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얼굴'의 극우세력 창궐, 가까이 온 신파시즘

젊은 극우 리더 부상…프랑스 바르델라, 미국 벤스

청산 실패 한국의 '극우 지배'…오래된 현재

'극우 정체' 모르는 한국 청년들과 시민들

한국 극우, 재벌·검찰엔 침묵…민주세력 공격

2024-07-20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

한국 정치가 바닥을 향한 질주를 계속한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권 투쟁은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정부는 계엄령만 선포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의 독립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정치적 막장이 과연 끝일까, 시작일까?

프랑스 총선에서는 결선 투표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143석을 얻어서 비록 제3당에 머물렀으나 1차 투표에선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그 직전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선 압승했다. 국민연합은 지난 총선보다 무려 40석을 더 얻어 프랑스 정치의 실질적 주역으로 등극했다. 국민연합은 반이민, 반이슬람, 인종주의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했고, 그동안 과거 나치 지배의 쓰라린 기억 때문에 지지를 꺼린 다수의 지방 농민들과 자영업자들까지 돌려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파와 좌파연합의 선거연대로 프랑스 극우 정당의 더 이상의 약진은 주춤해졌다. 하지만 헝가리,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 극우세력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인 J.D. 밴스 오하이오 상원의원이 16일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2024. 07 16 [AP=연합뉴스]

젊은 극우 지도자들 미국·유럽서 부상

서방계 극우 돌풍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유력한 재선 후보로 부상하는 것이 그 증거다. 전 세계 극우세력의 총 지휘부는 미국이고, 그 공통된 이데올로기는 인종주의, 자국민 우월주의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미국 제일주의'는 곧 변형된 인종주의다. 우크라이나 침략을 감행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가자 지구에서 대량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야말로 현대판 극우 파시즘의 화신들이다.

트럼프는 빈민 출신의 입지전적 39세의 상원의원 J.D. 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벤스는 "월스트리트가 아닌 노동자에게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과거에 민주당 표밭이었으나 이제 우파의 세력이 커진 러스트 벨트(Rust Belt) 지역 제조업 노동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트럼프의 전략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프랑스 총선을 이끈 국민연합 당수 조르당 바르델라는 더 젊은 28살의 청년이다. 국민연합의 대통령 후보였던 마린 르펜은 청년 바르델라에게 총선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국민연합은 그가 젊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항마로서 적임자라고 본 것 같다. 그는 기존 극우의 이미지와는 아주 다른 핸섬한 외모의 틱톡 스타이며 매우 부드러운 매너를 보여주는 청년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프랑스 정부나 정치를 주도해온 국립행정학교나 파리 정치대학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그는 어머니가 이탈리아 이민자였기에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주자는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의 국가지상주의, 인종주의 대신에 여성과 소수자 혐오, 반이민, 능력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청년 극우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기존의 대자본-관료-엘리트 카르텔 밖에 있던 사람들이다.

 

프랑스 총선을 이끈 극우 국민연합(RN) 당수인 조르당 바르델라(28)가 17일 프랑스 동부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진행된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총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 07. 17 [AFP=연합뉴스]

'극우 정체' 모르는 한국 청년들과 시민들

몇 년 전,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을 상대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중 이념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내가 청년들에게 극좌와 극우란 무엇이고, 각각 어떤 특징을 갖는지 물었다. 청년들은 극좌에 대해서는 학교나 언론에서 배운 대로 이런저런 대답을 했는데 극우에 대해서는 거의 답변하지 못했다. 의아했다. 시민 대상의 강연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유사한 반응이었다.

수강생 중 한두 사람은 그저 극우는 군부독재라는 정도의 답변을 했다. 한국에 극우세력이나 극우 이념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극좌에 대한 비판만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 것일까?

미국이나 유럽의 극우세력이 전통적으로 견지하는 인종주의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데다, 그동안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반외세 통일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의 시민들, 특히 매우 우수한 청년들이 극우의 특징을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류언론이나 보수 정치가들이 입만 열면 우파와 좌파 운운하는 나라에서 극우의 특징과 그들의 행태를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화 이후에 과거와 같은 군사독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이 신장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천황제 파시즘 체제 이후, 이승만 독재,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 이후 박근혜, 윤석열 정권에 이르는 거의 100여 년의 역사는 그들의 기억 속에 없고, 시장과 경쟁이 마치 자연법칙이나 공기처럼 익숙해진 지금 세대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어떤 정치·경제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팔레스타인인 대량 추방 사태인 나크바(대재앙) 76주년 기념 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수배 중"이라고 적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얼굴이 담긴 선전물을 들고 있다. 2024. 05. 17 [AP=연합뉴스]

재벌·검찰엔 무비판…민주세력·여성은 공격

지금까지 한국에서 극우의 특징은 서구와 달리 인종주의와 민족주의가 아니라 바로 국가지상주의, 노골적인 자본 독재와 항상적인 반노동 정책이자 이데올로기였다. 과거의 일본, 독일처럼 힘을 가진 패권 국가에서 극우세력은 곧 침략 전쟁과 타민족과 인종에 대한 대량 학살을 초래했고, 한국이나 대만, 칠레 등 개도국에서는 쿠데타와 학살, 고문, 인권 탄압, 간첩 조작, 적색공포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 모든 국가에서 극우의 집권은 삼권분립의 종식, 적나라한 폭력의 행사 바로 그 자체였다.

극우의 이런 특징은 이젠 대체로 과거형이다. 전 세계에서 극우는 이주민 혐오, 여성 혐오, 종교적 맹신, 극단적 가부장주의, 특히 능력주의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국도 그러하다. 일베 청년들의 등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극우세력이었다. 일베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나 용어는 여성 혐오다. 그리고 이들의 일관된 논리는 과거 운동 세력, 북한과 중국, 여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특권주의 비판이다.

