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태풍' 영향권에 진입한 한반도…'시계 제로'

[이대로면 트럼프] ③ 처지 바뀌는 윤석열과 김정은

중국과 대결, 북·러와 화해, 한·일과 긴장 예상

'워싱턴선언' 이후 급증 미 전략자산 비용 난제

"김정은, 북핵 능력 확대, 과시하는 길 택할 것"

한미, 말로는 '조건 없는 대화'…군사 압박 주력

2년 남은 방위비분담 협상 착수…"전례 없다"

트럼프 '북핵 용인·동결-경제 지원' 보도 파장

2024-01-27     이유 에디터

값만 맞으면 무엇이라도 사고파는 장사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집권 1기에 봤듯이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란 깃발을 걸고 대외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이라도 봐주지 않고 '불량국가'와도 흥정한 게 그였다. 럭비공보다 더 종잡을 수 없고, 초강대국인 미국의 힘을 대놓고 과시하는 수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등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이런 그가 꼭 1년 후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귀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는 '트럼프 태풍'의 영향권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3일 뉴햄프셔주 내슈어에서 열린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4. 01. 23 [AP=연합뉴스]

'트럼프 태풍' 영향권에 본격 진입한 한반도

2년 남은 방위비분담협상 착수…"전례 없다"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2026년부터 적용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을 서두르기로 했다는, 외교 소식통을 인용한 연합뉴스의 16일 자 보도였다. 지금의 11차 SMA 만기를 근 2년 남겨둔 시점에 차기 협상에 착수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트럼프 복귀를 우려한 움직임이란 말이 나온다. SMA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에서 한국의 분담 규모를 정하는 협정이다. 11차 SMA 협상은 트럼프 1기 때 시작됐다. 트럼프는 동맹인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며 분담금을 기존의 5배로 올리라고 압박했지만, 당시 문재인 정부가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협정 공백 사태를 빚기까지 했다. 2021년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에야 타결되는 곡절을 겪었다.

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랑 트럼프 복귀 전 차기 SMA 협상을 매듭짓는다 해도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과거 행태를 보면, 트럼프는 그냥 넘어가지는 않지 싶다. 신현실주의 국제관계 이론의 대가인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포린 폴리시> 22일 자 기고를 통해 "트럼프는 1기 때 그랬듯이 특히 미국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을 향해 불규칙하고 변덕스럽고 천박하며 대결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는 미국의 보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거듭 비난했던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좀 더 대결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말해 한국과 일본도 나토와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으로 봤다. 나아가 월트는 "트럼프는 돈을 따를 가능성이 더 크다"고까지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8일 미국 매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도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 악수를 하고 있다. 2023.8.18. AP 연합뉴스

캠프 데이비드 합의…한·미·일 군사협력 '제도화'

트럼프 백악관 귀환 우려한 '대못 치기' 일환

트럼프 복귀를 우려한 조치는 또 있었다. 지난해 한·미·일 3국 정상의 8·18 캠프 데이비드 합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고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3국 군사협력 제도화 등을 공약한 내용이다. 트럼프가 재집권해도 군사동맹으로 향하는 3국 협력의 제도적 틀을 깨지 못하게 아예 '대못'을 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캠프 데이비드 회의나 합의문은 트럼프가 다시 오더라도 이를 유지한다는 암시로 가득하다"고 전했다. 정상 회동을 이틀 앞둔 16일 실무작업을 주도했던 커트 캠벨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현 국무부 부장관)도 브루킹스 연구소 대담에서 "정상회의에서 볼 것은 현재와 미래 모두 3국 간 관계를 굳히려는 일련의 매우 야심 찬 구상"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이미 바이든 팀은 어떻게든 대선에서 승리할 각오보단 '패배할 결심'을 했다고 느낄 여지를 남긴 셈이다.

