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나온 교사들 "권위와 권력이 아닌 존중과 인권을"
종로 보신각 앞에서 교사들 자발적으로 집회 열어
"교사 교육권 강화하라" "교사의 인권 보장하라"
말도 안되는 민원 사연에 교사들 눈물 흘리기도
"교권침해 보험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정상인가"
전교조 위원장 "교육권 보장 위한 대책 마련하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직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 가운데, 교사들이 추모를 넘어 진상 규명과 교사 처우 개선, 교권 확립 촉구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는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전국 교사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5000여 명(집회 관계자 추산)의 교사들이 참가했다. 교사들은 보신각 앞뿐만 아니라 보신각을 중심으로 종로 1가 사거리의 네 모퉁이마다 가득 자리를 메웠다.
참가한 교사들은 추모의 의미에서 검은 옷을 입고 '교사처우 개선' '교사 생존권 보장'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들은 "진상 규명 촉구한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교사의 교육권을 보장하라" "교사의 인권을 보장하라" "교권 수호 이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교사들은 자유 발언을 통해 서이초 1학년 담임 교사에게 일어난 일이 한 교사만의 일이 아닌 모두의 일이라며, 학교 현장의 현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 당국이 학생 인권, 학부모의 권리와 공존할 수 있는 교권 확립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교사들은 동료 교사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2년차 교사 A씨는 "현장 체험학습 장소가 이상한 단체와 관련된 거 같다면서 장소 바꿔달라 하고, 답사갈 때 동의 없이 몰래 따라가서 교사 도촬(도둑촬영), 선생이 우리 아이를 왕따시키는 거 같다면서 교장을 찾아가는 행위, 더이상 우리 아이가 참지 못하면 그 애를 때릴 거 같다는 학폭 예고 협박, 이런 말도 안되는 민원과 대우를 받으며 그저 직업인가보다 묵묵히 견디다 정신 차리고보니 정신과 상담을 예약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욕설을 듣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당하지만, 이 정도는 민원에 없는 축에 속하는 학교다. 믿기지 않는 기상천외한 민원과 사건사고를 들으면서 아이러니하게 위안을 삼는다"며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난다고 버틴 지난 나날이었다. 내가 발령 받을 수 있는 학교이고 내년에 나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상에 어느 직업이 퇴근 이후 연락받지 않았다고 욕먹고 개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까지 검열을 당하는가. 교사가 정당한 생활 지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근무 중인 6년차 현직 교사 B씨는 "교권 침해는 소수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학기마다 어느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이다. 나는 운이 좋았구나 했다. 언론에서도 각종 갑질 사례와 교권침해 사례가 많이 나오지만 교권을 보호하고자하는 제도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학교 업무만 과중시켰다"며, 교육 당국을 향해 "병원기록, 정신과 치료기록 , 통화기록 등을 다 보여줘야만 보호해줄 것인가. 말로만 하지 말고 실질적 교권 보호를 위한 제도 변화를 보이라"고 했다.
B씨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맞으면서 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체벌은 없어진 게 잘한 거라 말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는데 어떻게 폭력을 하겠는가"라며 "다만, 학생인권이 중요한 만큼 교사 인권도 중요하다. 그런데 학생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아동학대로 고소하겠다는 무기로 우리의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 누가 우리를 보호해주는가. 교권침해 보험상품을 가입하는 게 정상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부모와 학생에게 "선생님의 인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9년차 현직 교사 C씨는 "저 역시 재작년 1학년 담임을 맡아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병가를 내고 담임 교체까지 했다"며 "더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막막함과 현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나 혼자만의 일이라고 참고 버틴 게 작금의 사태를 가져왔다는 책임감이 든다.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항의하고 억울하다고 호소해서 조금이라도 먼저 교육 현장을 바꾸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부채감이 든다"고 말했다.
C씨는 "제재할 수 없는 수단과 규제, 납득할 수 없는 요구로 가득한 민원, 민원 해결에 급급한 학교 관리자, 교사를 향한 폭력적인 공격들, 교사의 소진, 이 모두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현실"이라며 "문제를 느끼는 현장을 바꾸려고 더 큰 목소리 내지 않고 무기력에 빠진 나와 우리의 잘못이다. 사명감이 교육현장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 이상 같은 일을 겪는 동료가 있어서 안 된다. 너희가 그런다고 바뀌겠냐고 관망 중인 교사들도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다.
이날 자발적 교사들의 집회에 앞서 오후 1시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에서 전국교사 긴급 추모행동을 열었다. 긴급 추모행동에는 전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교사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지금 당장 진상 규명" "지금 당장 대책수립" "교육권을 확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교사들은 40분 정도 집회를 진행한 뒤 보신각 앞 집회에 참가하거나 서이초 앞으로 조문을 갔다.
전교조 인천지부 2030세대 교사들은 성명을 통해 "안전하게 교육하고 교육 받아야 할 학교에서 이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교육당국은 무엇을 했나. 지금도 어딘가에서 교사 개인의 희생으로 방치되고 있고 숨겨지고 있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며 "이제 더는 단 한 명의 동료도 잃을 수 없다. 교사는 교육현장의 노동자이며 안전한 교육환경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성역없는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안전하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도록 책임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전희영 전교조 위원장은 "우리들은 그저 학생들과 행복하게 만나고 싶고, 교사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고 싶다. 하지만 이 소박한 꿈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무너지고 있다. 교사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에 짓눌려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뎌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한다. 학생의 폭력에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갑질에도 관리자의 2차 가해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며 "이 현실이 선생님을 떠나게 했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교단에 섰을 선생님이 왜 스스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무너져버린 우리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교육당국과 국회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교육 가능한 학교를 위해 마음껏 가르칠 수 있는 교실을 위해 전 사회가 함께 나서 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며 "여러 교원노조와 단체들도 한마음 한뜻이 됐다. 동료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함께 행동하겠다. 선생님의 간절한 소망을 우리가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 밖에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는 오후 4시부터 40여 명의 교사,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전교조 주최로 3차 추모 행동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추모의 의미를 담은 검은 리본을 교육청 주변 나무와 펜스 등에 묶고, 하얀 천에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도록 노력하고 기억하겠다" "더 이상 이런 없어야 한다. 꼭 진상 규명해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등의 문구를 썼다.
전교조 서울지부 김성보 지부장은 "초등학교 나이스(NEIS·교육행정 정보시스템) 업무가 강도 높지 않았다고 하는데, 4세대 나이스로 새내기 선생님들은 폭탄을 끌어안고 7월 한달을 보내야 했다. 충격적인 건, 창문도 없는 교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창고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셨다. 법에 의해서 지하실에는 교습소, 학원을 설치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2023년 수도 서울에, 그것도 강남의 초등학교에서 창문이 없는 교실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고 했다.
김 지부장은 "교육청이 산업재해의 책임을 져야 한다. 수사당국이 선생님이 어떤 악성 민원에 시달렸는지,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엄정하게 지도록 해 다시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교육청은 좋은 소리만 늘어놓지 말고 당장 어떻게 할지 선생님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지금 당장 진상 규명하고 지금 당장 대책 수립해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했다.