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흐르고 출렁이는 물결에 얼굴을 비추어 본다면

2024-05-24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씨알의 소리 5월호, 광주민중항쟁 44주년 특집호에 실린 김조년 전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의 특별기고를 필자의 허락을 얻어 민들레에 게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저는 지금 대통령 당신을 무척 사랑하는가 봅니다. 언젠가부터 당신에 대한 미운 생각보다는 당신이 지금 살아가는 인생이 참 불쌍하다는 맘에 안타까움이 커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고 잘 하는 일을 할 때 신이 나고 기쁘고 행복감에 감기지 않습니까? 아주 자유롭게 훨훨 날면서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르고, 만나고 싶은 친구 찾아 마시고 싶은 술이나 차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 품에 맞는 옷을 입고, 앉을 만한 자리에 앉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때 그것은 가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당신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자기가 앉을 자리가 아닌 곳에 앉아서 ‘아닌 춘향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 사람들 일부가 보기에 삶의 어떤 정점에서 아주 큰 권력을 가지고, 할 수만 있다면 당신 맘대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을까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노릇이 어설프면서도 당신을 옥조이는 그 무엇이 있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하고 있다고 저에겐 보입니다. 그 모습이 참 안타깝고 슬프게 보여 당신은 불쌍한 삶을 살고 있구나 느낀단 말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화면에 비친 당신의 얼굴에서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고 행복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얼굴은, 보는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큰 부담을 넘어 불행을 주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더욱이나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안락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할 자리에 앉은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 ‘저이는 덕스럽구나’ 하는 느낌을 보는 이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당신의 얼굴을 보기 싫어하고,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지난 선거기간에 전국 여기저기를 민생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다니면서 1천조 원 이상에 이르는 사업을 하겠다고 말할 때, 그것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엄밀히 따지면 지금 당신은 그런 약속을 할 때가 아니라, 그 사업을 그냥 정책으로 책정하여 실현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 분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여기저기에서 말할 때 어떤 사람이 참말이라고 믿겠습니까? 그러한 것과 함께 지난 2년 가까운 기간 당신이 한 것을 기초로 당신을 심판하자는 구호와 당신을 지켜야 한다는 선거운동으로 여야는 모두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로 볼 때, 지금까지 해온 행태 이대로 간다면 대통령이라는 헛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그 이름으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일도 힘을 얻거나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대통령으로서는 죽음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잡하고 무거운 일일수록 단순하고 가볍게 푸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당신은 덕스럽게 보이지 않습니다. 성인군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자리에 앉았다면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과 정책으로 덕을 베풀어 다 품어야 할 것입니다. 뽑히기 전까지는 어느 편에 서서 어떤 것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를 따져서 자기의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겠지만, 일단 일을 하도록 선택된 다음에는 지지하였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측을, 할 수만 있다면 아우르고 품는 덕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그러한 것들로 속이 가득 차야 할 것이고, 채워진 기운이 자연스럽게 흘러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아늑한 기분으로 살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매우 불안불안한 맘으로 바라본단 말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당신을 다수 국민들이 그 자리에 앉혀놓았으나 ‘지나고 보니 그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로구나 느꼈다’면서 다시 그 자리를 국민들에게 돌려드린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연인으로 돌아가 당신의 삶을 자유롭고 평안하게 펼치고, 국민들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새로 찾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돌려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현명하게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 덕스러운 정치를 펼치도록 기회를 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게 누구인가 한 사람이 자신을 텅 비울 때 어마어마한 힘으로 놀라운 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하기 싫다면 지금 소속한 당을 떠나 무소속이 되면서, 여야 모든 정치인들과 재야의 덕망 있는 사람들의 허심탄회한 논의를 통하여 국정을 운영해보자고 제안하면 어떻겠습니까? 지금같이 아직 잘 훈련되지 못한 정당 중심의 정치와 정책수행은 언제나 한쪽만을 생각하는 불안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도 주장했지만, 저는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정당을 떠나 여야를 아우르는 내각을 꾸리고 정책을 새로 짜서 펼쳐야 한다고 보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해볼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중심으로 조각하고 일을 하려 한다면 지금까지보다도 더 못한 정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더욱이나 오래도록 소속되어 사랑하던 검찰 조직을 당신이 힘을 쓰는 발판으로 삼는 듯한 정치를 할 때, 그 검찰 조직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권력의 정점에 다다라서 더 이상 그 정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고 정점에 머물고 하는 자체가 이미 내려오는 것을 준비하면서 실현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어디든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잠시 오름에서 머물고 내려오는 것은 똑같이 어렵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마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케이블카에 올려 당신의 치열한 노력 없이 정상에 오르게 한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 당신이 정상에서 어떻게 머물까 또 머물다가 어떻게 내려올까를 사람들은 세심히 관찰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지난 총선으로 나타났다고 저는 봅니다. 이렇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를,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나 공공기관의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신뢰하고 신명을 바쳐 일하겠습니까? 당신을 탄핵하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속에서 그분들은 기분 좋게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겠습니까? 또 자기 나라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조롱거리가 된 대통령이 어떻게 다른 나라의 정상들을 만나서 첨예하게 복잡하고 세밀한 일들을 다루면서 의미 있는 외교활동을 힘있고 당당하게 펼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나라의 정상들은 얼마나 깊은 진정성을 가지고 당신과 대화하겠습니까?

