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못 뚫는 유리천장…대기업들 여성이사 임용 시늉뿐

핵심인 '사내이사' 대신 힘없는 '사외이사'

'이사회 여성 1명 이상 포함' 법 규정 비껴가

여성 임원 비율 올해 처음으로 7% 넘어

'다양성 지수' 상승, 알고보면 '빛 좋은 개살구'

2024-09-10     장박원 에디터

지난 2020년 1월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기업이 이사회를 구성할 때 최소 여성 1명 이상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그 이후 대기업들의 다양성지수는 상승했다. 그러나 여성 직원 비중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여성 사내이사가 한 명도 없다. 법 시행에 맞춰 여성 임원을 늘리기는 했으나 시늉에 그친 셈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서울우먼업 페어 2024에서 구직자들이 현직 면접관의 3040 여성 채용 트렌드와 면접성공 전략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2024.8.29. 연합뉴스

기업분석연구소인 리더스인덱스는 위민인이노베이션(WIN)과 함께 조사한 ‘국내 기업 다양성지수’ 보고서를 10일 공개했다. 국내 500대 기업의 다양성지수가 자본시장법 개정 이전보다 상승했으나 여성 직원 수나 남녀 간 연봉 격차, 근속연수 변화는 크지 않다는 게 요지다. 여성 임원 비율만 올해 처음으로 7%를 넘어서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리더스인덱스는 “자본시장법 개정이 여성 고용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상층부 변화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양성지수는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353개 사를 대상으로 남녀 고용 비율과 근속연수 차이, 연봉 차이, 남녀 임원 비중, 등기임원 내 남녀비중, 고위 임원 남녀비중 등 6개 항목을 평가해 산출한다. 올해 이들 기업의 양성평등 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54.7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51.7점)에 비해 3.0점 높아졌다.

조사 항목 가운데 눈에 띄게 바뀐 부분은 여성 임원 비중이다. 500대 기업 여성 임원 비중은 2019년 3.9%에 불과했으나 2024년 7.3%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 이듬해인 2021년 5.5%, 2022년 6.3%, 2023년 7.0%로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기업 다양성지수 변화.

여성 등기임원은 2019년 2.9%에서 올해는 11.3%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주목할 점은 증가한 등기임원 대부분이 사외이사라는 사실이다. 여성 사내이사 증가세는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2020년 5.5%였던 여성 사외이사 비중은 올해 16.4%로 10.9%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비해 여성 사내이사 비중은 2020년 2.0%에서 올해 3.8%로 1.8%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리더스인덱스는 “대기업들의 생색내기식 이사회 구성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와 기아차 등 각 사의 ‘202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여성 중간관리자 비율은 증가했으나 사내이사 중 여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죽하면 이들 기업에서는 “앞으로 50년은 지나야 여성 사내이사가 나올 것”이라는 푸념까지 나오겠나. 사내이사는 대체로 상근 경영진이다. 회사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외이사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성지수 평가항목 중 가장 개선이 안 된 분야는 기업 내 여성 직원 비중이다. 조사 대상 대기업의 여성 직원 수는 2019년 34만 651명으로 전체 직원(130만 571명)의 26.2%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대기업 여성 직원 비중은 2020년 26.4%에서 2021년 25.1%, 2022년 25.5%로 오히려 줄었다. 여성 직원이 많은 유통과 생활용품 업종에서 인력을 줄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여성 직원 비중은 26.2%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자본시장법 개정안 이전과 이후가 바뀐 게 없는 셈이다.

 

 자료 : 리더스인덱스. 500대 기업 남녀 임원 현황

다만 남녀 근속연수 차이와 남녀 연봉 격차는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다. 남성 직원 평균 근속연수가 2018년 11.3년에서 2023년 11.6년으로 2.3% 길어진 것에 비해 여성 직원은 8.1년에서 8.7년으로 7.4% 늘었다. 이에 따라 남녀 격차가 다소 줄었다. 근속연수 차이가 감소하며 평균연봉도 같은 기간 남성 직원이 19.4% 늘었고 여성 직원은 27.1% 상승해 남녀 격차가 줄었다. 그러나 여성 근속연수는 남성 대비 75%, 여성 평균연봉은 남성의 68.7% 수준에 머물렀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여전한 셈이다.

다양성지수 업종별 우수기업으로는 신세계인터내셔널, 신한지주, 영원무역, 유진기업, 크래프톤, 풍산,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 한미약품, 산세실업, 현대케피코 등 10개 사가 선정됐다. 업종별로는 제약, 금융, 생활, ICT서비스 순으로 다양성 점수가 높았고 건설, 공기업, 기계 등은 점수가 낮았다. 서지희 위민인이노베이션 회장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의 여성 임원 증가는 분명히 나타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여성 임원 후보자를 양성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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