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경상수지 흑자가 반갑지만 않은 이유

6월 122.6억 달러 흑자…역대 3번째 큰 규모

상품수지 선전했지만 16개월째 수입감소 한몫

원자재·자본재·소비재 수입액 전방위적 감소세

반도체 말고는 전 부문에 경기침체 징후 뚜렷

2024-08-07     유상규 에디터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내수 부진으로 수입은 감소하면서 경상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확대됐다. 정부 당국은 역대급 경상수지 흑자가 났다고 환호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의 생산 정체와 투자 감소 등 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122억 6000만 달러(약 16조 8900억 원) 흑자로 집계됐다. 2016년 6월(124억 1000만 달러)과 2017년 9월(123억 4000만 달러) 이후 역대 세 번째 많은 흑자이며 6년 9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24년 6월 국제수지(잠정)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호 국제수지팀 과장, 송재창 금융통계부장, 문혜정 국제수지팀장, 이영우 국제수지팀 과장. 2024.8.7 [한국은행 제공] 연합뉴스

올해 상반기(1~6월) 누적 경상수지는 377억 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1억 5000만 달러)와 비교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는 한은이 지난 5월 내놓은 전망치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은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상반기 279억 달러, 하반기 321억 달러 등 연간 600억 달러로 전망했다.

이같은 경상수지 흑자는 상품수지 흑자가 견인했으며, 상품수지 흑자는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반면 내수 회복 지연으로 수입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인공지능(AI) 관련 전방산업 수요 확대, 메모리 가격 상승 등으로 반도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수출 호조세가 지속됐다"며 "반면 내수 회복 지연에 반도체 제조용 장비, 승용차 등을 중심으로 상품 수입 감소 폭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6월 경상수지를 항목별로 보면, 상품수지가 114억 7000만 달러로 지난해 4월 이후 15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폭도 2020년 9월(120억 2000만 달러) 이후 가장 컸다.

 

경상수지 추이 및 항목별 수지

월별 경상수지. 자료 : 한국은행

수출은 588억 2000만 달러로 지난해 6월(541억 3000만 달러)보다 8.7% 늘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1년 2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로 반등한 뒤 9개월째 증가세가 이어졌다.

품목 중에는 반도체(50.4%), 정보통신기기(26.0%), 석유제품(8.5%), 승용차(0.5%) 등이 증가했고, 지역별로는 동남아(27.9%), 미국(14.8%), 중국(1.8%) 등으로의 수출이 호조를 보였다. 6월 반도체 수출액은 136억 20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이다. 반면 기계류·정밀기기(-1.4%), 화공품(-7.5%), 철강 제품(-18.0%) 등은 감소했고, 일본(-6.8%), EU(-18.3%) 등에 대한 수출이 부진했다.

수입은 수출과는 대조적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가 지속됐다. 6월 수입액은 473억 5000만 달러로, 지난해 6월(502억 2000만 달러)보다 5.7% 줄었다. 전년 동기 대비 수입액 감소는 지난해 3월 이후 16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품목별 수입액 현황. 자료 : 한국은행

철강재(-18.9%), 화공품(-20.6%), 석탄(-25.9%) 등을 중심으로 원자재 수입이 6.6% 줄었고, 반도체(-4.9%), 반도체 제조 장비(-24.1%) 등 자본재 수입도 4.6% 감소했다. 곡물(-20.3%), 승용차(-44.1%) 등을 비롯한 소비재 수입 역시 15.6% 축소됐다. 서비스수지도 16억 2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 규모가 1년 전(-26억 4000만 달러)보다 줄었지만, 전월(-12억 9000만 달러)보다는 커졌다. 서비스수지 중에서는 특히 여행수지가 9억 달러 적자로 두드러졌다. 서비스수지 내 지적재산권수지는 한 달 사이 1억 달러 흑자에서 4억 6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이처럼 6월 수입액 감소는 거의 모든 품목에서 나타났다. 원자재와 자본재, 소비재 수입이 모두 줄었다. 세부 품목별로도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원유, 석탄, 가스 및 석유제품의 수입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품목에서 수입이 줄었다. 내수 부진에 따른 경기 회복 지연이 우리 경제에 전방위적으로 타격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내수 부진에 대해서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우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KDI는 7일 발표한 '경제동향' 8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가 지속됐으나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KDI는 지난해 12월 이후 계속 우리 경제 상황을 내수 둔화·부진으로 진단하고 있다. 

KDI는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문에서 생산이 정체돼 소매판매액과 투자가 감소하는 등 내수는 부진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상품 소비가 부진한 가운데 최근 서비스 소비도 점차 둔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KDI는 "소매판매 감소세와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지속된 가운데 건설수주의 누적된 부진이 건설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짐에 따라 고용 여건도 점차 조정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KDI는 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위험 고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다소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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