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밉상이었던 ‘영부인’ 라이사 고르바초바
비싼 디자이너 옷에 명품 브랜드로 치장
허리띠 졸라맨 국민한텐 비호감 '구찌동지'
난처한 질문에, 고르비 "집에 가서 물어볼게"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퍼스트 레이디’ 문화가 정착하지 못했다. 서방 국가 지도자의 배우자는 문화 교류나 공공외교 분야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며 나라 지도자의 이미지 개선, ‘소프트파워’ 상징 등에서도 적지않은 역할을 한다. 실제 한 나라의 통수권자보다 퍼스트 레이디가 더 인기가 있을 수도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그 좋은 예다. 지도자 이미자가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배우자가 ‘대통령도 사람이다’ 식으로 이미지를 부드럽게 해 주고 국민들에게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사례를 다시 빌리자면 미셸 오바마 여사는 남편 임기 말에 하락한 지지율을 지탱해 주고 여론을 달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특히 해외 순방 때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이 중요하다.
소련의 ‘상남자’ 문화에서 통하지 않는 미국식 퍼스트 레이디
이런 ‘퍼스트 레이디’ 개념이 소련 (1921-1991)에서는 없었다. 소련 사회 속에서 여성의 위치는 전통적으로 높은 편이었으나 러시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정치와 여성이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이었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는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탈린도, 흐루쇼프도, 브레즈네프도 자기 배우자들을 자기 뒤에 숨겼다. 대중 앞에 거의 나타나지도 않고 어떤 사람이고 평상시 뭘 하는 사람인지 국민이 잘 몰랐다. 강한 지도자가 자기 가족을 공개하는 것은 약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종의 상남자 이미지 관리라고 할까.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도 새 러시아 대통령들은 자기 배우자를 잘 내세우지 않았다. 소련 시절보다는 조금 더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정도였지 공개적인 활동도, 언론 노출도 많이 자제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외로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인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크다.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막바지에 들어온 지도자였다. ‘페레스트로이카’ (개혁개방) 정책을 선언하면서 나라를 열었고 국정 개선 정책을 펼쳤다.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관계가 없었던 나라와 수교도 하고 냉전 시대 때 적이었던 미국과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1985년에 스위스에서, 1986년에 아이슬란드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두 번 회동이 있었고 1987년에 고르바초프가 미국을 방문하고 1991년에는 조지 H. W.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미국과 친분을 과시하고, 냉전 시대 종말과 함께 새 러시아의 출발을 알리고 싶었던 고르바초프는 미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문화’ 중에는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문화도 크게 부각되었다.
디자이너 옷 입고 명품 브랜드로 치장했던 ‘구찌 동지’
소련 국민은 고르바초프의 배우자인 라이사 고르바초바 (Raisa Gorbacheva)를 매우 싫어했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선, 1980년대 소련의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국민 생활 수준 하락,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패배 여파 등이 어두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겨우 받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들이 TV방송에서 늘 미소 짓고 비싼 옷 입고 명품 가방 들며 해외 정상들의 여사님과 우아하게 차 한 잔 나누며 여유를 누리는 라이사 여사를 향한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 당시 형편없는 나라 분위기인데 미국을 너무 적나라하게 따라하는 그림이 마뜩할 리 없었다. 시기도, 형식도 적절하지 못했다. 항상 선한 척한 표정으로 일반 국민들이 꿈도 못 꾸는 디자이너 옷을 입고 새 소련을 대표한다고 작은 목소리로 박사 학위 소지자답게 어려운 정치나 문화 이야기하는 라이사 여사는 국민들의 자랑은커녕 호감도 못 얻었다. 그리고 명품 브랜드를 정말 많이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서 ‘구찌 동지’ 별명까지 붙었다.
소련 국민들이 그녀를 싫어한 두 번째 이유는 라이사 여사의 인성에 있다. 소련에서는 부인이 남편보다 힘이 더 센 가족이 그리 드물지 않다. 가정 돈은 대부분 여자가 관리하고 가족과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도 역시 아내가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남자는 자존심 때문에 이를 밖에 잘 알리지 않는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러시아 문화에서는 이런 남자의 위치가 항상 비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면 친구의 놀림이나 친척의 비웃음 정도로 끝날 일이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일부 주변 지인이 아니라 온 나라가 이런 남자를 비웃게 된다.
누가 소련을 통치하나? 정치 이야기 좋아했던 박사 영부인
그 당시에는 소련을 실제로 누가 통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롱과 음모론이 만발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형식으로 나라 지도자의 배우자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면서 외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 본인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던지는 질문에 즉석에서 답을 못해서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여사님이랑 이야기를 해 보고 다음날에 답을 주겠다고 한 말실수까지 한 적 있어서 그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다.
낸시 레이건 여사는 자기 회고록에서 라이사 여사를 짜증나는 말투로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대통령이 1985년 스위스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두 여사도 회동을 가졌다. 낸시 레이건 여사 회고록에 따르면 자신이 관례대로 날씨나 가족 안부와 같은 중립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라이사 여사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공산주의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음날에도 여사끼리 간단한 아침 식사 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라이사 여사는 상당히 우아하고 사치스러운 식사와 매우 비싼 찻잔에 러시아 전통 차로 레이건 여사를 접대했는데 이것이 바로 모든 소련 국민의 일상이라고 어이 없는 주장을 했다고 낸시 여사가 자기 책에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철저히 부인을 숨긴 진짜 독재자 푸틴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 그런지 그 이후 모든 러시아 대통령은 자기 배우자를 꼭꼭 숨기고 대중에게 잘 노출시키지 않았다. 그나마 옐친 대통령의 부인은 공개적인 활동을 안 하고 비공식적으로 교육과 병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조용히 했으나 푸틴 대통령의 부인은 아예 대중 앞에 서 본 적이 거의 없다. 푸틴의 배우자를 유일하게 뉴스에서 크게 보도한 것은 2013년 6월이었다. 그때는 푸틴과 류드밀라 부인이 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이혼 발표를 해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류드밀라 여사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독재 체제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국가 지도자의 배우자나 가족의 역할에 대해 나라마다 인식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공개하는 것도 지도자의 정치가 될 수 있다. 국민들이 나라 통수권자의 가족을 보면서 지도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경우와 같이 배우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고 반감을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