시대정신이니 하늘의 뜻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냥 당신이 잘 들을 수 있는 국민의 소리, 지난 2년간 당신을 한 번도 잘한다는 의견을 주지 못한 상당히 많은 수의 국민들의 맘을 헤아려 보세요. 당신을 지지하여 그 자리에 앉혀놓은 사람들의 비율만큼도 당신을 믿지 못하고 당신이 잘한다고 평가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앉혀놓던 그때의 여론은 누군가를 그 자리에 앉히는 그 순간 달라지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길을 떠납니다. 당선된 그날의 그 여론은 고요히 있는 물 같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날 그 물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흐뭇해할 일이 아닙니다. 여론은 흐르고 출렁이는 물결과 같지 않습니까? 적어도 나라와 사회를 이끌겠다는 사람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출렁이는 물결에 깨지고 일그러지는 자기의 얼굴을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은 이 출렁이는 여론의 물결을 어떻게 타려고 하십니까? 지금 시간은 바로 당신의 모든 것을 만회할 아주 좋은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자리를 쿠울하게 내어놓고 국민들이 알아서 하라고 맡긴다면 어떻겠습니까?

선거를 통하여 나타난 민심을 당신은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람들이 품습니다. 사람들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 보편 경향에 맞추어 볼 때 당신도 유연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것입니다. 당신같이 영민한 분이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황금 같은 시간을 전혀 움직임 없는 ‘검사의 마음’을 가지고 그냥 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소리를 저는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검사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가 되었든 법 집행이 정당하게만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더욱이나 권력자가 법 집행을 어떤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질 때 법 집행 기관들은 항상 뒤틀린 법 적용과 집행을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있는 권력’을 오래도록 살아있는 채로 간직하려는 생각을 가지는 듯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권력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제가 보기에 살아있는 권력은 언제나 곧 ‘사라지는 권력’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보면 모든 권력은 역사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함을 가르쳐오지 않았습니까? 이번 야당 대표와 만났을 때 이야기하는 것을 모든 국민들은 다 숨김없이 보고 싶어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서로 솔직히 자신들의 정책을 펼치고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당 대표는 국민의 소리라고 하면서 많은 것을 정리하여 말하였는데, 당신은 국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당신의 생각을 펴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야당 대표의 말도 들을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더 깊고 많이 당신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당신의 말은 곧 모든 사람의 삶에 직접 영향을 주는 힘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 저분은 달라지지 않는 분이로구나, 국민의 맘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구나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이 때 누가 당신을 적극 지지하고 믿으려 하겠습니까? 그것이 또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아픈 맘으로 당신께 말씀 드립니다. 오래 지속되지 않는 권력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맘 대신에 당신에게 그 권력을 주신 국민들에게 그것을 겸손히 돌려드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하시기 싫다면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어느 정당이나 집단을 의지하는 것을 떠나 모든 정치집단과 양식 있는 분들과 허심탄회하게 오래도록 공개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틀을 짤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그 길이 당신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좋다고 혹시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지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오래도록 생각하고 맘을 모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특히 건강하시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시기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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