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과 남한핵, 그리고 동북아 핵확산 가능성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굴종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힘에 의한 평화, 선제타격 불사를 외쳐왔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핵무력의 고도화·다종화를 추구하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만이 아니라 남한과 일본을 공격할 수 있는 전술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핵선제공격마저 법제화하고 있다. 최근 일본도 안보 관련 3대 문서를 개정하면서 선제공격의 의미를 담는 ‘반격능력’을 명문화했다. 물론 선제타격 논란의 원조는 1994년 이후 ‘외과수술형 정밀폭격(surgical strike)’을 거론했던 미국이다. 바야흐로 지금 한반도는 언제든지 누군가에 의해서 선제타격이 가능한 ‘논리적 가상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 정부는 여전히 외교적 협상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협상의 길은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협상을 위한 태도 변화나 양보안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사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협상이란 서로 간에 ‘주고 받기’가 가능해야 성립한다. 북한과 미국은 모두 협상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서로의 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30여 년 간의 북핵협상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지금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미국은 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북한과 한반도의 핵문제는 최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래싸움 새우등 터질 한반도 핵전쟁 위협
이런 상태에서 미중관계 악화가 변수로 개입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우크라이나전쟁의 향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중, 미러 관계라는 세계적 규모의 강대국 정치가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약화와 패퇴를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렇지만 약화되던 미국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미국을 좋아하지 않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싶어하는 나의 눈에는 미국보다 중국과 러시아의 약점이 더 많이 보인다. 물론 일방적으로 미국이 승리하거나 중국이 미국을 무너뜨리는 식의 상황 전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국지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미중, 미러 간의 타협과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다. 문제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처지이다.
2017년 미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의 핵탄두 수를 대략 65개 내외로 추정하였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정책이 추진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랜드연구소의 공동 예측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핵탄두 67~116개, 2027년쯤 151~242개를 만들 핵물질을 확보할 것이라고 한다. 머지않아 북한이 이스라엘이나 인도, 파키스탄보다 많은 핵탄두 보유국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투발 수단은 사거리 1만 5000km인 화성17호가 성공하면서 사실상 미국 전역에 이르게 되었고, 발사 위치 추적이 쉽지 않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개발단계를 넘어 배치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전략핵무기만이 아니라 남한과 일본을 겨냥한 전술핵무기개발도 본격화하고 있다. 승패를 떠나 북한과 한미일 간의 핵전쟁 시나리오가 이미 현실적으로 작성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남한은 이러한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전략에 대응해 기존의 확장억제정책을 보완하는 맞춤형 확장억제체제를 구축하고, 남한 독자(?)적으로는 57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선제공격과 응징보복을 내용으로 하는 3축 체계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맞춤형 확장억제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고, 남한의 3축 체계는 재래식 타격이 갖는 현실적 한계로 인해 비용 대비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물론 둘 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맞춤형 확장억제체제 한계 속 힘 얻는 핵 무장론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 다수와 보수적 전문가들은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고, 일본, 대만과 한국이 함께 나토식 핵공유협정을 맺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또 최근 들어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을 강조하는 주장도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다. 일부 보수 정치인과 언론만이 아니라 과거 포용적 대북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이 핵협상카드로서 유용성이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남한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제재와 고립의 정도, 경제적 파급력 등을 감안해 미국과의 합의하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선제타격을 법제화한 것으로 알려진 2022년 9월 8일 이후 10월, 11월까지 주요 언론의 칼럼에서는 핵무장을 둘러싼 논란이 빈번하게 실리고 있고, 외교안보 관련 단체 토론회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론을 둘러싼 논쟁이 단골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2022년 3월 아산정책연구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한의 핵무장에 찬성하는 여론도 70.2%에 육박한다. 진보층만 따로 물어보았을 때도 58.4%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남한의 핵무장에 대해 거대 양당의 후보들이 모두 찬성하는 상황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지지율이 바닥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 관련 대북 사건 수사만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에 대한 공격적 대응을 통해 정국을 주도하고, 지지율의 반전을 이끌어 내려 한다. 만약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이루어질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속에 북한에 대한 적대감정을 고취시키면서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에 대한 검토가 포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한반도 비핵화원칙의 유효성, 확장억제정책의 충분성을 거론하며,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민의 우려를 이해한다면서, 이런 여론을 미국의 동북아전략을 관철시키는 방향에서 활용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문제, 대만 문제에 대한 한국의 관심 제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 태세이고, 극한정쟁에 휘말려 있는 남한의 정치권은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한반도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2015년 발표된 미국의 퍼거슨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월성원전에 사용 후 핵연료 2만 6000kg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6kg으로 핵무기 1개를 만든다고 가정할 경우 4333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 뒤로 8년이 지났으니 보관된 핵물질의 양은 훨씬 더 많을 것이고, 핵무기로 제조할 수 있는 수치도 엄청나게 늘었을 것이다. 