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정상회의, 미국 이념 경직 보여줘…중단해야"

'민주 대 독재' 프레임 비판…이념적 개방성 촉구

미국, 냉전 이후 '불관용' 강화…인권 남용 비판

중국, 미국의 패권과 이념적 강압에 반대하는

문화·정치·이념의 다양성 수호자로 포장 시도

프리드먼 "미국, 중·러보다 이념적으로 더 경직"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전혀 진전 없어

미국, 참가국에 시장 접근 확대도 제시 안 해

2024-07-19     이유 에디터

"중국, 러시아와의 경쟁을 더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싸움이란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 그래야 미국은 더욱 유연해질 수 있다. 그것은 두 나라를 이기기 위한 '글로벌 연합'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제러미 프리드먼 부교수(기업·정부·국제경제 담당) 는 '포용적 동맹 옹호'란 17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장관급 회의 개회식에 참석해 주제 영상 시청 뒤 손뼉을 치고 있다. 2024. 03.18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바이든,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중단하라"

미·중·경쟁, '민주주의 대 독재' 프레임 비판

그러면서 프리드먼은 미국에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 개최 중단을 촉구했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으며, 대통령으로 취임한 2021년 12월 미국이 1차 회의를 주재했으며, 올해 3월에는 한국이 3차 회의를 주재했다.

개최 반대 이유에 대해 그는 "미국 정부 관리들이 독재적 파트너들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고, 미국이 어느 나라가 민주주의인지 따지는 과정에서 위선적이란 비난을 받게 된다"며 "최종 결과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같은 비민주적 동맹국들이 떠나가게 만든다"라고 지적했다.

이 글에서 프리드먼은 철저히 미국인의 관점에서 중·러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대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 뭣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축해야 하며, 그러려면 민주주의란 잣대를 너무 엄격히 적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이른바 서방 동맹국 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의 "결함 있는 민주주의" 정권이나 "독재" 정권과도 연합해야 한다는 얘기다.

 

18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파이서브포럼에서 진행된 2024년 공화당 전당대회의 마지막 날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 스크린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방영되고 있다. 2024. 07. 18 [AP=연합뉴스]

미국의 이념 경직성, 냉전 승리 잘못 해석 탓

냉전 종식 후 '불관용' 강화…인권 남용 비판

그는 "미국은 자신과는 다른, 결함 있는 지도자와 체제에 대한 관용을 다시 배워야 한다"며 "이는 20세기에 했듯이 잔혹한 독재를 지지하라는 뜻이 아니라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튀르키예 같은 '결함 있는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이념적 경직성'에서 벗어나 '이념적 개방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이념적 경직성에 빠진 까닭을 냉전 승리의 요인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됐다는 게 프리드먼의 생각이다. 미국은 냉전 승리를 통해 계획경제의 획일적 공산주의 체제인 소련과의 냉전에서 자유시장, 자유 선거를 보장한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우월성이 입증됐다고 단정지으면서 그 밖의 접근법에 대해선 불관용적이 됐으며, 여기에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패권이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6일 제다에서 열린 제다안보개발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말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는 "냉전 결과에 중요했던 것은 미국이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가졌을 뿐 아니라, 소련보다 이념적으로 더 유연했다는 점이다"라면서 "그런 개방성 덕택에 미국은 동맹을 육성하고 해외의 지지자를 얻고 국내에서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태생적으로 불관용적이었던 소련 공산당은 "복종과 충성"에 큰 가치를 부여하고 "사고의 다양성"을 자산보단 부채로 여기는 한편 엄격한 이념적 경직성을 고수하면서 '중국 소외' 등 사회주의권 분열을 초래한 것이 냉전 패배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고 프리드먼은 봤다.

그러나 소련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 이후 더 안전해진 미국은 빠르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냉전 승리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미국은 동맹국들에 훨씬 더 까다롭게 굴었다. 더는 잔혹한 반공 독재의 지지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신보수주의(네오콘)가 미국 외교정책을 인도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정상회담 뒤 베이징 중난하이의 시 주석 관저로 자리를 옮겨 비공식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5.16. AP 연합뉴스 

중국, 미국의 패권과 이념적 강압에 반대하는

문화·정치·이념의 다양성 수호자로 포장 시도

프리드먼에 따르면, 미국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지지를 얻고자 튀르키예 같은 동맹국의 인권 남용을 점점 더 비판했다. 미국은 한때 민주주의와 자유 기업을 강조하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젠 종교의 자유, 소수자(LGBTQ) 인권, 페미니즘과 같은 "미국의 가치들"을 수출함으로써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오랜 우방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금 이들 개도국이 미·중 전략경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더 경직돼 있다"는 게 프리드먼의 진단이다.

프리드먼은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전통 가치의 수호자로 포장하고,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은 국제무대에서 자신을 서구의 '워크니스'(wokeness)에 반대하는 지도자로 소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크'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고 인종, 젠더, 문화 등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계몽된' 사람들을 말하며, 보수 진영에선 나쁜 의미로 쓰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본래 다른 나라의 공산당과의 교류를 맡았던 중국공산당 대외연락국은 급속히 확장돼 그 밖의 다른 정당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으며, 2017년을 시작으로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의 '세계정당대회'를 베이징에서 개최했다. 프리드먼은 "여기서 중국은 자국 시스템의 도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미국의 패권과 이념적 강압에 반대하는 '다원주의와 관용'을 전파하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23년 3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발표한 '글로벌 문명 구상'(GCI)이다. 중국을 문화적, 정치적, 이념적 다양성의 수호자로 꾸미려는 작업으로 '유연성'을 중국의 브랜드로 삼고자 노력한다고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8일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파이서브포럼에서 진행된 2024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행사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2024. 07. 18 [AFP=연합뉴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전혀 진전 없어

미국, 참가국에 시장 접근 확대도 제시 안 해

프리드먼이 보기에 자유무역협정(FTA)은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대외 관계들을 다지는데 핵심적이지만, 미국의 이념적 경직성 때문에 협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이 기후변화 대처와 베트남 독립노조 지지에 과도한 비중을 둔 탓에 실패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미국이 참가국들을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몰아붙이면서도, 그 대가로 시장 접근 확대조차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전이 거의 없었다는 게 그의 견해다. 프리드먼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존재감을 확보하고자 한다면 FTA를 체결하거나 거기에 가담해야 할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인도 · 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프리드먼은 "바이든 행정부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사우디 같은 노골적인 독재 체제와 생산적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다수의 외국 지도자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지지에 대한 신뢰성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공약의 확고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수의 미국 파트너들은 "매우 억압적"이긴 하지만, "중·러가 세계 질서를 뒤엎지 못하게 하려면, 서방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제적 국경과 국제법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파트너들의 광범위한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잠재적 동맹국의 숫자는 줄어들고 그들을 경쟁자들의 품으로 밀어 넣은 위험성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냉전 승리를 도운 이념적 유연성을 재발견해야 한다'는 부제가 그의 주장을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러시아와의 '이념적 대결 구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어가기 보단, 미국이 그런 대결 구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전략적으로 독재 정권까지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문을  프리드먼 부교수가 '이념적 유연성'으로 포장하는 대목에서 철저히 미국 국익 중심의 관점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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