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아름다운 자연 생태 그리고 지뢰
12박13일 간의 「2024 통일걷기」를 끝내고서
지난 8월 8일, 「2024 통일걷기」의 최종 종착지 파주 임진각에 도착했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출발한 지 12박 13일 만의 일이다. 통일걷기 와중에서 마주한 빼어난 자연 풍광과 희귀 동식물들만큼이나 선명하게 남는 기억은 지뢰였다. 길게 드리운 철책 사이로 핀 예쁜 들꽃, 그 옆에 매달린 앙증맞은 경고표지. 지뢰였다, 보이지 않는 공포. 분단현실의 상징이었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금강산 해금강.
호시절에는 가까이 손닿을 듯했던 그곳은 이제는 멀리서 애타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2024년 7월 27일 강원도 고성군의 통일전망대, 이곳에서 정전협정 체결 71주년이 되는 이날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2024 통일걷기」 행사가 시작되었다. 해금강을 등진 채 해안 철책선을 따라 검문소를 나와 털레털레 걷는 길, 가랑비는 그쳤고, 8월의 땡볕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백두대간로를 따라 하천 군데군데 설치된 대전차 방호벽 ‘용치’를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소똥령을 넘어 진부령을 넘어 인제군으로 들어섰고, 먼맷재를 넘어 양구군 DMZ펀치볼로, 돌산령을 넘어 금강산 지류의 물줄기도 흐른다는 두타연 계곡을 따라 걸었다.
때론 아스팔트길을, 때론 콘크리트 포장이거나 자갈길, 더러는 잡초 무성한 수풀 길을 걸었다, 3킬로미터에 달하는 돌산령터널 어둠 속을 걸어 맞닥뜨린 평화의 댐, 새벽 물안개 자욱한 안동철교를 건너고 천 미터 높이의 수리봉을 오르내려 철원에 도착했다. 때론 소낙비 속, 때론 안개비 속, 간간이 작열하는 8월의 태양을 피해가며 걸었다. 어느 새 첩첩산중은 푸르디 푸른 들판으로 바뀌었고, 걷기는 한결 수월해졌다. “한북정맥을 기준으로 동쪽은 노루, 사슴, 산양과 같은 포유류가, 서쪽에는 두루미로 대표되는 조류가 많이 서식한다”는 생태 전문가의 해설에 고개 끄떡이며 양구철원의 경계를 넘어 임진강 수계 따라 연천 옥녀봉의 일출을 감상했고, 파주 굽이치는 임진강을 따라 마침내 임진각 [평화의 종]에 다달았다. 총 연장 330킬로미터의 거리였다.
발바닥의 물집은 예사였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뒤바뀌는 폭우와 폭염 속 길을 걸다보니 땀띠에 습진 증상도 허다했다. 너무 지친 나머지 길섶의 꽃과 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떨 땐 왜 걷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멍한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이라는 거대 담론은 차치하고, ‘DMZ 둘레길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사전답사’라는 당장의 목적조차 잊은 채, 그저 예정된 숙소에 조금이라도 일찍 다다르기만을 바랬다.
기대했던 향로봉을 올라보지 못하고, 기상 악화로 인해 대한민국 람사르협약 습지 1호인 인제 대암산 용늪을 비껴가야만 했고, 집중호우의 피해로 도로와 철책이 유실되어 철원 용양보 습지와 파주의 임진강 철책길 또한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도착한 임진각. 현대적 시설들이 들어선 까닭에 망향비가 되레 왜소해 보이는 이곳의 방문자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의외였다. 남과 북은 대북전단에 오물풍선입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네 뭐네 하는 와중에 외국인들은 대한민국을 ‘분단국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는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외국인의 눈에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이면에 ‘안보관광’의 이름을 내 건 분단현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부끄럽게도.
