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인준안 부결 가능성 높다…손놓은 여권, 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해부] ④버리는 카드인가
국회 본회의 통과, 민주당 비롯 야권 표심이 관건
6년 전 문재인 시절엔 '김명수 인준' 간곡히 읍소
윤석열은 강 건너 불구경만…'히든카드' 따로 있나
야4당 "이균용 지명 철회하든 자진 사퇴해야" 강경
참여연대‧민변 등 시민사회 진영도 잇단 반대 천명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현재로서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야권의 반대표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자의 막대한 재산을 둘러싼 각종 축소‧은폐‧투기 의혹과 함께 여성‧아동‧가정폭력 등에 관한 문제적 판결 사례가 '까도 까도' 계속 나오고 있어 도덕성과 청렴성, 인권 감수성 등 기본 자질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이고 대표적 보수 판사라는 점은 대법원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위협하며 사법부의 우경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 후보자의 문제점과 임명동의안 처리 전망 등을 종합 정리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국회 본회의 통과, 민주당 비롯한 야권 표심에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무리 문제가 많은 장관(급) 후보자라도 일단 지명을 했으면 국회에서 반대하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임명 재가를 강행해왔다. 여야 합의에 의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장관급 인사를 임명한 게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무려 16명이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어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오는 19∼20일 이틀간 열린다.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을 거쳐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는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이 돼야 통과되기 때문에 111석인 국민의힘은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는커녕 표결 자체를 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야권의 표심이 관건이다. 압도적 1당인 민주당이 재적 298석(본래 300석에서 국민의힘 김선교·정찬민이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이라 재·보궐선거 미실시) 중 168석을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진보당 1석, 그리고 무소속 10석 중 민주당 성향이 5석이기 때문에 야권이 마음만 먹으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간단히 부결시킬 수 있다.
과거 1988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헌정사상 첫 부결된 사례가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정당의 반대 당론 속에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인준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6년 전 문재인과 민주당은 김명수 인준 위해 야권에 읍소
그러나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려는 이렇다 할 손짓이나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노력은 고사하고 그 어떤 시늉조차 전무하다. 이는 6년 전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국회 인준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야당을 향해 읍소를 하다시피 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2017년 9월 당시 야권인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이 '이념 편향성'을 이유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고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까지 반대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입장문을 내고 "인준 권한을 가진 국회가 사정을 두루 살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란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 출국을 하루 앞두고 있던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상황이 매우 엄중하며, 유엔총회장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다"면서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준 문제도 제 발걸음 무겁게 한다. 그동안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에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아 발걸음이 더 무겁다"고 절박하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유엔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각 당 대표를 모시겠다"며 "국가안보와 현안 해결을 위해 논의하고 협력을 구하겠다"고 야당을 달랬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 나서자 민주당 지도부도 야권을 향해 한껏 몸을 낮췄다. 당시 추미애 대표는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을 겨냥해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땡깡을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던 발언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고개를 숙였고, 우원식 원내대표도 "국회의 협치를 위해 과도한 발언은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출국 직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따로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하고,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안 대표를 예방했으며, 추 대표도 안 대표와 회동하는 등 청와대와 여당이 야권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다각도로 애를 쓰며 물밑 접촉을 한 끝에 가까스로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안을 통과시켰다(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가결정족수보다 불과 10표 많은 찬성 160표로 통과됐다).
