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ㆍ나토 가맹 슬로바키아 총선 파란…친러 야당 승리

우크라 군사지원, 러시아 제재 반대 ‘스메르’

23% 대 18% 득표율로 집권당 제치고 1당

15일 폴란드 총선에서도 여야 각축전 예고

야당 승리 시 한국-폴란드 방산계약도 영향

2023-10-02     한승동 에디터
 지난달 30일 실시된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승리한 친러시아 야당 스메르의 의장 로베르트 피초(중앙) 등이 당 본부에서 환한 얼굴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10.01. AFP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실시된 중부 유럽의 슬로바키아 총선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좌파정당 ‘스메르’(이정표)가 집권 진보슬로바키아(PS)를 누르고 제1당이 됐다.

이 때문에 스메르의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군소정당들과의 협상 결과 향배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유럽연합(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15일로 예정된 폴란드 총선거에서 집권 법과정의당과 야당 시민연합이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선거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한국과의 방위산업 관련 대규모 수출계약 및 이행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슬로바키아 총선, 친러시아 야당 승리

1일 <가디언> 등의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트 피초(59) 전 총리가 이끄는 좌파 야당 스메르 승리가 사실상 확정된 뒤 피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공약한 자신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대통령이 정부구성 권한을 허용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1일 개표율 99.98%인 시점에서 스메르는 22.94%, 유럽의회 부의장을 지낸 미할 시메츠카(39)가 이끄는 친서방 중도좌파 진보슬로바키아는 17.96%의 득표율을 각각 기록했다.

진보슬로바키아 집권하의 슬로바키아는 미그 29 전투기도 제공할 정도로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으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슬로바키아 여론이 갈라지고 이는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됐다.

피초는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인도적 지원이 아닌 군사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등 군사지원이 전쟁을 장기화한다며 반대했고, 대러 제재로 러시아와의 무역이 제한돼 슬로바키아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며 러시아 제재에도 반대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도 반대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로 고통받고 있는 자국민 제일주의를 강조하는 포퓰리스트적 정책 공약으로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

 

1일 전날 실시된 슬로바키아 총선에서 야당에게 제1당 자리를 내 준 집권 진보슬로바키아당의 리더 미할 시메츠카가 기자회견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2023.10.01. AP 연합뉴스

스메르 집권, EU와 나토 흔들수도

제1당이 된 스메르의 피초가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할 경우 슬로바키아가 헝가리의 독재자 빅토르 오르반처럼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EU의 공감대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고 서방 관측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오르반은 30일 피초의 승리가 확실해진 뒤 X(트위터)에 “누가 돌아왔는지 맞춰 봐!”라며 “애국자와 함께 일하는 건 언제나 좋은 일. 기대된다”는 글을 올려 피초의 ‘귀환’을 축하했다. 피초가 집권할 경우 네 번째 집권이다.

문제는 의석 과반수 확보

하지만 의석(정족수 150석 단원제) 과반수 확보에는 못 미쳐 앞으로 연립정부 구성 교섭을 벌여야 한다. 교섭 대상은 일찍이 스메르 소속이었다가 갈라져 나간 페테르 펠레그리니의 중도좌파 정당 흘라스(Hlas. Voice-Social Democracy)와 친러 민족주의 슬로바키아국민당이다.

흘라스는 2018년 스메르 집권 당시 탐사 저널리스트와 그의 약혼녀 피살사건이 일어나고 대규모 대중적 항의시위가 벌어진 뒤 스메르가 실권하자 갈라져 나간 세력이 만든 정당이다. 킹메이커가 된 흘라스의 대표 펠레그리니 전 총리는 스메르 지지 의사를 흘리며 연정에 참여할 뜻을 밝혔다.

피초가 집권할 경우 부패사건에 연루돼 있는 베테랑 포퓰리스트의 놀라운 정치적 부활이 될 것이라는 비판적 논평과 함께 펠레그리니에겐 의회의장 자리를 제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EU로서는 피초의 귀환은 헝가리의 오르반에 이어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등장하게 되는 형국이지만, 결과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집권하기 위해서는 의석 과반수를 확보해야 하는데, 분석가들은 스메르가 흘라스와 슬로바키아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3당이 연립할 경우 150석 가운데 79석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교섭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우크라이나 군사지원과 러시아 제재 반대라는 피초의 독자적인 색깔을 강하게 표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해서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는 상대적으로 그 비중이 크지 않아 프랑스, 독일 또는 미국과 같은 비중이 큰 나라들과의 제휴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피초가 집권하더라도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별다른 변수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진보슬로바키아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도

