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재판거래' 조태열 "사법농단 동의 못해"

외교 장관 인사청문회서 의혹 전면 부인

조태열, 법원행정처·김앤장 만났으면서

"재판거래 안해" "국익 위한 것" 모르쇠

메모, 증언 등 드러났는데도 "가담 안해"

"술은 마셨는데 음주운전 안했단 것이냐"

2024-01-08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입장하고 있다. 2024.1.8. 연합뉴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재상고심을 두고 '재판거래'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 "이 문제를 사법농단으로 정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부인했다.

'강제동원 재판거래'는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의도적으로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배소 재상고심을 지연시켰다는 의혹이다.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원고승소 취지로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사건은 파기환송심 승소를 거쳐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왔지만, 대법원은 차일피일 판단을 미뤘다. 재판 지연으로 인해 피해자들은 2018년 11월에 와서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이춘식 할아버지를 제외한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 등 나머지 원고들은 이미 사망해 승소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됐다.

이 같은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 지연의 배경에는 외교부와 양승태 사법부, 일본 전범기업의 대리인이었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검은 카르텔'이 있었던 것으로 강하게 의심된다.

강제동원 재판 지연 시도는 외교부가 2012년 5월 파기 환송된 대법원 판결의 확정을 막아달라는 일본 정부의 요구를 법원행정처에 '고충'이라는 표현을 써서 전달하며 시작됐다. 이들 '검은 카르텔'은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전원합의체 회부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송달을 미뤄 시간을 끄는 방법 등으로 판결을 지연시켰다.

김앤장 소속 변호사는 지난 2019년 8월 사법농단 재판에서 "(대법원이)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小部)에서 그냥 선고한 것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불만스러워했다"면서,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강제징용 재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려면, 김앤장 측이 외교부 의견서 제출을 요청해달라"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실제 대법원은 2015년 1월 민사소송 규칙을 개정해 정부부처가 사건 관계인으로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김앤장 측 요청을 받은 외교부는 대법원 재상고심이 진행되던 2016년 11월 18쪽 분량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는 개정 이후 정부가 의견서를 낸 첫 사례로, 당시 의견서는 외교부 2차관이었던 조 후보자의 감수를 거쳐 제출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7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3.7.17. 연합뉴스

당시 외교부는 의견서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재산을 압류할 경우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법리적으로 한국이 이기기 어려운 사안이다" "한국은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로 인식돼 도덕적 우월성까지 잃게 될 것이다" "일본기업들의 한국 투자와 비즈니스에 장애가 될 것이다" 등 일본 측 주장을 그대로 옮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외교부 2차관이었던 조 후보자는 2015년 6월, 2015년 8월, 2016년 9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만나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 문제를 협의했으며, 2015년 11월엔 김앤장 고문이었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만났다. 명백한 '이해충돌'이다. 조 후보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유 전 장관과의 만남에서 재상고심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유 전 장관은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휘한 수사팀으로부터 사법농단과 관련해 조사를 받으며 '조 전 차관에게 재상고 사건을 물어보면서 잘 진행되냐고 물었더니 조 전 차관이 대법원과도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고 해서 놀란 기억이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재판 과정에서도 '(외교부가) 대법원과 커뮤니케이션 문제 없나. 혼네(本音·본심에서 우러나온 말)로 문제 없다'는 내용이 적힌 김앤장 소속 변호사의 통화 메모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 메모는 유 전 장관이 2015년 11월 조 후보자를 만난 뒤 파악한 동향을 김앤장 변호사에게 전달한 내용 일부이다.

법원은 외교부의 의견서를 조언하고 받아주는 대가로 법관의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요구했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6월 당시 송영완 오스트리아대사에게 "전날 조태열 2차관을 만나 의견서 제출을 협의했다. 이참에 오스트리아 대사관 법관 파견을 잘 부탁드린다"고 이메일로 청탁하기도 했지만, 협의 끝에 주제네바 대표부로 법관을 파견했다.

'재판거래' 의혹 과정 전반을 보면 외교부와 사법부 고위층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과 지속적으로 긴말하게 소통했고, 이들 '검은 카르텔'이 재판 절차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조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1.8. 연합뉴스

조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의 '재판거래' 의혹 관련 질의에 "상세한 부분에 대해 답변을 하면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절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게 적절치 않다"고 회피하면서 "재판거래라고 불릴 만한 행위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부가 가졌던 고민을 사법부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며 "국익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는 게 합당한지 같이 고민했다"고 했다.

민주당 김홍걸 의원이 "외교부가 2015년 8~9월, 다음 해 10월에 자신들이 작성한 의견서 초안을 법원 쪽에 건네서 (대법원이) 첨삭을 했다고 검찰이 확인했고,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했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의견서의 형식과 구조에 관해서 의견을 물었을 뿐이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실무적 초안이 갔을 뿐이고, 거기에 대해 (법원에서) 답이 온 것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 의원이 "애타게 재판 결과를 기다리다가 돌아가신 어르신들에게 정부가 못할 짓을 한 것이다.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고 한 데 대해서도 "돌아가신 피해자 분들이 많이 계신 것에 대해서 깊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위원님이 저에게 (전범)기업을 위한 공작에 가담했다는 말씀을 했는데 40년 공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공작에 가담하겠는가"라고 했다.

야당은 조 후보자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민주당 이용선 의원은 "당시 판결을 뒤집을만한 나름의 근거와 명분에 입각한 모범답안을 법원으로부터 받아서 외교부가 전달했던 절차로 보면 완전히 재판거래, 짜고 치기"라고 했고, 김경협 의원은 "사법부 판결을 앞두고 법원행정처 차장과 후보자가 협의를 계속했다"며 "(후보자 답변은) 술 마시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이야기"라고 했다.

조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제3자 변제안에 대해선 "역대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일괄 해결됐다는 입장을 꾸준히 이어왔다"면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 대통령께서 행정부 수반을 떠나서 행정·입법·사법을 통괄하는 국가원수의 자격에서, 행정·입법·사법부와 함께 처리할 문제라는 인식 하에 용단을 내리신 걸로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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