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장 곳곳에 울려 퍼지는 ‘좋빠가’ 구호
학폭조사관제도·늘봄학교·의대생 증원 '졸속'
여과과정 없고, 총선 앞 부풀리고 앞당기고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노자가 한 말이다. ‘큰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는 뜻이다. 큰 나라를 다스릴 때 생선 굽듯이 하란 것도 희한한데, 큰 생선이 아닌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는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
연약한 작은 생선은 센 불을 갖고 덤비면 금방 까맣게 타 버린다. 작고 여린 생선은 아무리 약한 불이더라도 제 때에 뒤집어주어야 한다. 시간을 갖고 조심스럽게 생선을 구워야 바스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생선 굽기의 도(道)요, 통치의 도라는 게 노자의 가르침이다.
센 불에 마구 뒤집어 생선 굽는 식의 교육정책
이렇게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통치 분야 중에 제일은 교육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의 이유와 목적이 바로 작고 여린 아이들의 발전과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선 굽기의 도와 상반된 교육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시절 재미를 본 ‘좋아 빠르게 가!’(좋빠가) 구호가 마구잡이식 정책으로 구현되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오는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전국 1만 3000여 개의 초중고에는 퇴직자들 1955명이 찾아온다.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들이다. 그 동안 교사들이 맡았던 학폭 사안조사를 대신 맡기 위해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사람은 바로 퇴직 경찰이다. 퇴직 경찰 가운데엔 온갖 수사기법을 동원해 범인에게 수갑을 채운 ‘수사의 달인’이 많을 것이다. 경찰에서 징계를 받는 대신에 자진 퇴직을 선택한 ‘처세의 달인’들도 끼어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이들이 우리 아이들의 학폭 ‘수사’를 맡게 된 것이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는 그 목적 조항에 다음처럼 적혀 있다.
“이 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학폭의 경우 수사와 처벌, 단죄가 아닌 선도, 분쟁조정(화해), 건전한 사회구성원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직 시절 처벌, 단죄를 목적으로 수사를 해온 퇴직 경찰의 학교 출현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조사관 매뉴얼’도 없이 학폭 조사에 나서려는 퇴직 경찰들
문제는 이런 학폭 조사관들 상당수가 특별한 여과 과정도 거치지 않고 뽑혔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기도교육청 소속 2개 교육지원청은 면접조차 보지 않고 이들을 뽑았다.
학생들을 만나기 위한 연수 또한 단 며칠에 그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새 학기를 나흘 앞둔 27일 현재 학폭 조사관들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만든 ‘학폭 조사관 매뉴얼’조차 받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학폭 조사의 방법과 내용이 실린 것으로 보이는 이 지침이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이 정책이 벼락치기 식으로 추진됐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불과 두어 달 전에 학폭 조사관제도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7일 ‘학폭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SPO) 역할 강화 방안’ 브리핑에서다.
이 발표는 이로부터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교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한 교사가 ‘학폭에 따른 교사 업무부담’을 호소하자 즉석에서 “SPO(학교전담경찰관) 확대 방안을 검토하라”, “선생님들이 학교폭력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는 게 당시 언론보도 내용이다.
이런 대통령의 발언 뒤에 단 한 차례의 시범실시도 없이 학폭 조사관제도가 곧바로 강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국교육직원노동조합과 좋은교사운동이 이미 ‘전면 재검토, 시행 연기’를 촉구했다. 심지어 일부 시도교육청 학폭 담당자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새 학기를 앞두고 우리 아이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도 있는 ‘폭탄정책’이 학교에 갑자기 던져진 모양새다.
총선 눈 앞 부풀리고 앞당긴 늘봄학교 정책, 의대생 증원 정책
부풀린 초등학생 늘봄학교 정책과 의대생 증원 정책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당초 계획을 앞당기는 식으로, 하나는 그 규모를 의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레 키웠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서다.
늘봄정책은 여태껏 해온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합치고 강화한 것이다. 문제의식은 틀리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새 학기 시작을 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시행시기를 갑자기 한 학기 이상 앞당겼다는 것이다.
지난 2월 5일 윤 대통령은 한 초등학교에서 연 민생토론회에서 “학부모의 짐을 덜어드리겠다”는 말을 했고, 이 장관은 같은 날 늘봄학교 한 학기 조기 시행 정책을 내놨다. 당장 3월부터 전국 2700개 초등학교에서 늘봄을 확대 시행하고, 2학기부터는 전체 초등학교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모든 졸속 정책이 그렇듯, 늘봄학교 또한 인력과 장소, 예산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아우성이 초등학교 주변에서 들려오고 있다. 대부분의 교원단체들과 학교비정규직노조, 교육청노조가 반대와 우려 성명을 냈다. 늘봄정책 조기 시행방안은 뚝딱 나왔지만, 정작 이를 실행할 인력들이 ‘졸속 추진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늘리겠다고 한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국민들 대부분은 찬성하고 있다. 문제는 속도와 규모다. 속도가 빠르고 규모가 대학이 감당 앞서 지난 2월 22일 교육부는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오는 3월 4일까지 2025못할 정도로 크다면 이런 정책은 잡소리만 커지고, 성공 가능성은 떨어진다.
지난 2월 22일 교육부는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에 공문을 보내 오는 3월 4일까지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신청해달라고 했다. 현재 의대정원은 3058명이다. 이를 1년 사이에 갑자기 2000명 늘려 5058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사와 의대생은 물론 의대 학장과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원장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들은 결국 “오는 3월 4일까지 예정된 의대정원 신청 기간을 연기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다.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학생 정원을 늘리는 것이 대학 수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데도 의학교육 책임자들이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 ‘표퓰리즘’의 대상 아니다
40개 의대·의전원 학장·원장들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2월 26일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학생들의 불이익을 예방하고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정원 신청 마감을 사회적 합의가 도출된 이후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표현은 부드럽지만, 속도와 규모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배어나온다. 만사 다 제치고, 대학이 과연 이런 의대생 증원 규모를 감당할 수 있을까?
교육은 사회의 보배인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기에, 그 어느 분야보다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더디 가더라도 사람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교육정책 또한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스럽게 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점에서 표를 의식한 인기영합주의인 ‘표퓰리즘’ 정책, ‘좋빠가 정책’이야말로 교육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