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첩사의 거짓말…기무사는 전‧노 사진 내렸다

‘쿠데타’ 전두환·노태우 사진 내건 방첩사령부

민들레 취재에 “기무사 역사를 잇는다는 의미”

그러나 이석구 기무사령관 때 전‧노 사진 철거

“2018년 3월 복도에서 떼 문서 수장고로 옮겨”

정치적 오욕 청산하려 애썼던 이석구 사령관

방첩사가 계승한 건 전두환‧노태우의 ‘보안사’

독재 권력의 손발 역할이 자랑스러운 전통인가

2024-10-19     고상만 인권운동가
1980년 당시 육군보안사령관 전두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기무사 초대 민간 인권위원이 밝히는 비사(祕史)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가 쿠데타 범죄자인 전두환·노태우 전임 사령관 등의 사진을 본청 복도에 내건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방첩사는 이전의 안보지원사와 달리 김재규 전 사령관만 빼고 1950년 10월 취임한 김형일 초대 특무부대장부터 역대 사령관의 사진을 모두 전시했다. 반면 기무사가 계엄령 모의 검토 및 세월호 유가족 뒷조사 의혹 등으로 2018년 해체된 뒤 출범했던 안보지원사는 남영신 1대 사령관부터 사진을 걸어 이전의 부대 역사와 완전히 단절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시민언론 민들레> 기자가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진 철거 계획을 묻자 방첩사 관계자는 “기무사의 역사를 잇는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즉 이전의 부대 역사를 부정했던 안보지원사가 아니라 기무사를 계승한다는 취지로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명백한 거짓이다. 방첩사 관계자가 알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국민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나는 지난 2018년 7월 8일, 방첩사의 전신인 기무사령부의 민간 인권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임명식 후, 이석구 당시 기무사령관과 내가 사령관실에서 나눈 대화에 전두환과 노태우 전임 사령관 사진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2018년 7월 9일 기무사령부 인권위원으로 위촉된 고상만 인권운동가

마지막 기무사령관, 이석구의 제안

그 이틀 전인 2018년 7월 6일 금요일 아침 9시경이었다. 당시 나는 국방부 <국방개혁 자문위원회> 간사 위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석구 기무사령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현안으로 제기된 기무사 개혁 이슈와 관련하여 몇 번의 소통이 있던 사이였다.

이 사령관은 내게 어려운 부탁이라며 기무사 민간 인권위원을 맡아 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 난감했다. 선뜻 답할 수 없어 전화상으로 두어 번 고사하다 거듭된 요청으로 결국 승낙하게 됐다. 그런데 임명식이 너무 촉박한데다, 임명식을 나만 단독으로 진행한다고 해서 당황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해 승낙을 철회해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모양새가 이상해서 일단은 알았다고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다급한 사정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른바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의 시작이었다. 월요일로 예정된 인권위원 임명식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주말 내내 ‘계엄령 검토 문건’ 파문으로 들끓었다. 이런데 임명식을 가는 게 맞는지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철회 역시 가벼워 보여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월요일 아침, 고민 끝에 약속대로 기무사 본부를 찾아갔다.

준비된 인권위원 위촉 행사가 끝났다. 사령관실로 자리를 옮겨 방담을 나누게 됐다. 나는 준비한 말을 작심하고 꺼냈다.

“사령관님. 주말 동안 마음고생이 있으셨겠습니다.”

이석구 사령관은 말 대신 은은한 미소로 답을 했다. 사실 문제가 된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은 이석구 사령관과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이 사령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새로 임명된 사람이고, 문제의 문건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관여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 미소를 보며 내가 또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도 이 자리에 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좋으면 받고, 아니면 버리는 가벼운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약속대로 온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때였다. 문제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그것보다는 지금 기무사를 향한 국민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지 않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인권위원이 된다고 국민이 기무사 개혁을 믿겠습니까.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지난번에 제가 기무사를 방문할 때 보니까 여기 사령관실 방 앞 복도에 전두환, 노태우 등 쿠데타 주역들 사진을 여전히 걸어두고 있던데, 이런 지경에 누가 기무사 개혁을 믿겠습니까? 그것부터 바꿔야 국민이 변화를 느끼지 않겠습니까?”

나는 기무사령관과 그의 참모 다수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을 하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석구 사령관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아, 위원님. 복도에 게시했던 전두환, 노태우 씨 사진은 이미 다 철거 했습니다.”

“그랬어요? 언제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깜짝 놀라 되묻자 이 사령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논의를 거쳐 2018년 3월경에 전임 사령관들 사진을 복도에서 철거해서 문서 수장고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런데 지난 1월에 기무사의 정치 중립 선언 의미로 저희가 깨끗한 물에 손을 씻는 세심(洗心) 의식 행사했던 거 기억하시죠? 그때 우리 의도와 달리 언론에서 기무사가 쇼한다는 기사가 나와 당황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또 보여주기식 쇼한다며 비난할까봐 일부러 공개는 하지 않은 겁니다.”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2018년 7월 9일 기무사령부 인권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고 있다

고상만 인권운동가가 2018년 7월 9일 기무사령부 인권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받은 감사패

이석구 사령관과 한 약속

그렇게 인권위원 위촉식에서 대화를 나누고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2018년 8월 3일이었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를 안보지원사로 바꾼다고 전격적인 발표를 했다. 정치적 오욕의 이름으로 남은 기무사를 정화하고자 노력했던 이석구 사령관이 결국 ‘마지막 기무사령관’으로 기록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석구 사령관에게 했던 약속을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바로 그 대화를 나눴던 날에 내가 했던 약속이다.

“사령관님. 제가 오늘 약속 하나 하겠습니다. 쇼가 아니라 진심으로 기무사를 바르게 개혁하고자 노력한 사령관이 한 명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무사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사진을 철거한 사령관이 2018년에 있었다는 사실을 제가 세상에 꼭 알리겠습니다.”

이런 사실을 내가 알고 있는데 지금 방첩사 관계자가 “기무사의 역사를 잇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를 어찌 수긍할 수 있단 말인가. 이석구 사령관 시절 기무사는 전두환, 노태우의 사진을 철거했다. 따라서 방첩사는 기무사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보안사령부’를 계승한 것이라고 해야 옳다.

그 보안사령부는 쿠데타 범죄자인 전두환, 노태우가 20대와 21대 사령관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녹화사업’이라는 작전명으로 무고한 대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등 악명 높은 독재 권력의 손과 발 역할을 했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전통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진실도 바뀔 수는 없다. 악이 선이 될 수는 없다. 전두환, 노태우는 국가 반란의 수괴로서 한 명은 사형 선고를, 또 한 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극악 범죄자다. 그러한 자들이 군에서 영웅시되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진짜 군인은 영웅이 되지 못하고 그런 범죄자들이 예우를 받아야 하나. 부끄럽지 않나. 방첩사는 그런 거 하자고 만든 조직인가.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고 전두환, 노태우 사진을 당장 철거하라.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2021.11.23.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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