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주장의 허술한 논리들…무엇이 더 중요한가
내년 총선의 본질은 무도한 윤석열 정권 견제
민주당만 겨냥해 벌어지는 병립형-연동형 갈등
최병천의 터무니없는 ‘아주 간단한 시뮬레이션’
국회마저 윤에 넘어간다면…그 절박한 위기감
약속 지키려 다리 기둥 끌어안고 죽은 어리석음
노무현 정신 제대로 모르는 이들의 이재명 비난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내년 총선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으며 당연히 내 삶의 질도 그 선거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대승을 거두어 무지 무능 무책임 무도한 윤석열 정권을 견제할 수 있게 되기를 갈망한다. 검사들이 점령한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마저 ‘검판동일체’의 흉한 몰골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제 삼권분립 민주체제에서 믿을 거라곤 국회밖에 없다. 탄핵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패스트트랙으로 검사정권의 시행령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것이 총선을 4개월 정도 앞둔 민주시민들의 소망이요, (그렇게 만들겠다는) 각오다.
그런데 나와 같은 정치 성향을 가진 분들 중에서도 시국 인식에 있어 나와 온도차가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내년 총선에 적용될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윤석열 정권을 쫓아내거나 최소한 견제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죽을 것 같다는 절박함보다 소수정당 육성, 다당제를 통한 정치 발전 등을 더 염두에 두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민주당만 대상으로 벌어지는 병립형과 연동형의 갈등
이들 중에는 내가 존경하는 분들도 많다. 이분들이 윤 정권에 대해 내리고 있는 평가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를 리 없다. 다만 이들은 민주당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힘을 모아야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대적 공생’을 유일한 생존 수단으로 삼고 있는 듯한 양당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국힘당에 대한 혐오 못지않게 민주당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는다. 민주당은 몸집만 크지 미련하고 게으르고 욕심만 많으므로 윤석열 정권과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것 같으니 똑똑하고 강인한 제3의 진보정치세력이 외부에서 견인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이분들은 민주당이 최소한 지난번 총선 때 시행했던 준연동형 비례제 정도는 지켜야 하며, 민주당이 그때처럼 위성정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이렇게 선거제도 개편 논란은 민주당만을 중심으로, 야당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러 걸음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이 논란을 즐기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국민의힘의 선택은 일찌감치 병립형이고 연동형을 할 경우 자신들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연동형의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원튼 원치 않든 이 논란의 주인공이 돼버린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선거라는 것은 여러분도 너무 잘 아시지만 승부 아닙니까? 이상적인 주장,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가 병립형 비례제에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왜 아니랴! 그는 누구보다도 윤석열 정권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클 것이며, 그런 윤 정권에 대한 ‘구국투쟁’에 있어 자신이 대표로 있는 민주당을 이끌고 맨 앞에 서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이런 입장을 가진 데에는 아마도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같은 정치공학자들의 분석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내기도 했다는 최 소장은 최근 이러저러한 매체들을 통해, 현행 준연동형 선거제도를 그대로 내년 총선에도 적용한다면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하고 있다.
너무 터무니없는 ‘아주 간단한 시뮬레이션’
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지역구에서 120석, 정당 득표율은 둘 다 40%로 가정하는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은 민주당은 127석,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국민의힘은 147석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지역구 당선자도, 정당 득표율도 똑같은데 20석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비례의석수 중 병립형에 해당하는 17석 중 7석을 얻을 것인데 국민의힘 위성정당은 연동형에 해당하는 30석 중 27석을 석권할 것이라는 분석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비례 47석을 전부 연동형으로 할 경우 120(민주당)-152(국민의힘)라는 더 끔찍한 결과를 예고한다.
터무니없는 분석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똑같이 40% 득표율을 올리고 똑같이 120석을 가져간다는 것은 ‘간단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미안한 말씀이긴 한데) 엉터리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 소장은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고자 1987년 이후 역대 9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3승 6패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내년 총선 승부를 반반으로 보는 것이 결코 억지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3승 6패가 아니라 1승 8패를 했더라도 내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대승을 거둘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역구에서만 163석을 얻은 2020년 총선 못지않은, 최소 과반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지역구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지금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믿을만한 여론조사들에서는 한결같이 내년 총선을 정권심판 구도로 보고 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30%대 초반에서 언제 20%대로 떨어질지 모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에 왜 겁을 먹으라는 건가. 각종 믿을 만한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이 30% 중반에서 허덕이고 있는 정당과 40% 초중반을 오르내리는 정당 지지율을 왜 굳이 40%에 맞춰 놓고 계산을 시작하라는 건가.
