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뮌헨안보회의 '한국 불참'도 대통령 순방 탓?
블링컨-왕이 "미‧중 한반도 특사들 접촉 유지"
한반도 문제 직접 당사자 남‧북한은 종속변수?
왕이, 미국의 대북한 압박정책 전환 주문
"반성하고 북한의 합리적 우려 응답하라"
G7외무 성명 "북한 무기 러 이전 규탄"
안보 분야 세계 최대 국제행사인 뮌헨안보회의(MSC)가 18일 막을 내렸다.
독일 뮌헨 바이어리셔호프 호텔에서 16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제60차 뮌헨안보회의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이삭 헤르초크 이스라엘 대통령 등 정부 수반 50여 명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포함한 외교‧안보 장관급 인사 100여 명이 참석했다.
세계 최대 뮌헨안보회의 폐막…한국은 '불참'
G7외무 성명 "북한 무기 러시아 이전 규탄"
이 회의는 전통적으로 대서양의 안보협력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올해의 핵심 주제는 당면한 국제사회의 최대 이슈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이었다. 또한 미국 공화당의 대선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잇따른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 위협 발언 등에 대한 대책도 논의됐다. 서방 선진 7개국(G7) 외교부 장관들은 무기 이전 등 북한-러시아 간 군사협력 문제를 다뤘으며, 미국-중국 외교장관들은 북핵 및 한반도 상황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이처럼 동맹이나 북핵과 한반도 현안이 다뤄질 게 뻔히 예상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한국 관련 내용을 '귀동냥'을 하는 처지가 됐다. 작년 2월 회의에는 당시 박진 외교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관한 패널 토론에 참석해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소개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우리 대표단이 불참한 건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러시아나 이란, 북한처럼 초청받지 못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우리와 관련된 현안 토의가 없더라도, 이런 대규모 다자 국제행사에 참석하면 세계 각국의 정상과 장관들을 한꺼번에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조태열 외교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 갓 넘은 시점이었던 만큼 뮌헨에 날아갔다면 현지에서 블링컨과 왕이,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포함한 각국 파트너들을 만나 상견례도 하고 친분을 쌓았을 것이다. 뭣보다 냉랭한 한‧중 관계를 복원하는 차원에서라도 중국의 왕 부장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조 장관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알면서도 못 간 사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외교장관 불참, 대통령 순방 탓인 듯
조태열, 내일 브라질행…한‧중 회담 불발
그 사정도 18일부터 일주일 예정됐다가 출발 불과 나흘 전 '무산' 소식이 전해진 윤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 덴마크 공식방문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뮌헨안보회의는 16~18일 사흘간 예정돼 있었고, 외교장관이 꼭 수행해야 하는 윤 대통령의 순방은 18일부터여서 일정이 겹치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윤 대통령의 순방이 예정대로 진행될 줄 알고 뮌헨안보회의 참석을 포기했지만, 막바지에 순방이 무산되면서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조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21~22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다. 브라질 G20 회의에는 왕 부장은 불참할 예정이어서 조-왕 회동은 또 불발되게 됐다.
블링컨과 요코 등 G7 외교장관들과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7일 뮌헨안보회의 회의장에 별도의 회담을 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이전을 규탄하는 한편, 러시아의 핵‧탄도미사일 관련 기술, 재래식 무기나 이중 용도 물품의 북한 이전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G7 외교장관들은 이날 올해 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타야니 장관 명의로 이런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블링컨-왕이 "미‧중 한반도 특사들 접촉 유지"
한반도 문제 직접 당사자 남‧북한은 종속변수?
미국의 블링컨과 중국의 왕이는 16일 뮌헨에서 회동하고 한반도 문제를 협의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는 "양측은 우크라이나 위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충돌, 한반도, 그리고 다른 지역적 분쟁 이슈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발표했다. 눈길을 끈 건 "양측의 한반도 특사들 사이에 접촉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한 부분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정작 직접 당사자인 남한(한국)과 북한(조선)은 종속변수로 전락할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블링컨이 북핵 및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어떤 말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핵‧미사일 개발과, 무기 거래 등 북‧러 간 군사협력에 우려를 표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 대화에 복귀하도록 중국에 영향력 행사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왕 부장의 답변은 미국의 기대와는 달랐다. 도리어 미국의 대북한 정책 전환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왕 부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이 대조선(북한) 정책을 반성하고 행동을 취해 조선의 합리적인 외교 우려에 응답해야 한다"며 "쌍궤병진(비핵화와 북미평화협정 동시 추진) 사고에 따라 반도(한반도)의 장기적 안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여기저기서 전쟁위기설이 나돌 만큼 일촉즉발의 한반도 상황을 조성한 주된 책임이 핵‧미사일 위협을 하는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와 같이 북한에 '일방적 항복'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할 때까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는 기존의 대북 정책을 바꾸라는 얘기다.
왕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 전환 주문
"반성하고 북한의 합리적 우려 응답하라"
왕 부장은 17일 뮌헨안보회의 중국 세션 기조연설에서도 "우리는 조선(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지속적으로 촉진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의 최우선 순위는 악순환을 막고, 관계 당사국들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결하며, (한반도) 상황의 진정과 안정을 촉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은 새해 들어서도 계속해서 남북한의 관계 개선 지지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중국의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한을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핵전쟁 시 한국 전 영토 평정" 등 대남 정책의 근본적 전환 방침을 밝힌 것과 관련해 "조선의 관련 정책 선언은 조선의 주권 사항이고, 중국은 일관되게 조선과 한국의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반도 형세가 오늘에 이른 데는 원인이 있는데, 긴장은 각 당사자의 공동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각 당사자는 정치적 해결이라는 큰 방향을 견지하며 반도의 평화·안정을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날인 6일에도 중국은 왕이-조태열 통화에서 "현재 반도(한반도)의 긴장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우리는 모든 당사국이 냉정함과 자제력을 유지하면서 긴장을 격화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고, 각자의 합리적 우려를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