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권보호…학부모→교사 개인전화 못한다

미국의 ‘학생·학부모·학교의 관계 맺기’ 어떻게?

민원제기도 학교 이메일·전화 등 공식채널 통해서

익명의 제보에는 학교 당국이 책임질 의무 없어

부당 공격받는 교사 외면하면 학교 당국도 처벌

2023-07-24     민병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21일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마련된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분향소에서 한 추모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7.21.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불행한 일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학부와의 접촉과 민원이다. 본인보다 나이와 사회경험이 많은 학부모를 대하는데 부임 2년차의 젊은 교사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간접 증언도 나온다. 서이초등학교가 서울 강남의 부촌에 있어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부모들의 입김이 세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서이초등학교 동료교사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글은 해당 학교 교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신뢰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 동료 교사는 “실제로 고인은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입수한 학부모의 잦은 전화로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소름끼친다, 방학하면 휴대폰 바꿔야되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동료 교사는 해당 교사 반에서 벌어진 이른바 ‘연필로 긁기’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동료 교사는 “공식적 학폭(학교 폭력) 사안은 아니고 위험할 것 같아서 교감과 생활부장과 함께 미리 선제 대처를 했다”며 “13일 목요일에 학교장 종결로 잘 마무리하고 교실로 돌아왔더니 피해자 학부모가 기다리고 있었고 ‘넌 교사자격도 없고 너 때문에 반이 엉망되었다’고 폭언을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와의 ‘불편한 접촉’이 교사에게 불행한 일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초등교사들도 학부모의 민원과 접촉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가 많다.

교사의 교권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교사가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가져야 학습을 지도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교사들의 체벌과 폭언이 빈번했지만, 이제 학생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당연한 상황이 됐다.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을 동시에 지키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에서 25년째 중등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한 독자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관계 맺기’에 대해 알아봤다. 각각의 주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제보자의 학교 사례를 중심으로 살폈다.

첫 번째, 교사와 학생, 또는 학부모의 사적 접촉이 금지돼 있다. 교사 개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요구할 수도 없고 알려줘서도 안 된다.

10여 년 전까지는 교사와 학생의 학교 시간 이외의 개인 접촉이 조금 더 느슨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등으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이 연결되면서 교사의 개인생활이 노출되며 문제가 발생하자 공립학교 교사들에게 지침이 전달됐다. 학부모, 학생과 일체의 개인 이메일, 전화, SNS를 통한 접촉을 금한다는 지침이다.

이는 교사와 학생 모두를 보호하려는 규칙이라고 제보자는 설명했다. 제보자는 “저는 (많은 교사들처럼) 모든 연락은 학교 이메일 또는 학습관리 시스템인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한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학부모가 개인 전화번호로 교사를 공격하면 미국에서는 (희롱이나 모욕 등으로) 형사법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학부모의 민원 제기는 공식 채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학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서만 담임 교사, 교장, 교감 또는 그 위의 학교 지도자에게 연락할 수 있다. 해당 교사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교감, 교장, 지역 경찰서장 순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세 번째, 미국 학교에서는 익명의 민원과 문제 제기는 효력이 없다. 만약 어떤 학부모나 학생이 익명의 편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교사나 학교 당국은 해결책을 찾을 의무가 없다. 제보자는 “이번 한국의 사건에서 보니 학부모가 맘카페에 글을 올리던데,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해 보인다”라고 했다.

네 번째, 교사와 학교는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 만약 이런 의무가 지켜지지 않으면 막대한 형사상, 민사상 처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학생이 가정에서 폭행당한 흔적이 보이거나 휴식, 건강, 영양섭취 등의 기본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흔적을 보고도 보고하지 않으면 교사와 학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학폭을 인지하고도 무시하면 학교도 교사도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다섯 번째, 학교 당국은 교사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부당하게 교사를 공격하는데 학교 당국이 교사를 보호하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교사들은 노조의 보호를 받는데, 노조는 부당하게 공격 받은 교사를 위해 분쟁이나 고충 사항의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싸울 의무가 있다.

제보자는 “미국의 시스템이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젊은 교사의 사건을 보며 (한국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에 놀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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