작년 4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워싱턴선언'의 운명도 순탄치 않을 듯하다. 선언은 북핵 위협에 대응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핵우산)를 대폭 강화하고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창설을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양국은 작년 7월 첫 회의를 연 것을 계기로 NCG 내실화에 주력하고 있다. 아킬레스건은 핵 확장억제, 즉 항모전단과 전략핵잠수함(SSBN), 전략폭격기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나 연합훈련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다. 그동안 미국은 미군 훈련의 일환으로 보고 비용을 댔으나, 트럼프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게 문제다. 한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면서 상당 부분을 한국에 떠넘기려 할 수 있다. 대통령 시절인 2018년 당시에 전략자산 전개 비용으로 300억 달러(약 40조 원)을 요구했다는 미 언론 보도도 있었다.

미국은 확장억제를 대폭 강화하는 워싱턴선언의 이행 차원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동 횟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전략자산 출동 횟수가 증가하면 그만큼 비용도 증가한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스콧 슈나이더 선임 연구원은 지난해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11월 29일 자)를 통해 "전례가 어떻든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눈앞의 사건을 활용하는 데 집중하는 트럼프의 거래주의가 여전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정책 뿌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동맹의 가치를 내세우며 한국 등과 공유해온 바이든과 모든 사안을 비즈니스로 대하는 트럼프는 서로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승선했다. 2023.7.19 [대통령실 홈페이지]

'워싱턴선언' 이후 급증한 미 전략자산 비용 난제

트럼프, 6년 전에 이미 300억 달러 요구 보도도

당연히 무역 분쟁도 예상된다. 트럼프 2기 무역전쟁의 핵심 표적은 "치명적 적수"(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인 중국이지만, 한국과 일본, 유럽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안전지대에 있는 건 아니다. 도리어 동맹국에 더 혹독한 청구서를 들이밀 수도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일률적으로 10%의 관세율을 추가로 매기는 '보편적 기본관세'를 도입하고 중국·한국 등 대미 무역흑자가 큰 국가들에 추가로 징벌적 세율 부과를 검토 중이다. 가뜩이나 대중 무역적자로 고전하는 윤 정부가 미국의 무역흑자 축소 압박에 처할 우려가 크다. 트럼프는 또한 '눈에는 눈' 식으로 상대국과 '동일한'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 상호무역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에 올인하며 나름 '브로맨스'를 즐겼던 윤 대통령에겐 좋은 시절은 저물고 스타일이 아주 딴판인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 시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이 윤 대통령에겐 마뜩하지 않다.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진지하게 나돌 만큼 남북 간 군사적 대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상호 소통 채널도 전면 차단된 상황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거래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6년 전 김정은-트럼프를 중재했던 당시 문 대통령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수용할 뜻이 없는 한 북·미 협상을 재개해선 안 되며 대북 억제·압박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설득하겠지만, 트럼프가 그 말을 귀담아들을 거란 보장은 없다. 필요하다면 윤 대통령을 물리치고 김 위원장과 직접 대좌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트럼프란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일 협상마저 성사된다면 윤 대통령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북한은 21일 오후 10시 42분 28분께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신형위성운반로케트 '천리마-1'형에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조선중앙TV가 22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지에서 발사 상황을 참관하고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과 연관기관의 간부들과 과학자, 기술자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11.22. 연합뉴스

"김정은, 북핵 능력 확대, 과시하는 길 택할 것"

한미, 말로는 '조건 없는 대화'…군사 압박 주력

물론 트럼프가 다시 만나잔다고 김정은이 학수고대했다는 듯이 버선발로 뛰쳐나올 리는 없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어서다. 슈나이더 연구원은 "김정은은 더는 트럼프와 관계를 맺을 필요를 못 느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그런 판단의 근거로 △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에 반대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더 강력한 지원과 중국의 지지 △ 환상에서 환멸로 뒤바뀐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의 '굴욕'을 들었다. 그래서 슈나이더는 김 위원장이 한동안은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북한의 능력을 확대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길을 택할 것으로 봤다. 추후 트럼프와 흥정하더라도 최대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앞서 북핵 최고 권위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도 작년 9월 21일 조엘 위트 스팀슨 센터 수석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2022년에 접어들면서 대미 관계 정상화란 30년 정책을 포기하고 러시아, 중국과의 전략적 연계 추구로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진단한 바 있다. 더 나아가 헤커는 지난 11일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함께 '38 노스'에 공동기고를 싣고 "우리는 김정은이 1950년 할아버지 김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전쟁으로 가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믿는다"고 말해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제기했다. 북한이 받을 수 없는 CVID만을 고집하고 말로는 '조건 없는 대화'를 되풀이하며 군사적 압박에 주력하는 한미 양국에 던지는 경고로 들렸다.

