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손잡는 게 '전태일 정신'이란 최고의 모독

충격을 낳은 조선일보와 전태일재단의 공동 기획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모독해온 조선일보의 역사

노동운동이 조선일보 취재 거부해 온 역사적 이유

노조 혐오를 부추겨 탄압 뒷받침하려는 기획 의도

기득권 우파, 윤 정부와 밀착하는 한석호 사무총장

'민주당 2중대 탈피론'이 낳은 또 다른 선로 이탈

2024-03-09     전지윤 편집위원

조선일보가 창간 104주년을 기념하면서 최근 ‘전태일재단’과 손잡고 <12 대 88의 사회를 넘자>라는 공동 기획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가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고 상생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그 취지와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극우 보수적이고 기득권 세력의 이해를 대변해 온 족벌언론이지만 가끔은 이런 역겨운 기획 기사를 통해서 구색을 갖추려고 해왔기 때문에 크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기획 연재를 보고 노동운동 안팎의 많은 이들이 충격에 가까운 실망과 분노의 반응을 보였던 이유는 전태일재단이 여기에 함께하고 있어서였다.

“전태일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실천하기 위해 만든 재단”이며 “노동운동을 이끌어갈 횃불이 될 것”이라고 했던 재단에서 다른 곳도 아니라 조선일보와 함께 이런 기획 연재를 한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에서 매우 특별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일보는 오랜 세월 전태일 열사나 한국 노동운동과 매우 고약한 악연을 맺어 왔다. 먼저 조선일보는 박정희 시대의 당시 다른 족벌언론들과 마찬가지로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고통스럽게 바꾸고자 한 끔찍한 노동 현실을 외면하던 언론 중의 하나였다. 물론 조선일보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자신들의 추악한 역사를 감추면서 ‘우리는 전태일의 일기장을 입수해서 보도했다’며 물타기를 해 왔다.  

 

조선일보 화면 갈무리

하지만 그 실체를 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 조선일보의 당시 사회부 기자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그에게 일기 같은 게 있을 것인가”하는 삐딱한 멸시의 마음으로 장례식장을 지키다가, 일기장을 발견하고는 빼앗다시피 해 그것을 가져가 보도했다. ‘특종’ 욕심이 박정희 정부에 대한 눈치를 앞섰던 셈이다. 하지만 유가족과 동료들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분신 직후, 조선일보사에서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며 가져갔는데, 일기의 중요한 부분들이 예리한 면도칼에 의해 잘려 나가 없어져 버린 채 되돌아왔다. 이후 동지의 가족은 1년여에 걸쳐 없어진 일기를 되찾으려 무진 애를 썼으나, 결국 돌려받지 못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머리말)

이후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동료 노동자들이 만든 청계피복노조는 박정희 정권에게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수시로 경찰에 두들겨 맞으며 감옥에 끌려갔고 노조 사무실이 침탈당하고 노조가 파괴됐다.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는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끌려가 고문당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동안에 조선일보는 누구보다 앞장서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와 노동자 탄압을 옹호했다. 조선일보는 1972년 10월 유신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며 환호했고, 영구집권을 위해 국회 해산, 대학 휴교, 언론 검열 등 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의 비상계엄령을 “구국의 영단”이라고 칭송했다.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독재 정권에 대한 조선일보의 충성과 아부는 전두환 정권에서도 계속되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저항과 연대의 정신을 상징하는 ‘전태일’에 대한 조선일보의 노골적인 적개심은 그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예컨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조선일보는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보다 전태일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를 “독극물”이라고 비난하는 칼럼을 실었다. “좌편향 교과서들이 전태일을 부각시키고, 이병철·정주영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사설도 썼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만들려고 한 것은 이런 조선일보의 불만을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전태일 열사를 얼마나 증오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2016년 연말에 <월간조선>에 실린 뉴라이트 류석춘 교수의 <‘전태일 평전’의 3가지 함정>이라는 글이다. 여기서 류석춘 교수는 전태일 열사가 당시 평화시장에 침투한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아서 분신한 것처럼 냄새를 풍기면서 이렇게 모독하며 깎아내리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륜을 저버리는 비도덕적 행동이다…. 비겁하고 손쉬운 선택일 뿐이다. 전태일의 극단적인 선택은 불가피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름답지도 않다. 다만 불행했을 뿐이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예우하고 그 후손들을 지원하자는 ‘민주유공자법’을 끈질기게 반대하고 막아온 장본인도 바로 조선일보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나 취재 협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력하게 존재해 온 이유는 이처럼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이지, 무슨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다. 

