이 중요한 사업가
푸틴과 젤렌스키 중 누구의 제안에 더 솔깃할까?
휴전협정 맺어도 근본 원인 해결 안 되면 상황 반복
트럼프식 ‘딜’ 단점에도 승자 없는 전쟁 빨리 끝내야
트럼프가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제 정말 끝나는가 보다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이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동안 트럼프는 푸틴과의 좋은 관계를 과시하면서 마치 전쟁을 멈추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발언해 왔다. 물론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양측 다 군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끔찍하게 많이 죽어 나가는 상황을 반길 리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렇게 쉬운 일일까?
트럼프 정부가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시대가 와도 우크라이나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트럼프 성격에 인권, 정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개념들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는 이에 대해 별 신경도 안 쓰는 타입이다. 지금 이 전쟁을 꼭 끝내겠다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너무 돈이 들어서, 그리고 전쟁을 끝내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 것 같다. 전형적인 사업가인 트럼프는 모든 일을 거래로 본다. 이익이 있어야 움직인다는 심리다. 이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말은 푸틴이나 젤렌스키, 누구의 편을 들어서가 아니라 미국 내 정치 점수를 따기 위함이다. 이런 행보에는 장점과 단점이 다 있다.
트럼프의 귀는 누구의 제안에 더 솔깃할까?
트럼프의 이런 성격적 특징을 머리에 두고 생각해 보면 트럼프에게는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는지 중요하지가 않다. 자기 이익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전제로 중개에 나서면 어느 쪽으로부터 더 유혹적인 제안을 받느냐에 따라 상황이 정반대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우크라이나에게 불리한 시나리오 말고도 어느 정도 우크라이나도 수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푸틴은 대화하기엔 많이 어려운 상대다. 이 전쟁 처음부터 자기 목표를 명확하게 공개해 왔다. 우크라이나 주권 상실, 나토 가입 포기, 군대 대폭 축소, 친러 ‘마리오네트’ 정권 수립, 현재 점령한 우크라 영토 러시아 편입 등이다. 러시아가 강제하려는 우크라이나판 을사늑약인 셈이다.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고 그럴 필요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입장에서 이 정도의 항복을 받아들이려면 돌아오는 대가가 상당해야 한다. 미국 국내에서 ‘전쟁을 끝낸 영웅’이라는 타이틀도 좋지만, 트럼프 성격으로 봐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대화가 어려울 거라고 본다. 푸틴은 트럼프에게 그 대가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부터 중국에 크게 의존해 온 푸틴은 움직일 공간도 그리 넓지 않다.
반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에 비해 그런 제한이 거의 없다. 나라가 초토화한 것도 사실이고 이길 결심도 여전하다. 좀 나간 추측이지만 초토화한 우크라 땅 재건권이나 부동산 개발권을 미국에 줄 수도 있고 우크라의 농지를 장기간 무료 임대하는 등의 달콤한 제안을 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 국회에서 ‘승리의 계획’을 발표했을 때 ‘트럼프용’ 두 대목을 넣었다고 한다. 종전 시 유럽에 배치한 미군을 우크라이나 병사로 대체하는 것,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하자원 개발권을 서방 국가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극단적인 제안일 수도 있으나 돈만 보고 움직이는 트럼프가 이에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푸틴이냐, 젤렌스키냐, 누가 말을 더 잘하는지 눈치 게임이다. 그리고 그런 제안들을 들어 보고 어느 쪽이 더 이익이 되는지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트럼프의 몫이다.
모두가 패배한 전쟁, 하루빨리 끝내야
전쟁이 지금 당장 어떻게 끝나든 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래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에게 안보 보장을 할 수 있을지, 있다면 어떤 방식일지가 주목된다.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지우려는 푸틴의 원래 계획은 일단 틀어졌지만 일정한 시간을 두고 병력을 재정비해서 공격을 다시 할 거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우크라이나도 다른 주변 국가들도 그때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거의 모든 유럽과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트럼프가 ‘딜’을 해서 지금 당장 사격을 중지하고 휴전협정을 맺을 수는 있지만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몇 년 후에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트럼프식 외교 방식의 큰 단점이다.
이 전쟁에서는 승자가 없다. 우크라이나는 수많은 민간인과 영토 일부를 잃었고 러시아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과 이민을 간 인력 손실은 물론, 전 세계로부터 고립당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국민의 생활수준 등 모든 측면에서 패배했다.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 있지만, 전쟁은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