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조민 씨를 ‘공인’처럼…언론의 못된 보도행태
공인 아닌데도 일거수일투족 ‘스토커’처럼 취재
SNS 뒤져 수영복 사진까지 보도…황색언론인가
“혐의 모두 인정” 검찰 언론플레이 그대로 보도
오보ㆍ왜곡보도 계속…기자들, 윤리헌장 읽어보길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 씨는 공인인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셀럽(celebrity)’ 혹은 연예인인가? 언론이 그의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전하는 것만 보면, 조민 씨는 분명 이런 ‘유명인’으로 보인다.
조민 씨가 개인 미디어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수많은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복사해 기사를 만든다. 조민 씨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광고를 했다는 기사도 쏟아져 나왔다. 민간인인 조민씨가 유튜브에서 광고를 하면 문제인가? 그리고 그것은 주요언론들이 보도할 만큼 중요한 사건인가?
얼마전 해외 여행 중 SNS에 올린 조민 씨의 수영복 사진을 그대로 캡처해 보도한 언론들은 스포츠·연예신문 같은 황색언론들이 아니라 ‘주류 언론’이라는 유명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들이었다. 이번에는 재판을 앞두고 있는 조민 씨 진술 내용이라며 출처불명(실은 검찰이 흘렸을) ‘알려졌다’ 기사가 언론에 또 등장했다.
지난 19일 동아일보는 ‘조민 의전원 입시비리 혐의 모두 인정 의견서 제출’ 제목의 기사(허동준 기자)를 ‘단독’이라며 보도했다. 조민 씨가 검찰이 주장하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 비리 혐의에 대해 (입장을 바꿔) 모두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내용이다. “당초 검찰 조사에서 혐의 일부를 부인해왔었는데 첫 재판을 앞두고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모두 인정한 것”이라고 해설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 기사는 ‘~라고 알려졌다’ 기사였다. 취재원을 밝히지 않고 누구에게인가 전해 듣고 쓴 ‘~알려졌다’ ‘~전해졌다’식 보도다. 기자가 밝힌 취재원은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이다. 이 기사에는 ‘알려졌다’ ‘전해졌다’는 문장 외에 이를 뒷받침하거나 신뢰할 만한 새로운 팩트가 단 하나도 없다.
이런 기사들은 그동안 검찰이 ‘흘리면’ 기자는 ‘주워먹는’ 전형적인 검찰의 언론플레이 보도다. 그동안 이런 출처불명의 ‘알려졌다’ ‘전해졌다’ 식의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학자, 언론단체는 물론이고 일부 언론인들도 계속해서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동아일보 허동준 기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를 무시하고 또 이를 반복한 것이다.
동아일보의 출처불명 ‘단독’ 기사 이후에 다른 언론들도 우르르 이 기사를 받아썼다. 기사검색 사이트 ‘빅 카인즈’로 검색하니 서울경제, 조선일보, 헤럴드경제, 문화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YTN, 한겨레, 세계일보, 경향신문 등이 ‘조민 씨, 혐의 모두 인정’이라는 내용과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당사자인 조민 씨가 SNS에 이 기사들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부인했다. 조민 씨는 “재판을 앞두고 양형을 고려해 태세를 바꿔 전부 인정한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는 것에 대해 말씀드린다”로 시작해 검찰의 공소사실과 자신의 검찰 진술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제 입장은 변한 부분이 없다”라고 밝혔다. 조민 씨는 또 “공판을 준비하는 서면 내용이 무분별하게 유출되고 그 내용마저 왜곡돼 보도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사전 서면 유출이나 추측 보도를 모두 삼가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언론의 보도로 조민 씨는 아직 재판을 열지도 않았지만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모두 다 인정한 죄인이요, 그것도 당초 부인하다가 말을 바꿔 혐의를 인정한 염치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조민 씨가 SNS에 입장문을 내자 언론들은 다시 ‘조민, 입장 바꾼 것 아니다’라며 그 입장문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어 보도했다. 그러나 이전에 낸 출처불명의 오보, 왜곡보도에 대해서는 사과나 정정은 전혀 없었다. 그저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조민씨가 최근 자신의 SNS에 올린 수영복 사진을 캡처해 보도한 언론들은 차마 비평할 가치조차 없다. ‘조민 수영복 몸매 공개...지지자들 “한편의 화보” 응원 봇물’(문화일보), ‘조민 수영복 사진 공개...지지자들 “모델인가? 한편의 화보”’(세계일보), ‘여기서 살고 싶었어요...수영복 입고 첨벙, 다음날 조민이 한 일’(매일경제), ‘전여옥 “조민, 다음은 깔롱 비키니? 정신연령 가늠 안돼’(서울신문, 한국경제, 서울경제) 등, 이런 ‘주요 일간신문’들이 3류 황색언론과 무엇이 다른가?
3년 전엔 기자가 한밤 중에 조민 씨가 혼자 사는 집 현관문 앞까지 찾아가 벨을 누르고 인터뷰 요청을 해 물의를 빚었다. 아버지인 조국 전 장관은 기자들에게 ‘제발 이런 취재는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조민 씨가 세브란스 병원에 찾아가 인턴하고 싶다고 했다는 조선일보 ‘특종’은 오보로 최종 확인돼 법원의 배상금 판결이 나왔다. 한 언론은 이를 두고 ‘조선일보 오보 덕에 부녀가 700만원씩 받는다’라는 황당한 제목의 기사를 냈다. 언론의 악의적 오보임이 인정돼 법원이 배상금 지급을 판결내렸는데, 이것이 ‘오보 덕에’ 받는 돈이란 말인가? ‘오보 덕’에 돈을 받으니 조선일보에 고마워라도 해야한다는 것인가?
조민 씨는, 정치검찰이 사납게 난도질 수사와 기소를 한 조국 장관을 아버지로 둔 한 집안의 딸일 뿐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조민 씨는 부모와 함께 검찰의 사냥감이 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는, 공인도 연예인도 아닌 '일반인'이다.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란 책을 펴내고 힘든 삶을 이겨내려는 30대 여성일 뿐이다. 조민 씨의 SNS를 수시로 훔쳐보는 기자들, 재판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검찰발 ‘카더라’ 기사로 여론재판을 벌이고 싶어하는 언론에게 당부한다. 부디 신문협회와 기자협회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윤리헌장, 실천요강, 윤리강령, 보도준칙을 한번이라도 들춰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