환경정책과 LGBTQ, 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친EU 정당 진보슬로바키아도 흘라스와의 연정구성 협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흘라스가 어느쪽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진보슬로바키아 중심의 연립정부가 구성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진보슬로바키아를 이끌고 있는 시메츠키는 스메르의 총선 승리에 대해 “슬로바키아에 아주 나쁜 뉴스”이며 “로베르트 피초가 정부구성에 성공하는 건 더 나쁜 뉴스”라며 강한 집권 의욕을 나타냈다.

 

총선거를 2주 앞둔 1일 폴란드에서 야당 시민연합이 주최한 대규모 집회가 수도 바르샤바 도심에서 열렸다. 2023.10.01. AFP 연합뉴스

2주 뒤로 다가온 폴란드 총선거

한편 슬로바키아 총선거 다음날인 10월 1일 폴란드 바르샤바 도심에서는 야당 지도자 도날드 투스크가 조직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폴란드 총선거를 앞두고 열린 이날 집회에서 투스크는 이번 총선이 “폴란드의 민주주의를 구할 마지막 기회”라며 야당 시민연합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주최자 쪽은 100만 명이 모였다고 했으나 바르샤바 경찰은 약 10만 명으로, 온라인뉴스 Onet.pl은 60만~80만 명으로 추산했다.

여야 각축, 결과는 예측 불허

투스크는 2007~2014년에 총리를 지낸 뒤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 의장으로 갔고, 법과정의당은 그 뒤를 이어 2015년에 집권했다.

포퓰리스트적인 정책과 사회복지비 증대로 농촌지역 등의 지지를 확보한 우파 성향의 법과정의당은 상대적으로 반낙태법 등으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축소하고 미디어를 통제했으며 EU와 마찰을 일으키는 등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연합 쪽인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바르샤바 시장은 30일 집회에서 “더 열리고 관대한 폴란드”를 위해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법과정의당과 시민연합이 서로를 외세의 꼭두각시라 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투스크가 유럽이사회 의장으로 독일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면서 이번 총선에 “폴란드 자체의 존속이 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폴란드와 독일 사이에는 아직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과거사와 얽힌 앙금이 남아 있으며, 최근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둘러싸고도 두 나라는 갈등을 빚었다. 이런 사정은 우파 정당에게 유리하다.

여론조사상으로는 법과정의당이 약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총선 결과는 예측 불허다.

 

폴란드 집권 법과정의당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조직한 야당 시민연합의 리더 도날드 투스크가 1일 집회에서 행진을 이끌고 있다. 2023.10.01. AP 연합뉴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갈등 변수

최근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갈등을 빚고 있어 15일의 선거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정책에 미묘한 변화가 생겨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9월 20일 자국으로 쏟아져 들어 온 우크라이나산 농산물로 자국민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이를 중단시키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나중에 군사지원이 아니라 새로 입수한 무기 지원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며 발언수위를 낮췄으나, 총선거를 2주일 앞둔 폴란드 정부로서는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여전히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

세계적인 곡창지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은 러시아의 흑해 해상수송로 봉쇄조치로 철도와 도로, 강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폴란드와 불가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 인근 5개국을 통해 수출할 수 있도록 하고 대신 이들 나라에 우크라이나 곡물의 판매나 저장은 할 수 없고 통과만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9월 15일 유럽집행위원회가 이 보장기간이 끝났다며 일방적으로 조치를 철회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15일 이후 우크라이나 농산물들의 해외 반출 속도가 지체되면서 면세품인 우크라이나의 많은 농산물들이 이들 나라에서 싼값에 판매되자 피해를 본 이들 나라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 사회적 갈등이 빚어졌다. 15일의 선거를 앞둔 폴란드 정부로서는 이를 간과할 수 없게 됐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들의 약 90%가 폴란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고, 폴란드 자체가 미국 영국 등에 이은 제6위의 우크라이나 지원국이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간의 갈등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폴란드 방산계약에도 불똥 가능성

한국도 폴란드 총선거는 주요 관심사다. 한국과의 대규모 방산 무기 계약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민연합 쪽이 승리할 경우, 한국-폴란드 방산계약과 한국 방산업체들의 수출전략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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