이들은 기존의 재벌, 검찰. 관료 등 실질적인 권력을 쥔 지배 집단의 행태는 거의 비판하지 않지만, '능력'이나 사회적 기여도 없이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하는 '민주화' 세력과 소수자들에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지금 개혁신당 의원인 이준석이 '신세대 극우'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인물 중 하나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선 후보가 3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한 식당에서 만찬 회동 후 취재진 앞에서 대선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2021.12.3. 연합뉴스

청산 실패 한국의 '극우 지배'…오래된 현재

이 지점에서 전통적 극우와 신세대 극우가 만난다. 가부장주의, 국가주의, 지역주의가 능력주의와 결합해서 윤석열 정부를 지탱해준다. 물론 핵심 윤석열 지지자들은 강남 거주 부자들이다. 그러나 부자가 아닌 20대 남성, 60대 이상의 노인층, 가정주부, 그리고 영남의 윤석열 지지층도 그들과 유사한 정치적 지향을 보인다. 즉 노년층, 영남인들과 남성 청년은 다른 이유로 극우 보수의 지향을 지닌다.

21세기 신자유주의의 양극화와 경제 불안은 청년과 노년층의 삶의 기반을 위협한다. 불안한 남성 청년과 노인들이 기댈 마지막 언덕은 그들이 남성이라는 것, 나이가 많다는 것, 영남 출신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미국의 하층 백인 남성에게 오직 백인이라는 우월의식이 그들의 기댈 수 있는 언덕인 것과 유사하다.

그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프랑스나 독일과 달리 일제 말 전시 파시즘, 이승만 정권 시기의 대량 학살,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폭력의 진실이 규명되거나 제대로 청산되기도 전에 새 세대 극우의 등장을 맞았다. 즉 한국과 일본에게 극우세력의 지배와 파시즘은 한 번도 청산된 적이 없는 매우 '오래된 현재'다. 그래서 전쟁과 학살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유통일당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연 ‘자유통일을 위한 천만조직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고 있다. 2024. 03. 01. 연합뉴스

극우의 창궐과 신파시즘을 막는 길은?

오늘날 세계 각국 극우세력의 창궐은 대체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 불평등과 양극화,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한 실업과 고용불안, 이주노동자 확산 등에 따른 결과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전통적인 제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들, 농민이며 이들 중 백인 하층 남성들, 청년들이 주로 극우세력의 기반이다. 미국의 노동자들도 반이민, 외국 상품에 대한 높은 관세, 기업의 리쇼어링을 통한 일자리 확대를 강조하는 트럼프나 극우세력을 지지하게 되었다. 결국 경제 불안이 극우의 가장 큰 불쏘시개인 셈이다.

대중들이 극우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는 것은 물론 극우 정치세력의 의도적인 선전 혹은 프레임 짜기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다. 극우 정치가들의 언술과 언론의 선전에 노출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과 불행의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지적 오류, 혹은 '구조맹' 상태에 빠져 있다. 실업이나 임금 삭감의 고통을 겪은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가 정치적, 구조적인데도, 그것이 개인의 잘못으로만 보거나 이주노동자 혹은 정규직 노동자의 특권, 여성의 특권 때문이라고 여긴다. 지구적 이주노동자는 결국 자본의 이동, 금융자본의 필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데도,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은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오늘날 극우 파시즘은 분명히 대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러나 이런 극우 정치세력 지도자들이 반드시 대자본가 출신은 아니며, 오히려 지금 미국, 프랑스처럼 빈민이나 노동자 중 성공한 인물이 능력주의로 무장해서 극우의 선봉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극우의 사회문화적인 기반은 바로 능력주의, 성공지상주의, 소비주의, 그리고 물질주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경제 불만만이 극우세력의 창궐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극우세력이 경제에 의해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에서 파시즘의 등장은 개인화, 연대의 파괴와 고립 위에서 가능했다. 시민들이 고립에 빠지지 않을 지역적·사회적 연대 망, 경제적으로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자존감을 갖고 재기할 기회, 그리고 조직적인 시민교육이 부재한 나라에서 극우세력이 창궐하거나 집권까지 한다.

 

제98차 촛불대행진 집회가 13일 저녁 서울 시청역 앞 대로에서 열렸다.  2024.7.13. 사진 이호 작가

사회개혁 위한 유능한 정치세력 등장해야

극우 정치세력의 집권은 언제나 이러한 경제 위기와 만연한 불평등과 실업을 극복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좌파 세력을 포함한 범 진보세력의 정치적 무능력, 혹은 대안적인 비전과 정책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유개혁,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어설픈 개혁노선을 걷다가 더 심각한 경제 위기를 가져오거나 중산층의 표를 얻기 위해 우익의 기조인 성장주의, 능력주의와 단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몰락한 중산층과 노동자들은 단기적인 보상을 약속해주는 극우에 기울어진다. 미국의 민주당, 한국의 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이 모두 이런 이유로 극우세력 확산의 불쏘시개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이들 극우 파시즘 세력도 평화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은 힘과 폭력을 통해 반대파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을 평화라 말한다. 극우세력은 대체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그러나 집권 후 그들은 노골적으로 국제 규범이나 국내의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전쟁, 대량 학살의 지옥도는 극우 파시즘이 만든 세상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범지구적인 차원에서 온건보수–자유개혁–사민주의 좌파 세력이 우선 전쟁과 학살에 대한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고, 노동자들과 자영업자 실업자 청년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선명하고 일관된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직접 참여와 전면적인 정치교육, 과감한 사회개혁을 내건 새 정치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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