 

2016년 연말에 월간조선에 실린 ‘전태일 평전의 3가지 함정' 화면 갈무리

조선일보는 이러한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전태일재단도 이러한 조선일보의 과거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뒤집거나 새롭게 재평가를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갑자기 함께 손을 잡고 공동 기획 연재를 시작한 것일까? 이것은 두 가지 차원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첫째는 조선일보와 기득권 우파들 속에서 나타난 변화다. ‘전태일’을 단순히 부정하기보다는 자기들 멋대로 ‘재해석’해서 오히려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데 이용하려는 목소리가 그것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의 “중소기업의 주 52시간제를 유예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 김웅 의원의 "전태일 정신은 보수의 이념과 다르지 않다"는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책략’은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내세워 조직된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상황과 통합됐다. 이에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열악한 노동자와 청년들을 위해서’라며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조건을 파괴하는 각종 개악을 추진하고 화물연대, 조선소 하청 노조, 건설노조에 대한 살인적 공격과 탄압을 펼쳐왔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무법천지 노조공화국”, “민노총은 시대의 괴물”,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 등등의 화살을 쏘아댔다. 특히 ‘건폭몰이’ 과정에서 건설노조원 양회동 씨가 분신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의 ‘활약’은 악랄했다. 조선일보는 또다시 ‘불순 세력이 죽음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필했다’는 가짜뉴스로 고인과 유가족의 피멍 든 가슴에 칼을 꽂았다.

윤석열 시대 2년 반이 지난 지금 실질임금 인상률, 노조 조직률, 노동자 간 임금 격차, 비정규직 증가 비율 등 모든 지표의 심각한 후퇴는 더 어렵고 힘든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더 큰 고통이 가해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일보가 힘을 실어 온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의 필연적 결과이다.

이 상황에서 조선일보는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한번 ‘노동시장 이중구조론’을 문제 삼는 기획 연재를 시작했다. 이것의 의도가 열악한 노동자들의 조건 개선이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으로 “수출과 세계 경쟁력에 보탬”이 되려는 것에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상위 12%의 노동자들만 대변하는 민주노총이 하위 88%의 고통을 방치하며 상생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노조 혐오를 부추기는 게 이번 기획의 의도라는 것은 각 기사마다 열광적으로 달리는 ‘민노총을 없애야 한다’는 댓글들을 봐도 알 수 있다. 반면에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만든 핵심 책임자인 재벌들은 이 기사들에서 '모범적인 상생과 연대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이래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며 더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전태일 3법, 노란봉투법 등 하위 88%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핵심적 법과 제도를 한사코 가로막아 왔다. 즉, ‘아무리 반노동자적인 족벌언론이라도 그 영향력을 이용해서 더 열악한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눈감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변명으로 전태일재단의 행위를 설명하거나 변호해주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다.

둘째로 봐야 할 것은 전태일재단에서 나타난 변화인데, 주목할 것은 전태일재단에서 영향력이 크고 이번 공동 기획을 주도했다는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다. 오랜 노동운동 활동가인 한석호 사무총장은 문재인 정부 때 소위 ‘조국 사태’를 거치며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더니 검언 카르텔 쪽으로 기울며 진중권 등과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규직 노조에 대한 반감으로 발전시키던 한석호 사무총장은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은 윤석열과 조선일보에 대한 호감으로 발전시켰다. 스스로 말한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도긴개긴이다”는 ‘기계적 양비론’에 따르더라도, 둘 다에 반대하는 게 맞지만 그는 기묘하게도 기득권 우파와 타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의 조선일보 인터뷰 화면 갈무리

“이제는 그만, 진보 외투를 벗는다”고 하면서 족벌언론들에 나와서 민주노총을 공격하고, “윤 대통령이 이중구조 문제를 화두로 던졌을 때 박수를 쳤다. 취임사에서도 ‘연대’라는 말을 여러 차례 쓰더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긍정 평가하고 윤정부의 '상생임금위원회'에 들어갔다. 나아가, 국민의힘 언저리에서 자리를 노리던 김경율 등과 어울리더니, 결국 이번에 조선일보와 공동 작업의 다리를 놓았다.

이것은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 등의 사례와 함께 검언 카르텔의 조국 마녀사냥에 동조하며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자’고 강조하던 진보 인사들이 어떻게 길을 잃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여러 사례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한석호 사무총장의 힘이 강하다고 해도 전태일재단의 구성원들이 이것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한 것도 참으로 안타깝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사실, ‘전태일 정신’을 들먹이다가 어느새 그 이름을 팔아서 기득권 우파 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라고 불리던 재야인사 장기표 씨와 ‘전태일과 함께 활동한 동료’라던 김준용 국민노총 사무총장은 이제 족벌언론의 단골 출연자나 우파 정당의 단골 출마자가 돼 있다.

한석호 사무총장이 그 길을 뒤따르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는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전태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전태일 또한 무엇이라도 했을 것이다”라면서 자신의 변화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던 전태일 열사가 반노동자적 족벌언론의 우두머리인 조선일보가 윤석열 정부의 노동운동 공격을 돕기 위해 마련한 기획에 협력했을 것이라는 생각처럼 전태일 정신에 대해 잘못된 해석과 모독은 없다.

 

전태일재단은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해서 조선일보 사주일가의 불로소득부터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 - 김의겸 의원실 자료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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