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위험의 외주화… 퇴직 경찰들의 학교 진입
대통령 지시로 급조된 ‘학폭 조사관제’
벼락치기 선발, 일주일 겉핥기 연수
수사 전문가일지언정 학폭 전문가 아냐
화해와 중재 시간까지도 빼앗아 갈 위험
“학생들이 ‘학교폭력(학폭) 조사’를 이유로 난생 처음 보는 어른과 독립된 공간에서 마주해야 한다. 얼마나 무섭겠느냐.”
지난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제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변성숙 경기도교육청 학폭 담당 변호사가 이같이 말하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은 이런 우악스런 조사 분위기에 주눅들어 울음을 터뜨릴 지도 모른다. 경기도교육청 학폭 담당자도 올해 3월부터 학교에 들어올 조사관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대통령 지시로 급조된 ‘학폭 조사관제’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전국 1만여 개 초중고엔 난생 처음 보는 외부인이 찾아온다. 전국 교육지원청 교육장들이 뽑을 2700명에 이르는 조사관들이다. 이번에 신설되는 조사관제에 따라 퇴직 경찰 또는 퇴직 교사 등으로 구성된 조사관이 그동안 교사들이 맡아온 학폭사안 조사업무를 넘겨받기 때문이다. 학교 자체로 결정해온 학교장의 학폭 자체 종결 여부 판단도 조사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토록 했다. 지난해 학폭 건수는 6만 2052건이었는데 이중 60%에 이르는 학교장 자체 해결을 결과적으로 가로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자체 해결되지 않은 학폭 사건은 학교폭력심의위에 넘겨지고, 그 처분 결과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된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이같은 내용을 지난해 12월 7일 ‘학폭 사안 처리 제도 개선 및 학교전담경찰관(SPO) 역할 강화 방안’ 브리핑에서 발표했다. 이 발표는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교사들은 만난 자리에서 한 교사가 ‘학폭에 따른 교사 고통’을 호소하자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게 언론 보도 내용이다.
“선생님들이 학교폭력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SPO(학교전담경찰관) 확대 방안을 검토하라.”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학교전담경찰관의 인력 부족을 언급하면서 ‘퇴직 경찰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말이다. 왜 교사들이 학폭 관련 일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일까? 학생 생활지도는 교사의 몫이고, 학생 생활에서 벌어진 학폭이라면 교사의 예방, 개입, 지도는 당연한 것 아닐까?
결국 교육부는 두 달만에 퇴직 경찰관 등을 활용한 학폭 조사관 방안을 내놓았다. 윤 대통령의 발언 전후로 정부 차원에서 조사관제에 대한 어떤 공청회나 연구조사도 사실상 없었다. 일단 윤 대통령 지시를 떠받드는 상황으로 일이 전개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같은 방안에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고, 대부분의 교원단체들이 손뼉을 쳤다. 학폭 조사과정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기 십상인 교사들이 학폭조사 외주화, 다시 말해 ‘학폭 위험의 외주화’에 찬성하고 나선 셈이다.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봉사직 수준의 조사관들은 아동학대 신고 등에 더 노출될 수 있다. 학부모 악성 민원 또한 이들을 겨냥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학부모 단체들은 어쩐 일인지 의견을 내지 않은 채 지켜만 봤다. 한 학부모단체 대표는 나에게 “우린 선생님들이 조사관제에 대해 모두 찬성한다고 해서 학폭 문제 해결을 위해 좋은 것인 줄만 알았다. 솔직히 공청회나 토론회 하나 제대로 없이 쏜살같이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에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퇴직 경찰이 맡게 될 건당 18만 원짜리 봉사 위촉직
현재 전국의 교육장들은 조사관을 뽑고 있다. ‘모든 위험의 외주화’가 그렇듯 당연히 조사관도 정규직이 아니다. 그럼 비정규직일까?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사건 하나 당 18만 원(서울)을 주는 위촉 봉사직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매우 위태로운 일자리 형태인 것이다.
