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거듭나기는 없다' 보여준 윤석열식 반성
대국민 기자회견 아닌 국무회의 발언으로 갈음
"난 옳았고 최선 다했으나 미흡했을 뿐"이라는 인식
국정 헌신했으나 보답받지 못한 억울함 토로인 듯
윤석열은 과연 '거듭날' 수 있는가. 16일 국무회의에서 그의 '반성'의 언어가 그의 미래를 보여줬다. 그가 한 말들을 요약하자면 “지난 2년간 나의 길은 옳았고, 최선을 다했으나 나의 헌신과 노력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출근조차 하지 않고 6일 만에 나온 ‘반성과 사과의 말’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날 발언은 준비된 말, 총선 결과에 대한 그의 숙고된 결론이었다. 장시간의 깊은 생각 끝에 나온 말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은 지난 2년에 대한 자기평가는 물론 남은 3년에 대한 윤석열의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에게 과연 반성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입장 발표 택해
선거 참패 직후인 지난 11일 비서실장을 통해 내놓은 56자의 입장문에서 얘기한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든다’는 것이 무엇을 받든다는 것인지, ‘국정을 쇄신하고 경제와 민생의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의 '최선'이 무엇인지를 그는 국무회의 발언에서 분명히했다.
무엇보다 국무회의라는 자리에서의 발언을 택함으로써 그는 국민들의 질문에 대해 답변이 아닌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선택했다. 기자회견이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자신의 지난 2년간의 ‘원칙’을 완강히 고수했다. 이로써 그는 국민들의 질문 앞에 대면할 의지도, 자신도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같은 의지와 자신의 부재를 낳은 것은 그가 사실 지금의 총선 참패의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인식 능력의 부재였다.
그는 사과나 반성을 얘기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설득’하려 했다. 국민들을 대신한 기자들의 질문 앞에서 사과했어야 할 그는 대신 자신과 함께 그 질문을 받아야 할 이들,국무위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듯 얘기했다. “나는 잘하려 했는데 장관 여러분들이 모자랐으며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질책하는 듯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은 특히 ‘부족’과 ‘미흡’이라는 말이었다.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는 모자랐고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거나 "국민께서 실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로써 그는 국정의 기조와 방향은 옳았으며 그에 대해서는 돌아볼 뜻이 없음을 '천명'했다.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으나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로 그는 최선을 다했으나 보답받지 못하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듯했다. 국민의 기대가 너무 높다는 원망이 담긴 말인가, 혹은 국민들의 이해 부족을 탓하고 싶은 것인가.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였고 기조는 옳았다는 그의 확신은 그에게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는 보려고도, 볼 수 있는 능력도 없다는 것을 드러냈다. 어떤 사안에든 한쪽 면이 있으면 다른 쪽 면이 있다는 양면성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드러냈다. 그에게는 국정 방향이 옳다는 그 전제부터가 옳은지에 대해 돌아볼 의지가 있는지 여부 이전에 그럴 인식과 반성능력이 있는지부터가 의문이 들게 했다.
애초에 낮아진 적이 없는 이가 더 낮아지겠다?
"더 낮은 자세와 유연한 태도로 보다 많이 소통하고 저부터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낮은' 자세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그는 '낮아져' 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배우는 것이었다.
그는 "예산과 정책에 집중해서 물가 관리에 총력을 다했으나 어려운 서민들의 형편을 개선하는 데는 미처 힘이 닿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썼을 이 '미처'라는 말에서 서민들의 삶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묻어 있다.
"국민 여러분께 더 가까이, 민생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서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국민의 삶은 더 적극적으로 챙기겠다"면서 그러기 위해 앞으로도 민생토론회를 통해 부족한 정책을 채우겠다고 했는데, 이로써 지난 24번의 '민생토론회'가 토론과 경청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그는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했지만, 민심을 대변하는 야당에 대해 대화할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기어이 야당에 대한 사실상의 비난을 끼워놓고 있다.
"무분별한 현금 지원과 포퓰리즘으로 나라의 미래를 망쳐서는 안되지만 경제적 포퓰리즘은 정치적 집단주의와 전체주의와 상통하는 것"이라고, "우리 미래에 비춰보면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선거 기간 중에 나온 더불어민주당의 민생회복 지원을 위한 현금 지원을 '포퓰리즘'이며 '마약'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이 말로써 그는 야당과의 협치에 대한 요구에 답했다.
그는 "노동 연금 교육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은 멈출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필요한 개혁은 그 자신의 자기개혁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는 듯하다.
그는 "국가장학금 확대 등 청년 정책도 청년들이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며 "아직도 미래를 걱정하는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가 반성한다면서 내놓은 이 같은 말을 듣는 국민들의 마음이야말로 매우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