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2023년, 각자도생의 시대

무능한 군주가 더 큰 참사 예고하는 '눈 떠보니 후진국'

2023-08-07     기훈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기훈 경제칼럼니스트

‘각자도생’이란 말이 있다. 어학사전을 보면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꾀함”이라고 나온다. 처음엔 이 단어가 신자유주의로 살기가 팍팍해진 현대에 와서 생긴 조어로만 알았는데 사실 이 단어는 조선왕조실록 선조편(1594년)에 나오는 단어다. 임진왜란이 한참이던 시기, 비변사가 선조에게 보고를 올릴 때 나오는 말로, 부산 김해 웅천의 백성들에게 미리 왜적의 동태를 알려 ‘각자 살길을 도모(各自圖生)’하도록 하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변란으로 인해 백성의 고통이 극심한 시기였다. 무능한 군주로 인해 백성이 전란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정작 군주는 그 백성들에게 각자도생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단어가 최근 들어 더 이상 사전에만 나오는 말 같지가 않다. 뉴스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한여름 폭염보다 더 고통스럽기만 하다. 세계 10위의 경제를 자랑하고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를 극복했으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K-문화를 자랑하던 나라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끔찍한 뉴스만 넘쳐나는 사회가 된 것이다. 경제뉴스만 보더라도 무역수지는 역대급 적자를 기록 중이고 환율은 1300원을 훌쩍 넘어 고공행진 중이며 경제는 계속 뒷걸음 치며 1인당 국민소득이 20년 만에 대만에 역전당했다.

한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압사 참사가 발생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폭우로 인한 침수로 반지하 주택에서 멀쩡한 생명을 잃는 사고를 겪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오송 지하차도서 폭우로 또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도대체 이런 후진국형 인재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윗선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힘없는 말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급기야는 세계적인 행사인 새만금 잼버리 축제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미숙한 운영을 드러내며 ‘눈 떠보니 후진국’이란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바뀐 이후 사회적 연대 정신은 빠르게 사라져가고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후 1년이 넘도록 야당 대표를 만나지도 않고 적대시하며, 일만 터지면 오로지 전 정부 탓으로 일관한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일 없이 말단 공무원만 잡고 자기편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도, 공무원들도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시대를 실감하고 있다. 무릇 정치란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인데 이 정부 들어 대화와 타협은 사라지고 오로지 힘에 의한 통치에만 의존하고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만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시장 경제를 외치지만 기업들은 정부가 두려워 눈치보기 바쁘고 공직 일선에서는 까딱 잘못하면 모든 책임을 지고 감방에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복지부동이 일상화되고, 사회에는 연대의식이 점점 사라지며 묻지마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직장인 블라인드에 공권력을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라는 현직 경찰의 글이 올라오고, 새만금 의료봉사자의 입에서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 지금 세상이다.

온라인 호신용품 파는 상점은 난데없는 호황을 누리고 코로나는 재창궐하여 사회적 약자들에게 폭염과 더불어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데 부자감세는 깨알같이 하는 정부가 이제는 코로나 검진과 치료도 자비로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서민은 고환율과 높은 물가 상승률로 인해 실질적인 소득 감소를 겪고 있는데 정부는 여기에 아랑곳 않고 각종 복지혜택을 줄이더니 이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코로나 치료까지 자비로 하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시스템이 망가져 어디서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급속히 무너져가고 있는 중이다. 각종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는데 그 책임은 전부 현장 말단직에만 미루고 있고 이태원 참사로 탄핵되었던 장관은 복귀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모습에 일반 국민들은 아연실색을 할 수밖에 없다.

사고가 터져도 고위직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사회, 앞으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사회, 참사가 반복되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 리더는 없고 각자의 이익만 탐하는 사회,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어찌 미래를 꿈꿀 수 있겠는가,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정작 더 두려운 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잦은 사고들이 더 큰 사고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각자도생의 시대’이지 힘없는 사람들이 어찌 힘센 사람들에 맞서 제대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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