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유족 손 잡아주면 된다? 민주당의 희생자 모독
김교흥 행안위장의 발언…유족들이 동정 구하는 건가
유족과 국민은 대통령 격려와 자비 호소하는 게 아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민주당 상임위장의 말에 담긴 안이한 인식
“대통령이 유족들 손 한 번 잡아주면 해결된다.”
이태원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국회의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여당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아닌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3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뒤 국회 상임위원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교흥 행전안전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손을 한 번 잡아 주시면 그분들 가슴이 봄눈 녹듯 녹을 것이다." "유족들을 만나고 참사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지워 달라"고도 했고, 유가족들의 면담 요청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유가족들을 만나라는 취지에서 한 말이지만 이 말 속에 담긴 민주당의, 최소한 민주당 일각의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대통령을 향해 동정이나 자비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선처'를 호소하고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것이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에 대해, 그 무책임한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에 대해, 아니 그 자신이 가장 큰 책임의 장본인인 대통령에 대해 희생자의 가족들로서,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대통령의 의무를 최소한이라도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참사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이전에 대통령 자신이 참사의 발생에서부터 참사 당시의 대응, 그 이후의 1년간의 사고의 은폐와 진상조사의 방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9일 시민추모대회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대통령, 유가족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찾아가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추모대회가 '정치 집회'라는 이유를 들며 끝내 그 거절한 대통령이 유가족들에게 보여줘야 할 모습은 손 한 번 잡아주고 격려하듯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죄와 책임지는 발언이며 약속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태원 참사 관련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의 입에서는 대통령의 '격려'와 '관용'을 호소하는 발언이 나왔다.
민주당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참사 이후 49재 뒤에도 나왔다. 작년 12월 16일에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에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 인사들이 불참한 것을 비판하면서 임오경 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어제 10·29 참사 49재가 진행되는 이태원 거리는 눈물로 뒤덮였지만 정부와 여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도, 총리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라면서 “잠시라도 참석해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유족의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이 그렇게 어렵나”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유족의 어깨를 두드려 주지 않았다’며 비판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주도하는 등 노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8월 31일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야권 의원 183명이 발의한 법안으로, 여당의 “결국 대통령에게 일방적인 국정운영 프레임을 씌우고 이태원 참사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정부와 여당에 비정한 프레임을 씌워 총선에 활용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강변을 뚫고 이뤄낸 것이었다.
참사에 대한 대응 제대로 했는가 돌아봐야
그러나 민주당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응이 과연 충분했는지에 대해서는 적잖은 의문이 제기된다. 지난 10월 23일 열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과제 보고회에서 재난안전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30대 과제와 173개 세부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 중 많은 사항들이 특별법을 통해 밝혀질 것들이지만 민주당은 지난 1년간 국회 내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거대 야당으에 맞는 모습을 보였는지 의문이다.
지난해 11월 이태원 참사 발생 10여일 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문진석 의원에게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이 끝났음에도 희생자 전체 명단과 사진, 프로필, 애틋한 사연들이 공개되고 있지 않다'며 이를 공개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카메라에 포착됐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수사중인 이유로 정부와 서울시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의도적인 은폐'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민주당은 이때 "당 차원에서 희생자 인적 정보 수집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기자들에게 "그런 논의는 전혀 이뤄진 바 없고 만에 하나 그런 제안을 누군가 했다면 부적절한 의견이며, 당내 논의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중도층을 고려했을 때) 참사와 관련한 발언들은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당 차원에서의 제재나 징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희생자 명단의 공개를 반드시 했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 많은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명단의 비공개를 넘어서 은폐, 국민들의 애도에 대한 철저한 통제, 일부 언론에서의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때 민주당이 얼마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느냐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있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본회의에 상정해 내년 3~4월 시행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그러나 이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이 남아 있어 법안 시행까지는 큰 난항이 예상된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방해가 큰 장벽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유족들 손 한 번 잡아주고' '유족들 어깨 두드려 주면'과 같은 민주당 내의 시각과 태도부터 스스로 돌아보는 게 우선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