서울의 경우 오는 15일 합격자를 발표한 뒤 19일부터 일주일 간 역량강화 연수를 벌인다. 그런 다음 곧바로 학교에 투입할 예정이다. 벼락치기 정책에 이은 벼락치기 선발과 겉핥기 연수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 뽑는 조사관들 상당수가 퇴직 경찰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범죄자 때려잡는 전문성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생 생활지도 전문성은 거의 없다는 게 교육계의 상식이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의 학교평화연구단에서 활동하는 강균석 교사는 “경찰은 수사 전문성은 있지만 이는 성인 범죄자에 대한 것”이라면서 “초1부터 고3 학생을 상대할 전문성을 갖춘 경찰은 아마 없을 것이다. 퇴직 경찰들은 더 그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강 교사는 다음처럼 말했다.
“경찰은 수사 전문가이지 학폭 전문가는 아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 학폭문제 해결의 핵심은 화해와 중재다. 화해와 중재의 전문성은 교사에게 있으며, 따라서 학폭 전문가는 교사이고, 외부 전문가들이 교사를 도와주는 형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외부전문가로 교육부가 내세운 조사관들이 교사의 학폭에 대한 화해와 중재 시간까지도 빼앗아 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엔 학폭 예방 관련 법률에 따라 학교는 곧바로 자체 종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학폭이 발생하는 순간 일정 요건 이상이 아니면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했다. 이 비율이 서울의 경우 60%에 이른다는 것이 서울시교육청 통계다. 그런데 조사관제가 실시되면 ‘학교장 자체 종결’ 또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조성백 서울시교육청 학폭담당 장학사의 말이다.
“지난 해 서울 초중고 학폭 9000여 건 가운데 60% 정도가 학교장 자체 해결이고, 80% 정도가 경미한 조치에 그쳤다. 조사관제도로 인해 이러한 학교장 자체 해결 사안까지 모두 외부의 ‘조사관’에 의해 사안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법적 해결에 과(잉)의존하게 되어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한 사안도 심의위원회 개최라는 잘못된 결과로 악화될 수 있다.”
그러면서 조 장학사는 “서울의 경우 330명의 조사관 수당 지급에만 연간 약 36억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학교폭력 예방과 갈등 조정과 화해를 위한 정책에 투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나타냈다. 조 장학사는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조사관제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당사자다.
싸우고 금방 화해하고, 또 싸우는 아이들
나는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서울지역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수업 시간에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퍽퍽’하는 소리였다. 뭔 소리냐고? 아이들끼리 주먹다짐하는 소리다. 사실 학폭법에 따라 원리원칙대로 적용하면 이것은 모두 물리적 학폭 사안이다. 담임교사는 학폭 관련 사안 인지 즉시 학교장에게 보고하고 사건으로 접수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교실에서 하루에도 서너 건씩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안이 일어난 뒤 한 시간이 가기 전에 대개의 아이들은 언제 싸웠느냐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다시 친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원리원칙대로 학폭으로 다룬다면 대한민국 학교는 벌써 망했을 것이다. 나는 20년 교직생활 중에서 학폭 사안을 신고한 경우가 한 건도 없었다. 위에서 설명했듯 학폭 사안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동 화해하거나 내가 화해를 종용해 화해했기 때문이다.
학교장 자체종결제 또한 이의 연결선상이다. 학폭 사안이 접수됐더라도 교사들은 가·피해자 상담을 통해 화해 가능 여부를 먼저 따진다. 이것 또한 골든타임이 있다. 하루 이틀이 지나가고 학폭 변호사까지 개입하면 화해는 물 건너가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폭 변호사에 더해 조사관까지 개입하게 되었다. 조사관 조사를 의무로 거친 뒤에서야 비로소 학교장 자체 종결이 가능하기에 학생들 간 화해의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된 것이다.
어쨌든 ‘학폭 위험의 외주화’는 강행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시했으니까. 하지만 조사관제는 학교와 교육을 더 멀어지게 만들지 않을까? 위험이 있다면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위험을 떠넘기기 위해 또 다른 ‘위험받이’인 조사관을 학교에 불러들인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