「통일걷기」 길은 지난 해 정부가 공개한 ‘DMZ 평화의 길’과 일부 구간은 함께하고, 일부 구간은 보다 더 비무장지대에 근접해서 기획된 노선이다. 민간인통제구역은 물론이고, 때론 군부대까지 드나들며 걷기에 군부대 협조가 필수적. 그런 까닭에 참가자들을 제외하면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어찌 보면 삭막한 길이다. 길 여기저기의 현수막 또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이 지역은 산림유전자원보로구역 및 민간인통제선(통제보호구역)으로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는 입산하지 못합니다…’ (산림청 ○○국유림관리소·제○○보병사단)
‘이 지역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으로써, 무단출입과 채집·영농활동을 금지합니다. 위반시…’ (제○○○○부대장·○○군)
‘이 지역은 유실 지뢰 및 폭발물에 의한 피해가 우려되어 접근을 금지합니다. 미상 폭발물 발견시 만지지 마시고, 가까운 군부대 또는 ○○군청으로 신고바랍니다. 신고전화…’
‘경고문 - 현 지점의 좌,우측 철조망 설치 지역은 미확인 지뢰지대로 통제보호구역입니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 제9조에 의거 출입을 금지합니다.’ (제○○보병사단장·○○군수)
‘경고문(민간인 출입 통제구역)-이 지역은 미확인 지뢰/불발탄이 산재되어 위험하니 무단출입, 불법 영농 및 채집 등 불법행위를 절대 금지합니다.’ (제○○○○부대장·○○군)
길이 가팔라질수록, 더 으슥해질수록 안내표지는 더욱 간단했다. 단 두 글자, ‘지.뢰’.
어쩌면 이 표지는 이 길의 상징과도 같았다, 누가 말했던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트레일’이라고.
그렇게 고성-인제-양구-화천의 산과 계곡을 넘고 건널 때, 철원과 연천, 파주의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 맞닿은 너른 들판을 걸을 때에도, 간간이 들리는 대북 확성기 방송 소리를 뒤로한 채 연초록으로 여물어가는 나락들을 곁눈질 할 때에도, ‘지뢰’ 표지판은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그 실체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걸어야 했다.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통일걷기」 도중 일상처럼 맞닥뜨려야 했던, 아니, 정전협정 체결 이래 70여 년을 한결같이 마주해 왔고, 남과 북의 대립과 반목이 당연시되는 앞으로도 계속 목도해야 할, 가장 잔인한 무기이자 한반도 분단의 상징, 지뢰.
땅 속에 숨겨놓아 누군가 밟으면 터지게끔 만들어 놓은 무기. 육지전에서 적의 진공을 저지하는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히기에, 한국전쟁 기간 동안 피아 구분없이 이땅 곳곳에 지뢰를 매설했다. 공방이 치열할수록 지뢰는 더 많이 매설되었는데,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과 함께 전세가 기울자 미군은 헬기를 동원, 공중에서 살포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남측은 북의 공습에 대비하기 위해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지뢰를 계속 매설했다.
덕분에 비무장지대 전역은 지뢰밭이 되었다. 비단 비무장지대뿐만 아니다. 인근 지역, 정확히 어디까지가 지뢰지역인지 명확히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리고 널리 지뢰가 묻히게 되었다. 휴전선 이남에만 100만 발 이상 묻혀 있다고 하나, 이 또한 추정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진짜 지뢰가 묻힌 지역이든, 묻혔는지 묻히지 않았는지 아직 모르는 ‘미확인 지뢰지역’이든, 이런 경고 표지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마주치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는 방어 측면에서는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지뢰이지만, 용도 폐기를 하려면 너무나도 비효율·고비용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비무장지대 일원에서는 용도 폐기는커녕, 그저 더 가져다 묻지만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목과 대립은 우리 마음 속에 손쉽게 뿌려진다,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마치 헬기에서 내다뿌린 지뢰처럼! 그러나 제거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어쩌면 공포일 수도 있다, 「정전협정」 체제와 「국가보안법」의 굴레 속에서 섣불리 접근했다가 어떤 피해를 겪을지 몰라 꺼려지는 미확인 지뢰 지대처럼.
진정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연 평화는 오는 것일까, 아니, 오기는 하는 것일까. 내 마음속 어딘가 도사리고 있을 갖은 회의와 번뇌, 미확인 지뢰와도 같은 무형의 공포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걷지 않았을까.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2024 통일걷기」 행사를 주관하며 함께 걸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은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꿰뚫는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먼저 남쪽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보자는 취지로 비무장지대에 제일 근접한 걷기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져서 비무장지대 수색로가 걷기 구간이 되고, 최전방 감시초소가 숙소가 되는 그날까지 「통일걷기」를 계속 할 계획입니다.”
지뢰는 한 번에 제거되지 않는다. 독버섯과 같아서 뽑아내도 금세 다시 자라기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12박 13일의 걷기 끝에 얻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