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

2024-05-17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국경없는기자회’는 2024년 전 세계 언론자유지수가 많이 안 좋아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는 전 세계 국가 중 62위에 그쳤다. 작년보다 15계단이 하락했다. 2009년 1년 만에 역대급으로 19계단을 추락한 사례 다음의 하락폭이다. 두세 자리 정도 변동했으면 다른 나라들이 잘 해서 그렇거니 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15계단이나 떨어진 것은 외부에서 볼 때도 문제가 심각하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나는 바로 이 추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62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년보다 매우 크게 떨어진 사실이 중요하다.

정권 성격 따라 유독 등락폭 큰 한국 언론자유지수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대체로 한국보다 언론자유지수가 낮은 편이다. 2010년에 전 세계 11위라는 최고치를 찍은 이래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중이다. 2013년에 하락폭이 가장 컸고 (2012년 22위 : 2013년 53위) 그 이후는 매우 안정적이다. 10년 가까이 50위대와 60위대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 이 지수가 전 세계 180개의 나라에서 측정이 된다고 생각해 보면 일본은 대략 높은 중위권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북유럽 정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다. 정권교체가 잘 안 되는 일본이어서 같은 성격의 정권이 계속 들어서지만 언론을 그렇게 세게 탄압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정권이 바뀌자 1년 만에 15단계나 하락한 한국과 대조가 되는 형국이다.

표현의 자유를 최우선시 하는 미국에서도 지수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02년에 17위였던 미국은 2024년에 55위까지 하락했다. 큰 폭이긴 하지만 20년이나 걸렸다. 대체적으로 한국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대만의 언론자유지수 변동폭도 큰 굴곡 없이 합리적인 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한다. 올해는 오히려 27위로 올라갔다. 아시아에서는 1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의 자유 지수가 크게 변동되는 것은 한국의 특징 중 하나다. 민주주의가 아직 덜 완성되었고 제도나 법률보다 특정한 인물이 영향을 더 미친다는 신호다.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거나 아직 제대로 작동 못 하고 있는 나라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례도 흥미롭다. 작년에 79위였던 우크라이나는 올해 한국보다 1단계 높은 61위로 올라갔다. 이렇게 큰 상승은 전문가들도 놀랄 만한 결과다.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인데 말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전쟁이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개선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마트폰 사용의 보편화, 필터링이 없는 현장 즉각 보도, 매체 관리보다 더 급한 과제가 많은 정부, 이런 여러 요인들이 오히려 우크라이나 미디어를 자유롭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전쟁 중이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더 높은 압박을 받으면서 고위공직자 교체, 부정부패사건 조사, 사법부 개혁 등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환경이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역설이다. 아무튼 전쟁 중인 나라의 언론자유지수가 평화를 구가하는 한국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 웃프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언론자유대책특별위원회 주최로 가 열리고 있다. 2024.4.30. 연합뉴스

같은 전쟁 당사국이면서 사뭇 다른 러·우크라 언론자유

반면에 러시아의 형편은 정반대다. 전쟁 가해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반대 목소리를 전면 막아 버린다. 오로지 정부의 입장을 24시간 동안 방송하는 매체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정부 공식 입장과 반대되는 보도는 물론 조금이라도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는 전면 폐쇄하고 이런 미디어와 사람을 ‘가짜 뉴스’로 낙인 찍는다. 인터넷 자체를 통제하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전달 과정을 기술적으로 매우 번거롭게 만들거나 제한하는 등의 정책은 러시아를 매년 랭킹의 맨 밑으로 내몬다. 올해는 작년보다 2계단이 높은 162위로 올라갔으나 큰 의미가 있겠는가. 러시아가 잘 해서가 아니라 다른 주변 나라들이 더 못했기 때문일 뿐이다. 국가 자체가 불안한 상태에 빠진 161위인 지부티 (Djibouti, 아프리카의 동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와 전체주의에 가까운 독재국가인 163위 니카라과 사이에 위치한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미국산 SNS (facebook, Instagram 등) 전면 통제, 반정부 성격이 보이는 책, 음악, 영화, 공연, 뮤지컬, 전시회 등 전면 폐지 상황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러·우크라 전쟁에서 러시아 편을 든 나라들의 언론자유지수 랭킹이 줄줄이 하락한 것도 흥미롭다. 오래전부터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친러 성향이 강한 세르비아는 7계단이 하락해서 98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러시아를 빠져나와 세르비아로 도망간 러시아 기자들이 세르비아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거나 러시아로 송환까지 된 사례 때문이다. 26단계나 추락해서 103위에 머문 조지아가 랭킹에서 내려가기 시작한 시기는 친러 정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5월 14일에 ‘해외 언론 영향 제한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등 러시아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랭킹에서 크게 왔다 갔다 하는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이번에는 26계단이나 추락해서 66위에서 머물렀다. 이유는 작년에 이뤄진 정권교체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현 대통령은 ‘남미 트럼프’라고 자주 불린다. 반노동, 친미, 반중국 감성이 매우 강하다. 정부에 불리한 보도가 많다면서, 국가예산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지난 3월에 ‘텔람’ (Telam) 국영방송 폐지 지시를 내렸고 현재 방송사 운명은 불투명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KBS 같은 공영 방송이다. 지난 정권이 돈을 많이 써서 국가 채무가 급증했다고 비판하며 국가 소유인 항공사, 수도공사 등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뭔가 한국 닮은 것 같기도 한 아르헨티나의 언론자유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이 오컬트 마니아라는 것이다. 2017년에 죽은 강아지의 유전자를 복사한 강아지 4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뿐 아니라 2017년에 죽은 강아지와 아직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하면서 가끔씩 조언을 구한다고 진지하게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자신이 아르헨티나를 구하기 위해 내려온 구세주라고 믿고 정신적 멘토(무속인)도 자주 만난다고 한다. 비슷한 케이스를 어디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가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눈 여겨 볼 만한 보고서임에는 틀림없다. 한국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연 단위로 크게 오르거나 추락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현 정부는 국제기구 의견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은데, 시민인 우리는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뭔가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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