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략요충’ 솔로몬제도 총선…중국, 미에 판정승

‘친중’ 머넬레 총리 “국민·국가 이익이 최우선”

대만 단교·중국 수교 실행했던 외교장관 출신

머넬레 “누구에도 적이 아닌 외교 정책” 약속

“워싱턴, 아시아에 미·중 경쟁 프리즘 압력”

2024-05-02     이유 에디터

“나는 언제나 우리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다른 모든 것보다 최우선으로 삼겠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솔로몬제도의 제러마이아 머넬레(56세) 신임 총리는 2일 당선 직후 행한 연설의 첫 일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로이터,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친중국’ 성향의 여당 후보인 머넬레는 이날 31표를 확보해 18표를 얻은 야당 연합 매슈 웨일 후보를 꺾고 총리로 선출됐다. 5연임 여부로 주목받았던 머내시 소가바레는 총리직 도전 포기를 선언하고 머넬레를 밀었다.

 

 제러마이아 머넬레 솔로몬제도 총리 당선인이 2일(현지시간)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총리에 선출된 뒤 연설하고 있다. 2024.05. 02 [AP=연합뉴스]

‘친중’ 머넬레 총리 “국민·국가 이익이 최우선”

이로써 미국-중국 간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솔로몬제도의 총선(4월 17일)과 총리 선출 등 새 정부 구성은 중국이 판정승한 모양새가 됐다. 머넬레 총리는 “역대 선거는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 오늘 우리는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총리를 선출하는 민주적 과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솔로몬제도는 작년에 총선을 치러야 했지만, 태평양 도서국 스포츠 대회인 '퍼시픽게임'을 개최하면서 생긴 재정난을 이유로 1년 연기했다. 솔로몬제도는 1978년 7월 영국에서 독립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반도 면적 8분의 1 크기에 약 73만5000명(2023년 기준)이 사는 솔로몬제도는 태평양에서 아시아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서 상업적 측면은 물론 군사적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인도양의 몰디브와 함께 최근 몇 년 사이에 치열한 미·중 전략 경쟁의 장으로 변한 곳이다. 과달카날과 말레이타 등 6개의 큰 섬과 900개 넘는 작은 섬들로 이뤄진 솔로몬제도는 대략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2000㎞, 미국 군사기지인 괌에선 3000㎞,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선 6000㎞ 각각 떨어져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제러마이아 머넬레 솔로몬제도 외교부장이 베이징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에서 수교 기념 행사를 하고 있다. 2019. 09. 21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만 단교·중국 수교 실행했던 외교장관 출신

머넬레는 4번 째 총리직에 오른 소가바레가 대만과 단교하고 전격적으로 중국과 수교한 2019년 당시 외교부 장관이었다. 머넬레는 총리에 도전하면서 미국, 호주 등 서방국들에 충격을 안겨준 안보 협정을 포함해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해 나갈 뜻을 밝혀왔다. 2022년 4월 극비리에 채결된 이 안보 협정은 중국의 치안 지원은 물론 유사시 군대 파견도 가능하게 돼 있다.

그동안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최악의 경우 솔로몬제도에 중국의 해군기지가 들어설 수도 있다고 걱정해왔다. 그렇게 되면 태평양을 장악해 온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동맹으로 최근 일본의 참여도 검토되는 오커스(AUKUS)의 활동에 큰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 후보들은 문제의 안보 협정 재검토와 대만과의 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동안 중국은 솔로몬제도에 최첨단 의료 센터와 1만 석 규모의 육상 경기장을 지었고, 수도 호니아라 항구 재개발과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도 지원해왔다.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 물량 지원을 해오고 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미국도 2022년 4월 당시 ‘아시아 차르’인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현 국무부 부장관)을 솔로몬제도에 급파하고 29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하고, 솔로몬제도를 포함한 태평양 도서국에 8억10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 규모의 재정 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은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저지 작업에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동참도 강력히 요청해왔다.

 

  중국 정부가 선물한 청소차량이 솔로몬제도 수도인 호니아라를 돌고 있다. 2024. 04. 18 [AFP=연합뉴스] 

머넬레 “누구에도 적이 아닌 외교 정책” 약속

역시 친중 성향 머넬레의 총리 당선으로 솔로몬제도는 앞으로도 중국의 긴밀한 동맹국으로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외교관 출신이 그는 전임 총리인 소가바레보단 서방에 덜 “대항적인” 접근을 취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머넬레는 총리 선출 투표에 앞서 "모두에게 친구가 되고 누구에게도 적이 아닌 동일한 외교 정책 원칙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호주 싱크탱크 로위 연구소의 태평양 담당자 캑 킨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계속 추구하겠지만 서방 입장에서는 덜 전투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그는 노련한 외교관으로 유엔과 서방 국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서방과 관계에 낯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 맨앞)이 26일 중국 베이징 영빈관인 댜오위타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하고 있다. 2024.04.26 AP 연합뉴스

“워싱턴, 아시아에 미·중 경쟁 프리즘 압력”

미국 시카고대의 폴 스태나일랜드 정치학 교수는 2일 자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미·중 어느 편에서 서지 않은 이른바 “아시아 스윙스테이트들(경합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고 미국의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소개하면서 워싱턴 당국이 이들 나라를 상대로 “정치적 이익보단 미·중 경쟁이란 프리즘을 통해서 보도록” 엄청난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태나일랜드 교수는 “정치적 안정, 줄어든 이념적 양극화, 다양한 국내적 사정이 결합됨으로써 아시아에선 강대국 간 경쟁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내부 정치적 경쟁들을 통해 굴절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제는 아시아 스윙스테이트들이 미·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하라는 압력을 거부하는 최대의 분야”라며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성장에 집중하고 미·중 경쟁을 활용하는 기회들을 잡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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