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
부자 감세, 언론 현실도 내 손주 챙기듯 관심 두어야
낼모레가 추석인데 폭염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그래도 추석은 추석. 명절 기분에 오늘 편지는 가족 얘기로 시작합니다.
제가 할아버지가 된 지 2년이 되어 갑니다. 민들레에는 환갑 넘은 ‘늙은’ 기자가 여럿 있습니다만, 손주를 본 이는 70대 강기석 고문과 저, 둘뿐입니다. 만연한 만혼과 저출산 풍조가 <민들레>라고 피해 갈 리 없죠. 마음 같아서는 손녀 자랑부터 한없이 하고 싶지만, 안팎으로 쏟아질 부러움의 시선을 생각해 참겠습니다.
대신 손녀를 본 덕분에 얻은 깨달음 하나를 고백할까 합니다. 저는 평소 어르신들이 ‘꼬맹이’들을 보면 왜 요모조모 살펴보고 급기야는 “몇 살(개월)이냐”고 묻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이해를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주책’이라 흉보는 마음이었습니다. 질문을 받은 아이의 엄마 아빠는 대부분 낯선 늙은이의 관심에 웃으며 반응을 하지만, 잔뜩 경계심을 보이며 걸음을 재촉하거나 쌀쌀맞게 외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호기심 가득한 나이도 아니고, 자칫 면구스러울 수 있는데 왜 그런 걸 물을까? 그저 어린아이를 보면 사랑스러워서 하는 질문만은 아니라는 걸 제 손녀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면 강보에 싸인 첫 만남부터 눈을 맞추고, 뒤집고, 앉고, 기고, 걷고 하는 경이로운 ‘진화’를 보게 되지요.
제 아들딸을 키울 때도 같은 과정을 거쳤을 텐데, 손녀가 크는 것을 보면서 생전 처음 겪는 것처럼 신비롭기만 합니다. 아마도 육아와 가사의 대부분을 아내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돈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된 아내는 익숙한 솜씨로 손녀를 먹이고, 씻기고, 눈을 맞추고, 놀아주지만 저는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즐겁습니다. 아들 내외가 손녀를 처음 데리고 온 날 손이 떨려서 안지도 못했습니다. 젊어서 가족 부양의 버거운 부담에 육아의 맛을 몰랐다고 변명해 보지만, 아이들에 관한 한 내가 모르는 많은 수고가 참 많이 쌓여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휴대폰 배경화면에 손녀 사진을 올려놓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여다 봅니다. 어느 모임에나 기회만 있으면 손녀 얘기를 꺼내다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즐겁기만 합니다. 이 모두 제가 선배들을 흉보던 일들입니다. 제가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는 정말 미처 몰랐습니다.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지... 내 손주보다 위인가? 어린가? 조금 큰 아이를 보면 내 손주는 얼마나 지나면 저렇게 될까... 궁금한 게 천 가지 만 가지입니다. 그러니 주책이라는 핀잔 들을 각오를 하고라도 물어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듯 세상만사가 직접 겪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일로 온 세상이 시끌벅적해도 나와 직접 관계없으면 그냥 흘려 듣고 보거나 아예 오불관언 모른 척 하기 일쑤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종합부동산세나 상속세 인하 등 이른바 ‘부자감세’에 대한 극단적인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런 탓이 아닐까요?
집이 한 채 있다면 공시가격 12억 원(시가로는 17억 원 이상)이 넘어야 종부세 과세 대상입니다. 또 나대지 등 종합합산토지는 5억 원, 상가와 사무실 등 별도합산토지는 80억 원을 초과해야 종부세 과세 대상입니다. 상속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상속세를 낼 만큼 물려 줄 재산이 있기나 하면 좋겠다”는 푸념은 대부분 서민들이 공유하는 감정일 것입니다. 푸념은 푸념일 뿐. 정부와 ‘가진 자’들이 말도 안되는 짓꺼리를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는 것이지요.
언론 문제는 어떤가요? 시민독자 여러분에게 직접 닥친 문제라고 느끼시나요? 언론 장악이다, 가짜 뉴스다, 기레기가 어떻고 정권의 애완견이 어떻고…온통 세상이 시끄럽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나요? 신문은 안 본 지 오래고, 방송도 뉴스가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린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정치 뉴스가 나오면 무슨 흉물을 만나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리기 십상입니다.
언론이 이처럼 외면당하는 것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시민독자 여러분이 보시기에도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니 기대를 접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을 최고의 지향으로 삼기는커녕 왜곡을 일삼고 국민들을 갈라치는 데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권력의 ‘달리는 개’를 오래 하다보니 언론 스스로 권력이 된 것처럼도 보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민들레>의 일원이 되기 전에는 우리나라 언론이 이런 지경이 된 줄은 몰랐습니다. 한겨레신문 등에서 15년여 동안 기자를 하다 한계를 느끼고 ‘탈출’했지만, 이후에도 금융공기업과 로펌 등에서 일하면서 언론을 가까이 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퇴할 무렵, 마지막은 그래도 조금 익숙한 분야로 돌아가 마무리할까 궁리하던 차에 선배의 소개로 창간 준비를 하고 있던 <민들레>에 합류했습니다. 경제 에디터를 맡아 기자질 세계로 돌아와 보니 제가 젊은 시절 일했던 언론계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훌륭했는데 지금은 엉망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훨씬 더 나락으로 떨어져 회복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민들레입니다. 거기 합류한 이상 언론 현실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손주 관찰하듯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비로소 옥석이 가려지지 않겠습니까?. 민들레도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늦깎이 제가 포함돼 있으니 어쩔 수 없죠. 따끔하게 질책해 주십시오. 격려와 성원도 부탁드립니다.
명절 전야 가벼운 얘기 하려고 했는데 무거운 얘기가 되었네요. 긴 연휴, 명절답게 즐겁고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