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러닝메이트제, 헌법위반이다

2022-12-28     곽노현 칼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지난 12월 15일 제1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개혁을 노동개혁, 연금개혁과 함께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꼽았다. 교육개혁이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교육과 관련하여 몇 차례 발언하며 나름의 문제의식과 처방을 내놨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문제투성이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위한 교육개혁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첫째,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은 지방교육, 그 중에서도 중고교교육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인센티브를 줘도 대기업이 지방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핵심 인재들이 아이들 교육을 이유로 지방 이전을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게 윤 대통령의 인식이다. 따라서 “지방의 중고등교육이 기업의 이전과 투자를 가져오고 다시 지방대를 발전시키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말은 ‘중고등교육’이라고 했지만 전후 맥락으로 볼 때 중고교교육을 말한 것 같다.

그는 “수십 년 전 대구, 부산, 광주 등에 지방 명문고가 있었을 때는 지역 국립대, 지방대가 상당히 좋았는데 전부 없어지면서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됐다”고 설명했다. 경북고, 부산고, 광주일고, 전주고 등 지방 명문고들이 고교평준화로 사실상 없어지면서 지방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됐다는 얘기인데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도 지방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새로운 지방 명문고들이 적지 않다. 영재고, 과학고, 국제고, 외고, 자사고 등이 그렇다.

분명한 건 윤 대통령이 교육문제를 이렇게 인식하기 때문에 영재학교, 과학고, 외고, 자사고 등 학생선발권을 갖는 지방 학교들을 폐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2025년부터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폐지하도록 돼 있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을 윤 대통령이 바꿀 게 틀림없다. 그의 문제의식은 지방에서 일반 고교를 다니면 SKY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의 해법은 학생선발권을 가진 지방 명문고를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고입 경쟁 강화와 고입 사교육비 증가가 불을 보듯 빤하다.

둘째, 윤 대통령은 고등교육에 관한 중앙정부의 권한도 최대한 지방정부에 이양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과연 그래야 할까?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분권해야 할 게 있고 분권해선 안 될 게 있다. 지역거점 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이자 지역 교육계의 중심이자 정점으로 키우는 것이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이다. 그래야 대기업의 지방 이전과 지역 출신의 지역 정주가 가능해진다. 지역거점 국립대 집중 육성은 교육 전문성이 없는 시도지사보다는 교육부가 담당하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시도지사에게 넘어갈 경우 영세한 지방 사학 살리기에 치중할 우려가 높다.

셋째, 시도지사가 고등교육 권한을 갖게 될 경우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분리해 선출하는 것보다 러닝메이트로 출마해서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게 한다면 지방균형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뜻을 미리 파악한 교육부는 이미 지난 12월 8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러닝메이트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뜬금없다. 시도지사가 고등교육 권한을 갖는 것과 교육감 러닝메이트제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의문이다.

시도지사 후보와 교육감 후보의 러닝메이트 제도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갈등 소지를 원천 봉쇄하고 긴밀한 협력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일견 장점이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교육이 정당정치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 중립성이 최소한 요구하는 바다. 러닝메이트 제도 아래서는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에 대해 선택의 주도권을 행사한다. 만약 당적을 가진 시도지사 후보와 당적이 없는 교육감 후보가 러닝메이트가 돼 한 몸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선거운동 과정은 물론 공직수행 과정에서 교육감이 시도지사의 당파성에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내 경험에 비춰 볼 때에도, 당적이 없고 공식 러닝메이트가 아니었던 관계로 시도지사나 그 소속 정당에 대해 몹시 당당할 수 있었다.

법제화하기 나름이지만 시도지사 러닝메이트제는 사실상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와 다르지 않다. 러닝메이트 교육감은 독자직선 교육감에 비해 시도지사와 소속 정당에 휘둘릴 개연성이 훨씬 높다. 다시 말해서 러닝메이트 교육감은 지금의 독자직선 교육감보다 시도지사의 당파적인 요구에 따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타협해야 할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헌법학계의 다수의견이 러닝메이트 제도에 부정적인 이유다.

또 하나의 반대 이유로는 러닝메이트 제도의 민의 왜곡 효과를 들 수 있다. 지금의 제도 아래서는 교육감 선택기준과 시도지사 선택기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는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의 헌법적 요청과 교육에 대한 현실적 욕구를 감안할 때 바람직할 수 있다. 러닝메이트 제도는 이러한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러닝메이트 제도 아래서는 득표나 실표 원인을 시도지사와 교육감 중 어느 1인에게 돌리는 게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러닝메이트 제도 아래서는 독립직선제와 달리 교육에 대한 책임소재가 흐려진다. 직선제의 장점은 유권자가 가장 직접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인데 러닝메이트 제도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가치는 행정자치와 교육자치의 이원화와 시도지사와 교육감의 상호독립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 임명직 시절에도 인사와 조직, 재정 등 모든 면에서 교육감은 시도지사에 대해 철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했다. 양자 모두가 선출직으로 바뀌고 나서도 교육감 후보와 시도지사 후보는 선거과정에서 어떠한 공식적 연계도 허용되지 않았다. 시도지사 후보의 당적 보유에 따른 당파성의 전염 우려로 말미암아 교육감 후보와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 제도는 철저하게 경계의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현행 헌법 아래서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 교육감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육감 직선제가 지고지선이라는 뜻은 아니다. 개선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감 선거는 속성상 정책선거로 치러져야 한다. 교육감 후보들의 TV토론을 최소한 5회 이상으로 활성화 시키는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둘째, 본래 자치는 삶의 현장에서 가깝고 동질성이 강할수록 더 빛이 난다. 이렇게 볼 때 시군구 단위라면 충분히 주민직선 교육자치 대상이 될 수 있다. 교총이 과거에 주장했던 것처럼 교육감뿐 아니라 교육장도 직선하는 게 좋다. 셋째, 지금처럼 집행부(교육감)만 독립하고 입법부(시도의회)를 같이 쓰는 교육자치는 반쪽 교육자치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중립성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육경력 직선교육감뿐 아니라 교육경력 지역교육의회까지 운영되는 온전한 교육자치로 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넷째, 교육전문가로 구성된 지방 교육의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유초중등교육 전문가인 유초중등교사의 교육의원직 출마와 선거운동, 낙선 후 복귀와 당선 후 휴직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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