과반 뺏길 것 같아 연동형 포기하자는 것 아니다
그렇게 총선 대승을 예측하는 내가 왜 민주당에게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주저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은 것인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지금 윤석열 치하의 대한민국은 한 치의 방심이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 낙관적인 총선 예측은 그냥 예측일 뿐, 만일 불의의 사태로 다수당 위치를 뺏겨 국회마저 넘어가 버린다면 대한민국은 그냥 그날로 망해버릴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감. 그러므로 가능성 100만 분의 1의 위험 요소라도 피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단순히 과반을 얻는다거나 다수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180석 혹은 200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야만 국회가 제대로 검사독재정권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이런 절박한 소망에 비해 (준)연동형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너무 빈약하고 허술하다. 우선 이탄희 의원이 연동형 비례제의 조건으로 내세운 ‘위성정당 방지법안’만 해도 그렇다. 이 법안이 소수정당 육성, 다당제를 통한 정치발전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살리려면 민주당뿐 아니라 국힘당의 위성정당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47석(혹은 준연동제 30석)이 골고루 소수정당에 갈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법안 자체의 위헌성 여부를 떠나, 국힘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터에 조목조목 너무도 허술하다.
국힘당과 위성정당이 합당할 경우 국고보조금을 삭감한다고 하지만 글쎄다. 그 정도 페널티 때문에 눈앞에 굴러다니는 의석을 포기할 국힘당인가. 국힘당과 위성정당 두 당이 합당하지 않은 채 찰떡공조 정치를 하면 어쩌지? 만일 그들이 다수당이 될 경우 보조금 삭감을 무효화하는 입법을 하면 또 어쩌나? 위성정당이 소속 위원들을 차례로 제명하고 이들이 재깍재깍 국힘당에 입당한다면?
설사 민주당이 큰 단안을 내려 민주당만 위성정당을 포기하더라도 그 의석수를 영양가 있는 진보민주정치세력들만 차지하리라는 보장은 있는가. 과거 병립형에서도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투표는 정의당을 찍는 전략적 투표가 이루어지곤 했다. 만일 이번 총선에서도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이준석 등 국힘당 계열이든, 용혜인 등 진보정치세력이든, 의미 있게 뭉쳐 실체를 갖추게 된다면 지역구 투표에서 거대 양당 후보를 택했던 유권자들이 비례투표에서 이들을 택할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약속 지키려 다리 기둥 끌어안고 죽은 어리석음
이탄희 의원 말고도 연동형 비례제를 옹호하며 이재명 대표를 압박하는 어떤 정치인은 ‘국민과의 약속’을 들먹이며 “신뢰를 지키면 국민이 보답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이 약속했던) 연동형을 포기하면 참패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민주당이 연동형 때문에 소수당이 될 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겠지만 만일 소수당이 된다면 대한민국은 나락에 떨어지고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누가 하나.
상황의 변화를 살피지 않는 약속의 어리석음과 허망함을 잘 설명해 주는 중국 이야기가 있다. 옛날 미생이란 사람이 어느 날 사랑스러운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만나기로 한 그날 미생이 다리 밑에서 여인을 기다리는 중 갑자기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순식간에 개울물이 불어났다. 하지만 미생은 그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 기둥을 붙잡고 버티다가 흙탕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죽음으로써 약속을 지킨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신의를 지킨 데 대한 칭송이 아니라 미련하다는 야유와 경멸뿐이었다.
어떤 이는 이재명 대표에게 노무현을 존경한다면서 왜 노무현 정신을 따르지 않느냐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승부사’로 불리기도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의미 있는 정치를 위해 자기 개인의 안위와 이득 한도 내에서 승부수를 던졌을 뿐,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도 지금 같은 무도한 정권을 만나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더라면 어떻게든 자신의 정당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정치를 키워야 하고 다당제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지 않은가. 한때 ‘눈 떠보니 선진국’이었던 나라가 어느새 후진국으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경제가 폭망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에 전쟁의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국격 자체가 거덜나고 있는 판이다. 이런 판국에 진보정치며 다당제를 운위하는 것은, 내 귀에는 마치 산사태가 임박한 계곡 위에 지금 당장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저쪽으로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할까? 그러나 지금 그 계곡에는 돌덩어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지, 민주주의를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