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략요충’ 솔로몬제도 총선…미·중 대리전 양상

친중국 소가바레 5연임 여부에 세계 이목 집중

“솔로몬제도가 독립한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

과달카날 전투 무대…군사·상업 전략적 가치 커

친미국 야당 후보들 각개약진, 연합 없인 패배

미, 솔로몬제도에 중국 해군기지 들어설까 걱정

2024-04-17     이유 에디터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솔로몬제도의 총선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솔로몬제도는 약 5년 만인 17일(현지시간)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5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투표에 들어갔다. 선출된 의원들은 이후 투표를 통해 차기 총리를 선출하게 된다. 솔로몬제도는 1978년 7월 영국에서 독립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며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15일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에서 총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이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 2024. 04.16. AFP=연합뉴스

“솔로몬제도가 독립한 이후 가장 중요한 선거”

한반도 면적 8분의 1 크기의 솔로몬제도는 과달카날과 말레이타 등 6개의 큰 섬과 900개 넘는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으며, 인구는 2023년 기준 73만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총선 결과는 투표용지 수거 과정의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2~3주 후에나 나올 예정이다. AP, AFP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솔로몬제도는 작년에 총선을 치러야 했지만, 태평양 도서국 스포츠 대회인 '퍼시픽게임'을 개최하면서 생긴 재정난을 이유로 1년 연기했다.

이처럼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총선에 세계가 주목하는 건 뭣보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 간 전략 경쟁에서 차지하는 이곳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솔로몬제도는 태평양에서 아시아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서 상업적 측면은 물론 군사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솔로몬제도는 대략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2000㎞, 미국 군사기지인 괌에선 3000㎞,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선 6000㎞ 각각 떨어져 있다. 솔로몬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2~1943년 일본군과 미군 등 연합군이 격전을 벌인 ‘과달카날 전투’의 무대로 유명하다.

 

중국을 방문한 머내시 소가바레 솔로몬제도 총리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1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3. 07. 10. AFP=연합뉴스

친중국 소가바레 5연임 여부에 세계 이목 집중

이번 총선에선 친중국 노선의 현 머내시 소가바레 총리와 피터 케닐로레아 주니어 의원을 포함한 친미국, 친서방 노선의 야당 후보들이 대결을 펼친다. 소가바레는 2000년 6월 총리가 되고 이제 5연임을 노리고 있다. 그는 4번째 총리직에 오른 2019년 그동안 외교 관계를 맺고 있던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에 반발해 2021년 11월 폭동마저 있었다. 그러나 소가바레는 더 밀어붙였다. 이듬해인 2022년 4월에 중국과 치안 지원은 물론 유사시 군대 파견도 가능한 안보 협정을 극비리에 체결해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서방에 충격을 안겼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동안 중국은 솔로몬제도에 최첨단 의료 센터와 1만 석 규모의 육상 경기장을 지었고, 수도 호니아라 항구 재개발과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도 지원해왔다. 수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 물량 지원을 해오고 있다. 또한 중국 경찰을 파견해 현지 경찰 교육도 하고 있다.

미국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2022년 4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을 솔로몬제도에 급파하고 29년 만에 대사관을 재개하고, 솔로몬제도를 포함한 태평양 도서국에 8억1000만 달러(약 1조2000억 원) 규모의 재정 지원 패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은 태평양 도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막는 작업에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동참도 강력히 요청해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15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계기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첫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책임 있게 경쟁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충돌과 대치는 양쪽 모두에게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화답했다. 2023.11.16. AP 연합뉴스

‘태평양 전략요충지’ 놓고 미·중 대리전 양상

미국 등 서방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소가바레가 승리한다면 솔로몬제도에 중국의 해군기지가 들어설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태평양을 장악해 온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 동맹으로 최근 일본의 참여도 검토되는 오커스(AUKUS)의 활동에 큰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은 막후에서 기존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시진핑의 중국과, 이를 저지하고 자국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조 바이든의 미국 간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 하와이대 태평양 도서국 연구센터장을 지낸 타르치시우스 카부타울라카 부교수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지금의 경제 문제와 더 격렬해지는 미·중 경쟁 속에서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이번 선거는 “솔로몬제도가 독립한 이후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가바레의 최대 경쟁 후보는 초대 총리의 아들이자 야당인 연합당(UP)을 이끄는 케닐로레아 주니어 의원이다. 미국, 호주 등 서방이 문제 삼는 중국과의 안보 협정을 재검토하고 중국은 물론 대만과도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총선 전야인 16일 솔로몬제도 수도 호니아라의 차이나타운에서 주민들이 폐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차이나타운 상인들은 친중국 노선의 머내시 소가바레 총리가 또 당선될 경우 자신들을 향해 벌어질지 모를 대규모 폭력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2024. 04. 16 AFP=연합뉴스

친미국 야당 후보들 각개약진, 연합 없인 패배

솔로몬제도는 내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중앙정부가 있는 과달카날섬과, 이곳에서 약 110㎞ 떨어진 말레이타섬 주민들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말레이타섬 주민은 중앙정부의 지원이 과달카날섬에 집중되고 자신들은 차별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 호주는 물론 단교 당했던 대만도 솔로몬제도 정부와 관계없이 말레이타섬을 지원하겠다고 나서면서 소가바레 정부의 친중 정책에 대한 말레이타섬 주민의 반감은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2021년과 2023년에는 수도인 호니아라에서 말레이타섬 주민 주도로 소가바레의 친중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소요 및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야당 후보들이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 각개약진하고 있어 소가바레 총리가 또 승리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솔로몬제도 투명성 단체의 루스 릴로쿨라 대표는 "여당이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어 총선 후 야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만 정권 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는 16일 자 기사에서 “외국의 관전자들에겐 (이번 선거의) 주된 이슈가 솔로몬제도가 중국과의 관계를 계속 가져갈 것인지, 소가바레 총리가 다시 당선될지 여부다. 그러나 솔로몬제도 사람들에겐 다른 모든 것보다 ‘빵과 버터’ 이슈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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