또 기술적으로 볼 때 남한은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수백 개의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고, 핵무기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5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이 동의해준다면 짧게는 2년에서 5년 사이에 남한은 현재의 북한을 능가하는 핵무기 보유국가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남한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과 연동된다. 아마 그렇게 본다면 남한보다 사용 후 핵연료의 양도 많을 뿐더러 재처리시설까지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핵무장 능력은 남북한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미국이 동의해줄 것이냐 아니냐는 식의 접근은 큰 의미가 없다. 남한을 포함한 동북아의 핵확산(핵도미노)은 미국의 여러 구상 중 하나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중에 달려 있는 동북아 핵확산 여부
사실 대만의 핵무장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나 1988년 미국에 의해 좌절되었다. 최근 중국의 무력통일 시도와 더불어 다시 여론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이 용인하는 동북아 핵확산(핵도미노)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곧 핵강대국들의 기득권 질서를 상징하고 있는 NPT 체제가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의해서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미중 간 패권경쟁이 사실상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지전의 가능성을 내장한 신냉전단계 논란이 본격화될 것이다. 2016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로 이런 생각은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라 비극적 미래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심각한 사건과 문제는 기존 규범이 무너지고 새로운 규범이 정착되기 전에 발생해왔다. 지금 한반도와 동북아에는 기존의 핵규범들은 무너져 가고 있는데, 새로운 규범은 확립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의 충돌 시나리오가 현실적 가능성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상황 악화를 방지하면서 역내 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반전의 카드를 제시하지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와 치킨게임이 뒤섞인 예측만이 난마처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미국 내의 현실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것인가?
물론 아직 미래는 오지 않았다. 다른 미래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미 간의 핵갈등 상황을 관리하면서, 상황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현재의 위기는 새로운 질서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이 동북아질서, 나아가 세계질서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성에 불과할 뿐이다.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미국과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 전략이 아니라 남북미 간 무너진 협상 테이블을 복원시키는 일일 것이다. 과연 그것을 지금 누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 남한 정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그런 일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민주당과 야당은 그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바꾸어낼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협상 테이블 복원에 손 놓은 윤석열 정부
미국과 남한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핵보유를 인정한 상태에서의 핵군축을 원한다. 남한은 핵군축회담을 반대한다. 만약 미국이 북한식 핵군축회담을 받아들인다면 남한의 핵무장론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과연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북한의 말 속에 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말하면서 핵군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핵군축회담이 아니라 비핵화협상을 재개하면서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의 접근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결국 전술핵 재배치나 남한의 핵무장으로 넘어갈 때까지 협상은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요한 것은 상황 악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갈등을 관리하면서, 갈등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물꼬를 트는 역할을 남한이 담당하지 않으면 누가 담당하겠는가? 그 속에서 중국과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도 있고, 미중 간 갈등이 조정, 타협되는 환경을 대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는 남한과 일본, 미국에 대한 위협이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핵의 고도화에 맞춰, 남한의 핵대응태세 강화, 일본의 군사강국화 전략에 동조할 셈인가? 그래서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충돌 가능성이 현실화되었을 때에야 협상의 길을 찾아 나서려는가?
지금 남한의 윤석열 정부는 미국 편승을 선언하고, 대북, 대중 대결을 선언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시켜 버리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전쟁이고 충돌이다. 한미동맹은 바로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버팀목이다. 그러나 미래는 최악의 상황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황 반전의 열쇠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과는 다른 남한의 지정학적 역할이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일본과는 다른 역할, 다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이나 일본의 선택지를 넓혀주는데도 기여한다. 윤석열 정부를 통해서는 그런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포기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우리의 미래를 찾을 수 있겠는가? 무식하면 공부시켜야 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공론장의 역할이고, 그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운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과 정략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치 현실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