 

지난 19일 북한이 고체연료를 사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했다. 2023.12.19. [조선중앙TV화면] 연합뉴스 

트럼프 '북핵 용인·동결-경제 지원' 보도 파장

중국과 대결, 북·러와 화해, 한·일과 긴장 예상

지난달 13일 미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주목할 만한 기사를 실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2024년 승리 때의 대북 접근법 점검을 검토 중이다'란 기사에서 재집권한다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고 추가 핵폭탄 제조를 중단하는 대신,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일정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주는 협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CVID를 요구해온 한미 양국의 스탠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큰 파장을 불렀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몇 시간 후 트럼프는 자신의 SNS를 통해 "소설이자 허위 정보"라고 부인하면서도 "그 기사에서 정확한 유일한 내용은 내가 김정은과 아주 잘 지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북핵 용인·동결-경제 지원' 아이디어 자체를 꼭 집어 부인하지 않은 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한 측근의 말을 빌려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 타결에 꽤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이런 고민의 배경에는 "그가 보기에 무의미한 (핵)무기 협상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더 큰 임무인 중국과의 경쟁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 트럼프의 머릿속은 "치명적 적수"인 중국과의 대결 구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다. 지금 바이든이 동맹 수준의 한·미·일 3국 연대를 바탕으로 중국의 협조를 얻은 뒤 북-러에 대한 압박을 추구한다면, 트럼프는 중국과 대결하기 위해 북-러와의 관계를 풀고 동맹인 한·일에는 안보 비용과 무역적자 대책을 압박하는 길을 택할 공산이 크다. 맹목적인 '가치 이념 외교'로 포스트 바이든 시대의 외교 현안들을 윤 대통령이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 장면(연합뉴스) 2021.5.12 [외국문출판사 화보 캡처.

트럼프 귀환, 윤석열엔 '도전'…김정은엔 '기회'

진지한 협상 원하면 김정은 마다할 까닭 없어

귀환한 트럼프가 '진지하게' 북핵 협상을 원한다는 점이 확인되면 김정은은 마다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북한의 앞길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은 김정은도 잘 안다. 헤커의 말대로 북한이 대미 관계 정상화란 지난 30년의 정책을 포기하고 중-러 밀착 쪽으로 근본적 정책 전환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북한이 원해서라기보단 다른 수가 없어 밀려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심 김 위원장은 트럼프의 귀환을 고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이 보기에 트럼프는 대화와 협상은 완전히 단절된 채 군사적 대결과 전쟁 위기 지수만 높아가는 한반도 대결 구조에 돌파구를 만들 '유일무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서로 "로켓맨" "노망난 늙은이"란 막말과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란 험한 말을 주고받았던 트럼프와 김정은은 그들만의 우정을 쌓았고 결렬된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에도 개인적 친분은 이어갔다. 일례로 트럼프는 작년 9월 8일 사우스다코타주 래피드시티에서 열린 공화당 모금행사 연설에서 김 위원장에 대해 "터프한 친구였고 스마트한 친구였다. 그는 오직 핵무기 모으기를 사랑했고, 그게 그가 한 것이다"라면서 "우리는 한번 만나고 그 모든 일을 시작하고선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지냈다"고 말했다. 앞서 작년 4월 뉴욕 검찰청 신문록에서도 트럼프는 "내가 북한과 상대하지 않았으면 핵 홀로코스트(대량학살)를 겪었을 것이다. 지금도 핵전쟁을 보고 있을 것이다"라고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섰던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재집권하면 다시 한번 나설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귀환은 윤 대통령에겐 새로운 도전으로, 김 위원장에겐 물 샐 틈 없는 한·미·일 압박 구도에서 벗어날 기회로 각각 작용할 듯하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