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마음을 연결하라
10.29 이태원참사가 있은 지 58일, 그동안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제3자인 내가 이럴진대 부모의 마음은 오죽하랴 싶어 차라리 우울 속에 있는 게 나을 성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두 생존자의 증언을 들으며 큰 위안을 받았다. 한 사람은 이태원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아 핼로윈 때마다 방문했었다는 생존자 김초롱 씨이고 또 한 사람은 유가족이자 생존자, 그리고 목격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故 박지혜 씨의 동생 박진성 씨였다. 간발의 차이로 살아난 이들에게 위로를 받는 아이러니, 나는 두 사람의 증언을 읽고 들으며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프리모 레비가 생각났다.
젊은 시절 반파시즘 운동을 하다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가까스로 생환한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을 때 기쁨 대신 죄책감과 치욕감으로 점철된 감정을 맞닥뜨렸다고 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곧 자기혐오였던 것이다. 진정으로 선한 이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그는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등 살아남은 자로서의 의무인 증언과 기록에 최선을 다했지만 평생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결국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쓴 몇 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말하는 ‘가라앉은 자’는 돌아오지 못한 진짜 증인들이고 ‘구조된 자’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동시에 폭력적인 체제의 작동을 막지 못하거나 협력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이를 10.29 이태원참사에 적용해 본다면, 진짜 증언을 할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고 그 자신 구조된 사람임에도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도 전에 정부에 의해 매도되어 ‘가라앉은 이’들 대신 나서서 증언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처한 생존자들과 목격자들이다. 세월호참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리모 레비가 말한 선하지 않은 구조된 사람들, 즉 선장처럼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할 살아남은 자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사회적 참사가 일어났을 때 슬픔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 현장과 당사자들, 책임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언론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외신을 통해 참사 이후 상황을 접하며 시민들은 울분을 터뜨렸지만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대형 언론이 외면하는 사이 조용히 고군분투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언론들도 분명 존재했다. 포털 노출빈도는 낮지만 뉴스타파와 CBS라디오,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꾸준하게 기억을 기록화하는 작업은, 애도와 치유는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CBS라디오는 참사초기인 11월 9일 생존자인 김초롱 씨를 인터뷰하고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민영 센터장, 뮤지션, 김초롱 씨 등이 패널로 참여한 청년마음건강 토크 콘서트 ‘마음을 연결하라’를 기획하여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공론화했다. 뉴스타파는 자식을 잃은 아버지들과 동생 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인이 생전 어떤 꿈을 꾸었는지 유가족으로서 심경은 어떤지 담담하게 말하게 했다. 특히 이태원참사 유가족이자 생존자이고 목격자인 故 박지혜 씨의 동생 박진성 씨의 독백은 마치 참사 현장과 그곳에 있었던 이들의 마음과 눈빛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얼마나 누나와 가족을 사랑했는지, 인간의 고유함이 얼마나 존엄하고 고결한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 고위험 환자로 판정받은 생존자인 김초롱 씨는 참사 초기부터 자신의 상담기록과 일지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연재하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보라고 쓰는 글이라 밝힌 바 있다. 그녀의 기록은 ‘이태원참사 생존자의 기록’이라는 타이틀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에 소개되고 있다. 나는 그녀의 글에서 자신의 고통을 드러냄으로써 문 뒤에 숨어있는 또다른 생존자들과 만나고자 하는 의지를 본다. 158명 희생자를 존재 그 자체인 이름을 부르며 살아생전 모습과 그들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사람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며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그녀의 말은 얼마나 힘이 센가.
감정은 복합적인 것이어서 그냥 두면 휘발되거나 축소 왜곡되어 나중에는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감정인지 분별하기 어려워지기 쉽다. 참사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응시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녀는 그날의 무력감, 좌절감, 죄책감 같은 추상적인 감정을 핀셋으로 끄집어내 언어화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나아가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타자란 사회가 세심하게 돌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과 생존자, 목격자들, 그리고 그 범주 밖에 있는 나 같은 시민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일지는 사회적 참사 초기 슬픔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던 시점부터 한 달여 시간이 지나며 괜찮은 척하지만 실은 괜찮지 않은 나날을 보낸다는 고백은, 트라우마는 결코 혼자 힘으로 감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과 자신을 돌보는 것과 타인을 돌보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기타노 다케시의 말을 빌어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며 죽음을 셀 줄 아는 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고 했다. 김초롱 씨도 “158명이 참사로 한꺼번에 하늘로 간 것이 아니라 1명이 참사로 하늘로 간 사건이 158번 일어난 것이고 그래서 158명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잘 가라고 인사하고 껴안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감정에 말 걸기를 해온 그녀가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주변인들에게 익명성 뒤에 숨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자고 독려하는 것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들 모두를 향한 진정한 연대와 사랑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금만 더 다정해지면 안 될까요” 라던 김초롱 씨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그녀와 박진성 씨, 그리고 살아남은 아버지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았다. 유가족·희생자·생존자와 목격자, 이태원 상인들, 그리고 사과하는 법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지 못한 무례한 국가와 비인간적인 정치인들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참사의 트라우마 피해자다. 전문가들은 참사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은 고립을 해소할 수 있는 연결이라고 강조한다.
유가족과 이태원 지역 상인과 주민, 시민들은 이태원을 애도과 기억,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며 서로의 슬픔을 함께 돌보는 걸음을 내딛었다. 젊음의 거리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그날도,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이태원에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정부상태, 아니 권력자들이 앞장서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오직 시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품위를 찾기 시작했다. 우리끼리라도 연결되고 지지하고 다정하게 손잡아주는 것이야말로 가라앉은 자들의 존엄과 구조된 자들의 안전과 품위를 지키는 길이며, 이것이야말로 프리모 레비에게 ‘이것이 인간이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