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비트코인 광풍…다시 소환된 ‘튤립버블’

비트코인 1개당 1억 2천만 원 돌파

‘극도의 탐욕’ 구간 진입…급락 우려

“살찐 돼지는 도축 돼”…추격 매수 경고

가상화폐, 17세기 튤립과 다르지만

변동성 크고 범죄에 활용…규제 필요

전략 비축 자산 가능할지도 따져봐야

2024-11-14     장박원 에디터

무섭게 치솟던 비트코인 가격이 14일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5일 이후 비트코인은 연일 급등하며 1개당 9만 달러를 가뿐하게 넘어섰다. 10만 달러도 곧 돌파할 기세다. 한화로는 1개당 1억 2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임금 노동자의 2년 연봉과 맞먹는 금액이다.

트럼프가 촉발한 코인 광풍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엇갈린다.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비트코인을 비축 자산으로 삼겠다는 트럼프의 대선 공약이 실행된다면 더 상승할 수도 있다. 반면 1개당 9만 달러가 거품일 수 있다며 손실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가격 급등에 편승해 한몫 챙기려는 투기 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코인 열풍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비트코인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상화폐 진영의 로비에 비트코인 옹호자로 돌변한 트럼프

현재 비트코인에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자명하다. 트럼프가 가상화폐에 대해 처음부터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 유세 과정에서 갑자기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 과거 코인을 ‘사기’라고 했던 말을 뒤집고 비트코인을 전략 준비 자산으로 비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열린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보유하거나 미래에 획득하게 될 비트코인을 100% 전량 보유하는 게 내 행정부의 정책이 될 것이며 이는 사실상 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후에도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 가상화폐 대통령이 되겠다는 둥 코인 친화적 발언을 쏟아냈다. 취임 첫날 가상화폐 규제를 주도한 게리 겐슬러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임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느닷없이 ‘비트코인 대통령’을 자처한 배경에는 가상화폐 로비 단체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를 비롯한 업계는 트럼프 쪽에 후원금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통령으로 당선된 J. D 밴스 등 가상화폐 규제 완화를 주장했던 인사들이 대거 트럼프 캠프에 참여했다. 트럼프가 집권 2기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내정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역시 가상화폐에 열광하는 인사다. 그는 가상화폐 중 하나인 ‘도지코인’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로도 유명하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4. 07 16 [AP=연합뉴스]

‘극도의 탐욕’ 구간에 진입한 투자심리 지수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가상화폐 친화적 인사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큰 만큼 비트코인 가격 추가 상승 기대감은 매우 크다. 올해 말까지 1개당 10만 달러를 넘어서고 내년에도 추세적으로 상승하며 2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트럼프 공약대로 비트코인이 미국의 전략적 준비자산이 되면 1개당 50만 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적중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자산에 속한다. 최근 10일 간 비트코인이 급등하며 코인마켓캡의 가상자산 공포와 탐욕 지수는 86점으로 ‘극도의 탐욕’ 구간에 진입했다. 100에 가까워지면 투자자들이 탐욕에 빠져 거품이 커진 상태로 조만간 시장 조정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2022년 11월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 사태 당시에도 코인 가격이 하루 만에 80% 이상 떨어진 적이 있다. 지금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비트코인의 변동성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기준 비트코인 가격 추이. 연합뉴스

비트코인 옹호론자도 “지금은 욕심부릴 때 아냐”

비트코인 투자 과열에 대한 경고음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분석업체인 BRN의 발렌틴 푸르니에 애널리스트는 자산별 상대 강도 지수를 근거로 비트코인이 과매수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점에서 진입한 신규 투자자들로 변동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비트코인 옹호론자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인 로버트 기요사키도 “지금은 욕심부릴 시기가 아니다. 살이 찐 돼지는 결국 도축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넘어가면 추가 매수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주 금융서비스 업체인 페퍼스톤그룹도 “비트코인 가격이 과열 상태에서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는지 소폭 조정을 기다릴 지 투자자들이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가상화폐 규제 완화 법안이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의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 가상화폐의 과도한 변동성과 자금 세탁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큰 만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경제 분야에서 찬반이 엇갈리는 가상화폐 이슈보다 무역과 통상, 산업 문제를 먼저 해결할 것이라는 점에서 비트코인 관련 공약이 뒤로 밀릴 수도 있다.

 

금융투기의 역사. 네이버 갈무리.

17세기 네덜란드 튤립버블이 전하는 경고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소환되는 역사가 있다. 17세기 일어났던 네덜란드 튤립버블이다. 비트코인과 튤립은 자산 가치 측면에서 다르다. 비트코인은 튤립에 비해서 희소성이 크고 기술적으로만 보면 기존 화폐를 대체할 수도 있다. 다만 비트코인을 모방한 코인 중에는 튤립처럼 본질적 자산 가치가 없는 것도 많다. 문제는 이런 코인들에 대해서도 투기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에드워드 챈슬러가 발간한 ‘금융 투기의 역사’에는 ‘튤립버블’에 뛰어든 인간 군상과 그 결말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투기를 통해 누군가는 큰돈을 벌 수 있지만 언제나 뒤늦게 매수한 이들의 도덕적 타락과 정신적 허탈감, 돌이킬 수 없는 파산으로 끝을 맺는다. 아래 글에서 튤립 자리에 비트코인을 넣어 읽어보면 현재 가상화폐 시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튤립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자 프랑스인들은 한몫 챙기기 위해 1634년 파리 근교와 프랑스 북부에 튤립 시장을 열었다. 튤립 투기가 국제화한 것이다. 일확천금에 눈이 멀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사람들은 직공과 방적공, 구두 장수, 빵 가게 주인, 채소 장수, 농사꾼 등이었다. 튤립 가격은 당시 노동자 한 달 봉급 수준에서 5년 치 연봉에 상응하는 값으로 치솟았다.

1637년 2월 3일 튤립 시장이 붕괴했다. 1000길더(네덜란드 옛 화폐 단위)를 받기로 하고 튤립을 팔았던 사람은 35길러만 받을 수 있었다. 투기적 광기는 직업적 소명 의식과 정직, 검약 등과 같은 자본주의 윤리를 뒤엎어버렸다. 투기꾼들은 비난의 뭇매를 맞거나 빈털터리가 되고 마침내는 감옥에 갇히는 결말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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