윤석열과 국힘은 야권 협조 구하기는커녕 더욱 자극만
반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강 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하고 있다. 6년 전보다 더한 여소야대 상황인데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만 해놓고는 거의 나 몰라라 하는 양상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회동은커녕 단식 12일째인 이 대표를 찾는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인사는 아무도 없다. 과거엔 이런 경우 대통령 정무수석이나 여당 지도부가 농성장을 찾아 형식적으로라도 위로하며 단식 중단을 권하는 게 상례였지만 국민의힘은 거꾸로 농성장 옆에서 수산물 시식회를 계획하는 등 조롱과 비방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이균용 후보자를 실제 임명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후보자에 대해 기이할 정도로 무관심하고 냉담한 채 아예 손을 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처음부터 부결을 예상하거나 각오하고 '버리는 카드'로 쓰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여소야대 구조를 돌파할 능력도, 의욕도 없는 여권이 이 후보자가 막상 낙마하면 '공룡 야당의 횡포'를 비난하며 언론플레이와 여론전을 벌이고, 이후에 제2의 후보자를 '히든카드'로 꺼낼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민주당으로서도 삼권분립의 한 축인 대법원장의 인준안을 두 번 연속 부결시킨다는 건 자칫 큰 역풍을 맞을 수 있어 망설여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이균용 절대 불가' 기류…"지명 철회 아니면 자진 사퇴해야"
일단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현재로서는 국회 통과가 난망하다. 칼자루를 쥔 민주당은 극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부결로 방향을 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장 이 후보자 본인의 여러 도덕적 흠결에 더해 사법부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심대하기 때문에 절대 불가라는 기류가 강하다. 최악의 검찰공화국 시대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법원의 견제 역할이 중요한 시점에서 윤 대통령과 '40년 지기'에 코드인사로 낙점된 대법원장 후보자를 용인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윤석열 정권이 국회와 야당에 대한 존중 대신 극단적 탄압으로 일관해온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도 깔려 있다. 야당 무시, 협치 실종을 넘어 국정 운영에서의 숱한 무능과 악정으로 이재명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이 사법부까지 장악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당내에 확산되고 있다. 이는 이 후보자에 관한 당 공식 브리핑과 논평을 통해 여실히 확인된다.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이미 지난달 30일 서면브리핑에서 "이균용 후보자에게 대법원장의 옷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해지고 있다. 이런데도 이균용 후보자는 뻔뻔하게 사법부의 수장이 되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스스로 거취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고, 강선우 대변인은 그 다음날 서면브리핑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까면 깔수록 사법부 수장이 될 수 없는 결격 사유가 넘쳐난다"며 "청문회 이전에 스스로 거취를 결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퇴하라"고 대놓고 요구했다.
이어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이달 1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이균용 후보자의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된다. 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이 심각하게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장이 아니라 법관 자격도 없다"고 규정했고, 홍성국 원내대변인은 지난 4일 서면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균용 후보자의 지명을 당장 철회하고, 국민 눈높이는 물론 사법정의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대법원장 후보자를 다시 지명하라"고 촉구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또 8일 브리핑에서 "이 후보를 대법원장에 앉히면 사법 신뢰 회복은커녕 사법 불신 조장만 하게 될 것 같다. 성범죄자에게 유독 관대했던 이 후보가 사법부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고, 홍성국 원내대변인은 11일 서면브리핑에서 "인사 검증 과정에서 알면서도 이 후보자를 지명했다면 국민에 대한 기망 행위고, 몰랐다면 인사 검증 라인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것이다. 정말 낯부끄러운 줄 모르는 대통령의 인사"라고 맹폭했다.
다른 야3당도 마찬가지…시민사회 진영 잇단 반대 천명
다른 야당들도 비슷하거나 더 심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내로남불‧불법특권 카르텔, 대법원장은커녕 공직자의 기본자격을 묻지 않을 수 없을 정도"(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 "삼권분립을 해칠 적임자에 가깝다"(기본소득당 신지혜 대변인), "이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진보당 정혜규 대변인) 등이다.
참여연대도 논평에서 "공직자로서 윤리의식과 성인지 감수성 모두 부족한 이균용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돼 인사권을 행사한다면 대법관 다양화와 같이 사법농단 이후 이어져 온 사법개혁의 흐름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며 "이균용 후보자는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대법원을 이끌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참여연대는 이균용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참여연대는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여성인권위원회 명의로 성명을 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대법원 수장에 명백하게 부적합한 인물"이라며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친분관계를 우선시해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한 데에 심각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